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한국 사회, 안과 밖

한국만 뻥뻥 뚫린 메르스 방역

딸기21 2015. 6. 3. 09:39
728x90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의 전 세계 발병현황을 표시하는 코로나맵, 메르스맵 같은 사이트들이 갑자기 바빠졌다. 2013년 말 이후 확산이 주춤해 사그라지는 듯했던 메르스 환자가 느닷없이 한국에서 늘어난 탓이다. 

 

메르스 통계를 살펴보면, 한국의 잇단 발병이 매우 특이한 사례이며 방역망이 거의 전혀 작동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전까지의 감염자 1154여명 중 85% 이상이 최초 발병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나왔고, 나머지도 대부분 중동 국가 환자들이기 때문이다. 중동 이외 지역에서는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말레이시아 등에서 각기 1~3명이 발병했을 뿐 2차·3차 감염자는 없었다. 유독 한국에서만 메르스가 확산되자 외신들은 이례적인 사태를 일제히 보도했다.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가 발병했을 때 처음엔 '괴질'이라고 불렸다. 정체를 몰랐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외부에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은 탓도 있었다.


하지만 메르스는 다르다. 2012년 사우디에서 감염자가 확인된 뒤 이집트와 사우디 의사들이 사스와 마찬가지로 변종 코로나바이러스임을 밝혀냈고 바이러스를 분리해내는데 성공했다. 이미 3년 동안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질병인데 이 정도로 방역을 하지 않았다는 게 어이없을 뿐이다.


더군다나 대통령까지 나서서 '중동으로 가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중동에서 돌고 있는 전염병을 몰랐다? 에볼라가 주로 발생한 서아프리카 지역은 한국인 방문자가 워낙 없는 곳이지만, 이미 중동에는 한국 기업체 직원들도 많이 나가 있고, 여행자들도 꽤 많다. 사우디를 빼면 사실 중동에서도 이 병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카타르나 UAE에서도 발병했기 때문에 방역당국이 주의를 기울이고 여행자들에게 경고를 하는 게 당연했다. 


중동-북아프리카, 한마디로 낙타 키우는 지역 외의 국가(유럽 아시아 미주)에서는 2차 감염도 프랑스 사례 1건 정도 외에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만 2차, 3차 무더기 감염이라니. 



세계보건기구(WHO)가 1일 웹사이트에 올린 권고에 따르면 메르스는 10여년전 유행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과 마찬가지로 의료시설에서의 확산을 막는 것이 예방의 핵심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대처방안이 모범사례다. 미국은 지난해 에볼라 위기 때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라이베리아 남성의 치료를 소홀히 했다가 애를 먹었다. 그 후 ‘과잉 격리’ 논란이 일어날 정도로 당국이 강력하게 대응했다. 메르스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4월 말과 5월 초, 사우디의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종사자 2명이 각기 미국에 입국한 뒤 호흡기질환 증상을 보였다. 두 사람은 인디애나주와 플로리다주의 병원에서 메르스 진단을 받았다. 그러자 CDC는 사우디에 직원을 보내 WHO와 접촉하고 메르스 정보를 수집했다. 두 감염자가 미국 내에서 탔던 여객기 3편에 탑승한 승객 500여명을 추적했고, 두 감염자와 접촉한 가족·의료진을 의료진을 격리했다. CDC는 5월말 “더 이상의 감염은 없다”고 발표했다.




독일에서는 지난 2월까지 3명의 감염자가 보고됐다. 두 명은 각기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증상이 나타나 독일로 귀국해 즉시 치료를 받았다. 세번째 환자는 귀국 이틀만에 증상이 나타났고, 일주일 간 집중 격리치료를 받았다. 당국은 WHO에 모든 예방조치를 이행했음을 보고하고 감염자 치료시설에 대해서는 완치 이후까지 추적조사를 진행했다.

 

중국과 홍콩 당국도 발빠르게 대응했다. 중국 보건당국은 한국인 남성 감염자가 입국했다는 사실을 27일 밤 확인했고, 이튿날 새벽 이 남성을 찾아 후이저우 병원에 격리했다. 이 남성의 이동경로를 역추적해 밀접 접촉자 67명을 즉시 격리했으며 접촉자들이 많은 지역에서 방제작업을 했다. 홍콩 당국은 이 남성이 탔던 항공기와 버스 승객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그 중 홍콩에 있는 19명을 격리했다. 우왕좌왕하며 외부에 정보를 숨기다가 600명 이상의 인명피해를 입었던 사스 사태에서 교훈을 얻은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