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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과 절충, 마침내 완결된 이란 핵 합의

딸기21 2015. 7. 1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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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타협이 이뤄졌다. 이란 핵 의혹을 해소할 포괄적 핵 협정이 최종 타결됐다. 벨기에 브뤼셀의 그리스 구제금융 합의가 완고한 채권자와 백기투항한 채무자 간의 ‘잔인한 협상’이었다면, 같은 시기에 이웃한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뤄진 이란 핵협상은 절충과 타협의 산물이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이란 핵 협상에 참여했던 각국 외교대표들이 14일(현지시간) 합의문에 서명한 뒤 웃으며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담당 고위대표,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 알리 악바르 살레히 이란 원자력기구 사무총장,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 필립 해먼드 영국 외교장관,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이로써 13년에 걸친 이란 핵 갈등은 마무리됐으며 이란 내 핵 의혹 시설 사찰과 경제제재 해제 절차가 진행된다. /AFP


 

13년 제재 ‘이란 핵’… ‘실리’로 풀었다


14일 오전 유엔본부가 있는 빈 인터내셔널센터에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이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핵 합의 사실을 발표했다. 함께 선 파트너는 20개월에 걸쳐 지난한 협상을 해온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독일(P5+1)을 대표하는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였다. 두 사람은 이란 핵 ‘의혹시설 사찰’과 경제제재 해제의 절차·범위·시한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7개국은 합의된 협정문에 서명을 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트위터에 서명 장면을 담은 사진을 올리면서 “불필요한 위기는 끝났고, 공통의 도전에 초점을 맞출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고 썼다. 핵 갈등을 봉합하고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 등에서 미국과 공조할 뜻을 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이달 들어 일정을 비워놓고 ‘역사적 순간’을 기다려왔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즉시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핵 합의는 이란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방향을 설정할 기회를 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란 국영방송들은 로하니와 오바마의 기자회견을 나란히 생중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세계는 오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는 환영 성명을 냈고, EU측 모게리니 대표는 “전 세계를 위한 희망의 신호”라고 말했다.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의 알리 바에즈는 알자지라방송에 “모든 참가자들은 이 협상에 걸린 판돈이 얼마나 큰 지를 알고 있었다”고 평했다.


핵 의혹시설 사찰·경제제재 해제 시한 등 타협 이뤄

 

6개국과 이란은 지난 4월 포괄적 핵 협정에 잠정 합의한 뒤 세부사항을 논의해왔다. 당초 6월말이었던 타결시한은 이달 7일, 10일, 13일로 거푸 늦춰졌다. 지난달 말부터 18일 연속 마라톤 협상을 벌인 끝에 마침내 타결에 이르렀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은 재차 협상력을 과시했다.

 

합의문은 100쪽 분량에 5개의 부속 항목이 붙어 있다. 핵심은 이란 사찰 범위를 대폭 넓힌 것으로, 2002년 처음 의혹이 제기된 이후 이란의 ‘핵 야심’을 누르기 위한 국제적인 억제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은 테헤란 부근 쿰이나 나탄즈 우라늄 농축시설처럼 과거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이 들어갔던 곳들 뿐 아니라 ‘의심스러운 군사시설’들까지 전부 보여줄 것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IAEA가 핵폭발 실험장소로 의심해온 테헤란 부근 파르친의 복합군사단지가 합의를 이행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란과 협의 하에’라는 단서가 붙었다. 사찰 폭을 넓히되 절차와 방식에선 이란을 존중한 ‘조율된 접근’이다. 국제사찰단 조사 전 이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이란은 무제한 사찰을 강요당한 뒤 모든 방어능력을 잃고 미국에 점령당한 이라크의 전철을 밟을까 극도로 경계해왔다. 이란 보수파들은 자신들이 주장해온 ‘레드 라인’, 즉 무제한 전면 사찰을 막는다는 목표를 지켰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이달 내 안보리 통과 땐 내년 상반기 이란 돈줄 뚫릴 듯


유엔의 무기 금수조치를 없애달라는 이란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합의안에 따르면 이란의 탄도미사일 보유를 금한 유엔 제재는 8년간, 무기 금수조치는 5년간 유지된다. 그러나 ‘안보리 협의 하에’ 이란이 외국산 무기를 도입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이란에 샛길을 열어줬다. 러시아는 S300 방공망 등의 무기시스템을 이란에 팔고 싶어했고, 이 때문에 무기 금수 해제를 지지해왔다. 이란을 무기 시장으로 보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을 만족시킬 수 있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진 것이다.

 

이달 안으로 안보리가 최종 타결안을 채택, 결의안이 통과되면 90일 이후부터 협정이 발효된다. 실제로 이란의 돈줄이 뚫리는 것은 내년 상반기이며, 그 전에 핵 사찰을 하게 된다. 아마노 유키야 IAEA 사무총장은 지난 4일 올 연말까지 이란의 과거 핵활동을 살펴보게 될 것이라 말한 바 있다. 협상에서 또 하나의 이슈였던 이른바 ‘스냅백(snapback)’ 조항, 즉 이란이 합의를 어길 경우 ‘즉시 제재를 복구한다’는 문구도 미국의 요구대로 안보리 결의안에 들어가게 된다.  


시리아 내전·IS 퇴치… 오바마의 난제들 풀리나


핵 문제를 둘러싼 갈등 뿐 아니라, 1979년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 이후로 이어져온 미국과 이란의 오랜 적대관계가 풀릴 계기를 맞게 됐다는 점에서 14일 서명된 포괄적 핵 합의의 의미와 파장은 크다. 협상이 최종 타결되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외교가 의미있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며 자평했다.

