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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킨리’에서 ‘데날리’로, 100년만에 이름 찾은 북미 최고봉  

딸기21 2015. 8. 3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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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6168m, 북미 대륙에서 가장 높은 이 산은 미국 알래스카주의 앵커리지 북쪽에 있다. 북쪽으로는 유콘 강이 흘러 서쪽의 베링해로 나간다. 수천년 동안 이 산악지대는 코유콘이라 불리는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돼 왔다. 그러나 원주민들이 신성한 존재로 여겨온 이 산은 이름을 빼앗겼다가 100여년 만에 이름을 되찾았다. ‘매킨리’라 불려온 이 산이 마침내 원주민들이 오랜 세월 불러온 ‘데날리’라는 이름을 찾게 됐다. 

 

샐리 주얼 내무부장관은 30일 매킨리의 이름을 데날리로 바꾸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데날리는 코유콘 원주민들 말로 ‘높은 곳’, ‘위대한 것’을 뜻한다.버락 오바마 정부는 원주민들의 오랜 숙원을 받아들여 산의 이름을 바꾸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31일 이 사실을 직접 공표하면서 알래스카 원주민들에게 축하를 보낼 예정이다. 오바마는 기후변화 문제를 논의할 북극권 정상회담 참석차 이날부터 사흘 동안 알래스카를 찾는다. 

 

미국 언론들은 오바마가 알래스카 방문에 맞춰 ‘선물’을 준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데날리가 이름을 찾은 것에는 오바마 정부가 주는 단순한 ‘방문 선물’ 이상의 의미가 있다. 북미 최고봉의 이름을 둘러싼 논란은 문화와 자원을 빼앗겨온 ‘원주민 잔혹사’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데날리 산. /AP


 

산의 이름이 바뀐 것은 1896년 한 금광 채굴업자가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윌리엄 매킨리의 이름을 알래스카 산지의 최고봉에 붙인 뒤부터다. ‘이름’을 넘어 이 지역의 자원마저도 백인들에게 빼앗긴 원주민들의 아픈 역사가 스며있는 셈이다. 

 

매킨리는 대통령이 됐지만 1901년 암살당했고, 한번도 자기 이름이 붙은 산에 가본 적이 없었다. 1917년 미 정부는 산 일대를 ‘매킨리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이 이름을 공식화했다. 뉴욕타임스는 “데날리가 이름을 잃은 건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서 역사의 뿌리를 뽑아낸 문화 제국주의의 사례”라고 지적했다.

 

원주민들은 1975년부터 산의 이름을 되찾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다. 1980년 산의 이름은 매킨리로 남겨두되 주변 지역을 ‘데날리 국립공원’이라 바꾸는 절충안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원주민들과 알래스카 정치인들은 정체성의 상징인 산의 이름을 찾아야 한다며 계속 캠페인을 벌여왔다. 반면 매킨리 대통령의 고향인 오하이오주는 산 이름을 바꿔서는 안 된다며 반대 로비를 벌였다.

 

오바마는 2008년 대선에 처음 출마하면서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연방정부의 관계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조치로 그 공약을 7년 만에 지킨 셈이 됐다. 오바마 정부는 이름을 찾아줬을 뿐만 아니라 자연자원 개발에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반영될 수 있게 하는 여러 정책을을 추진하기로 했다. 치누크 원주민들의 연어 어업관리권을 보장해주고, ‘북극의 삶의 방식’을 보호해달라고 요구해온 원주민 청년들을 위해 연방정부 어업·야생동물관리국 산하에 특별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했다. 


데날리 산은 ‘매킨리’라는 이름을 떼어내고 원주민들이 오랜 세월 불러왔던 이름을 되찾았다. 하지만 이름을 찾은 대신 높이는 3m가 낮아졌다.

 

미 지질조사국(USGS)은 2일 가장 최근의 과학적인 측정결과들을 바탕으로 이 산의 높이가 기존에 알려져 있던 2만320피트(6193.5m)가 아닌 2만310피트(6190.5m)라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알려져 있던 이 산의 높이는 1953년 측정된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GPS 기술과 항공 레이더 촬영기술 등 현대의 기술을 총동원해 측정한 결과, 높이가 조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질조사국은 설명했다. 수젯 킴벌 지질조사국장은 성명에서 “데날리의 높이를 조금이라도 더 정확하게 알게된 것은 지구과학자들과 지리학자들, 항공 파일럿들, 산악 등반가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며 “이런 거대한 산봉우리를 이 정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비록 키가 조금 작아지긴 했지만, 또 다른 의미있는 발견도 있었다. 미 항공우주국(NASA) 조사결과 데날리가 지구 지각판의 이동에 따라 1년에 1mm씩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더힐 등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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