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죽은 사람에게 덮어씌우려다 덜미 잡힌 블라터  

딸기21 2015. 6. 3.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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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망이 좁혀들어오는 와중에도 5선에 성공한 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을 마침내 물러나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미 수사당국이 블라터를 ‘매우 가까이(too close)’ 죄어들고 있었다는 보도들이 나오면서, 구체적인 정황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블라터는 5선에 성공한 직후 “영국과 미국이 나를 공격한다”며 반발했으나, 이후 나흘 동안 수사망이 빠른 속도로 죄어오자 결국 버티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핵심 사안은 스위스에서 체포된 FIFA 간부들의 기소장에 나왔던 대로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유치와 관련된 ‘1000만달러 뇌물’ 문제였다. 미 당국의 추적 결과 이 돈의 흐름이 최종적으로 블라터에게 닿아 있었으며, 이를 보여주는 상당히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정황 혹은 증거가 포착됐을 가능성이 있다. 

 

최소한 블라터가 1000만달러의 움직임을 ‘알고 있었다’는 점은 정황상 충분히 추측 가능하다. 1일(현지시간) 미 연방검찰이 블라터의 최측근인 제롬 발케 FIFA 사무총장에 대한 수사에 나선 것이 열쇠다. 



당초 미 당국은 2008년 남아공에 지원금으로 내줄 FIFA 돈 1000만달러를 ‘FIFA의 고위 관리’가 빼내 트리니다드토바고 출신인 잭 워너 당시 부회장에게 줬다고만 밝혔다. 남아공은 FIFA 간부들에게 1000만달러를 뿌리고자 했는데, 정작 현금이 없었던 탓에 FIFA에게서 받을 지원금을 뇌물로 썼다는 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이다. 

 

미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된 문제의 ‘고위 간부’는 2007년 사무총장이 돼 FIFA 2인자 자리에 오른 발케였다. 그러자 발케는 이메일 성명에서 자신에겐 2008년에 그만한 돈을 움직일 권한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FIFA는 블라터의 오른팔인 발케 지키기에 나섰다. 델리아 피셔 대변인은 사건 당시 재무위원장이었던 아르헨티나 출신의 훌리오 그론도나가 1000만달러의 이체에 서명했다고 발표했다. 그론도나는 지난해 82세로 사망했다. 이 발언이 나오자 아르헨티나 측은 즉시 반발했다. 아르헨티나축구협회는 “우리의 돈거래는 모두 기록으로 남아 있다”며 반박했다고 부에노스아이레스헤럴드는 전했다. 영국 가디언 등도 “세상을 뜬 사람에게 덮어씌우려는 꼴”이라며 FIFA 발표를 비난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FIFA의 계좌에 들어있는 돈은 10억 달러가 넘고, 연간 FIFA 계좌를 통해 움직이는 돈은 수십억 달러에 이른다. 이 돈에 손을 댈 권한 가진 사람은 블라터와 발케다. 발케가 관련성을 부인하자마자, 미국 프레스어소시에이츠의 스포츠 기자 마틴 지글러는 곧바로 발케가 배후에 있음을 입증하는 문서를 입수해 트위터를 통해 공개했다. 이로써 블라터는 도망칠 구석이 없게 돼버린 것이다. 

 

그리고 몇시간 만에 블라터는 사퇴하겠다고 발표했다. 회장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수사를 받을 때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법률고문의 조언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미 당국의 수사가 예상보다 광범위하게 확대되자 기업 파트너들과 FIFA 간부들로부터의 사퇴 압력이 강해진 것도 블라터의 결심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제 관심사는 블라터가 당국의 직접적인 수사대상이 될 것인지, 결국 기소될 것인지다. 뉴욕타임스는 당국이 사실상 이미 블라터도 수사에 들어간 셈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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