 

이미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선언한 오바마는 이번 핵 합의로 오랜 숙제를 풀었으며 이란과의 관계는 36년만에 일대 전기를 맞았다. 이란과의 화해는 오바마가 얼키고 설킨 중동 문제를 푸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이란은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과 가까우며 이라크 시아파 정권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는 갈등의 요인인 동시에 시리아·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에서 미국과 이란이 공조할 수 있는 토대이기도 하다. 이란을 빼놓고 IS와의 전쟁을 치르기는 힘든 것이 명백한 현실이다.


President Obama, standing with Vice President Joe Biden, delivers a statement about the nuclear deal reached between Iran and six major world powers during an address from the White House on Tuesday. REUTERS/LANDOV


시리아 내전을 끝내기 위해서도 이란의 협력이 절실하다. 미국은 시리아 내전에 직접 군사개입을 하는 대신, IS 점령 지역만 공습하면서 알아사드 독재정권의 퇴진을 촉구해왔다. 때이른 관측이기는 하지만, 이란이 물밑 중재자로 나선다면 알아사드에게 모종의 안전 보장을 해주면서 물러나게 만들 수도 있다.

 

문제는 미국 내 공방전이다. 이란과의 핵 합의를 공화당이 극력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상원은 협상 합의안을 검토·승인할 권한을 의회가 가져야 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오바마 정부는 14일의 합의안을 닷새 이내에 상·하원에 제출해야 하며 의회는 그 후 60일의 검토 기간을 갖는다. 이 기간에는 정부가 이란 제재를 보류·완화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오바마는 CNN방송 등으로 생중계된 협상 타결 기자회견에서도 미국 내 반발을 무마하는 데에 주력했다. 그는 이란과의 합의를 저버리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고, 의회가 합의안을 통과시키지 않을 경우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다시 한번 선언했다. 이론적으로라면 의회 내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합의안 반대에 합세할 경우 대통령 거부권까지 무력화할 수 있으나, 그럴 가능성은 현재로선 높지 않다. 



제네바, 로잔, 빈... 장소 옮겨다닌 이란 핵 협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P+1), 그리고 이란 사이의 ‘포괄적 핵 협상’이 마침내 14일 마무리됐다. 2013년 11월부터 시작돼 근 20개월에 걸쳐 이뤄진 기나긴 과정이었고, 그 사이 협상 장소도 수차례 바뀌었다.

 

화해의 가능성을 먼저 연 것은 이란이었다. 2013년 8월 강경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퇴임하고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범 중도·개혁파의 지지에 힘입어 취임하면서 꽁꽁 얼어붙었던 서방과 이란 간 관계를 풀 계기가 마련됐다. 그 해 9월 로하니 대통령은 유엔 총회에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역사적인 통화’를 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첫 협상이 시작됐으나 무대는 곧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로 옮겨졌다. 이란과 6개국은 ‘통합행동계획(JPA)’이라는 이름으로 2013년 11월 합의를 이뤄냈다. ‘제네바 합의’라도 불린 이 계획은 이란이 핵 활동을 중단·보류하는 대신 미국과 유럽은 인도적 차원에서 경제제재를 일부 풀어주는 일종의 임시 협정이었다. 이 합의에 따라 지난해 1월 20일 제재가 상당 부분 풀렸다. 더불어 양측은 ‘포괄적 핵 합의’를 위한 협상을 그 해 11월 24일까지 마무리하기로 약속했다. 

 

양측은 JPA에 따라 지난해 2월부터 7월까지 오스트리아 빈에서 한 달에 한번씩 6차례 협상을 했다. 7차 협상이 열린 것은 2014년 9월 뉴욕에서였다. 8차 협상은 다시 빈에서, 그리고 9차 협상은 오만의 무스캇에서 이뤄졌다. 그렇게 한 해 내내 거의 매달 협상을 했고, JPA는 2차례 연장됐다. 



지난 1월과 2월에는 제네바에서 12차, 13차 회의가 열렸다.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뤄내기 위한 격전장이었다. 마침내 핵 협상 ‘프레임워크’가 완성된 것은 스위스 로잔에서였다. 4월 2일 로잔에서 7개국이 포괄적 핵 합의에 이르렀음을 공식 선언했다. 오바마와 로하니는 역사에 남을 외교적 성과를 거뒀으나 정작 자국 내에서는 각기 보수파들의 반발에 부딪쳤다. 로잔 합의는 미국과 이란이 ‘국내 여론’을 의식해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를 남겼고, 세부사항은 후속 협상으로 넘겨졌다.

 

이 과정에서 미-이란 양자 간, 혹은 유럽연합(EU)을 낀 3자간 협상이 잇따랐다. 미국과 이란이 양자협상을 하게 된 것만 해도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 최대의 변화였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은 제네바와 빈을 집처럼 드나들며 수시로 머리를 맞댔다. 

 

프레임워크 합의 이후 세부사항 협상은 주로 빈에서 벌어졌다. 맨 처음 협상이 시작됐던 빈의 유엔 본부에서, 양측은 마침내 14일 합의문을 완성했음을 세상에 알렸다. 이제 이 합의문은 워싱턴과 테헤란, 그리고 뉴욕에서의 절차들을 남겨두고 있다. 오바마는 이란과의 합의 자체에 반대하는 공화당 주도 의회와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로하니는 이미 의회로부터 협상의 전권을 위임받은 만큼 오바마보다는 유리한 입장이지만 보수파의 반발이 적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엔 안보리는 이란 핵 의혹시설 사찰과 제재 해제 등을 규정한 새 결의안들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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