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징용된 조선인들이 강제노동에 시달렸던 ‘군칸지마(軍艦島·사진)’를 비롯한 일본 산업시설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될 것으로 보인다. 유네스코 자문기관이 ‘메이지 시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들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할 것을 권고했다고 산케이신문이 4일 일본 정부 발표를 인용해 보도했다.
일본이 세계유산 등록을 추진하고 있는 산업시설은 나가사키(長崎)의 하시마(端島) 탄광과 미쓰비시중공업의 나가사키 조선소, 기타큐슈시의 야하타(八幡)제철소 등이다. 일본 정부는 “서양 기술이 일본 문화와 융합해 빠르게 산업국가가 형성된 과정을 보여주는 유산”이라고 홍보해왔다.
유네스코 산하 세계유산위원회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와 국제자연보존연맹(IUCN)의 권고를 검토해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기록유산 등의 세계유산 등록을 결정한다.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전문기구들의 등록 권고를 뒤집는 일은 거의 없다. 따라서 일본의 산업시설들은 다음달 28일부터 독일 본에서 열리는 회의를 통해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제는 나가사키 하시마 탄광이 조선인 징용자 강제노동의 역사를 안고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미쓰비시는 1890년 이 섬을 매입해 해저탄광 채굴기지로 삼았다. 주변을 매립해 암벽을 둘러치고 건물을 지은 탓에 외관이 군함처럼 보여 군칸지마라는 별명이 생겼다. 1986년 일본 시민단체들이 공개한 사료에 따르면 1925~45년 이 섬에서 숨진 이들 1295명 중 조선인이 122명에 이르렀다. 재일조선인 인권단체는 전시의 무리한 증산계획에 동원됐다가 숨진 조선인들로 보고 있다. 살해되거나 폭행·학대를 당하고 숨진 조선인도 2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나가사키 남서쪽에 있는 이 섬은 1960년대 폐광과 함께 무인도가 됐다.
한국 정부는 조선인 강제징용 현장이 세계유산에 등록되는 것은 인류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을 보호하자는 세계유산협약의 기본정신에 위배된다는 점을 들어 등록 반대 외교전을 펼 계획이다.
일제의 강제징용 실태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 올려봅니다. 2003년 미 UC버클리 법학저널에 실린 논문입니다. 2차 세계대전 시기 일본의 강제징용과, 이와 관련한 미국 내 소송 제기에서의 법적 장애물에 관한 John Haberstroh의 연구에 요약돼 있는 내용입니다.
강제징용은 forced labor, 징용된 노동자들은 forced laborer 라고도 씁니다만 이 논문의 저자는 foreign slave labor와 forced labor를 혼용하고 있습니다. ‘군 위안부(comfort women)’를 가리키는 더욱 강력한 용어가 sex slave 인 것과 마찬가지 맥락인 거지요.
2차 대전 시기 일본의 외국인 노예노동 동원은 최소 1000만명을 끌고가 착취했던 나치 독일 수준 이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 학자들은 일본이 전시에 점령했던 중국에서 1500만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산하며(German Deal Over Ex-Forced Laborers Could Help Japan, ASIAN ECON. NEWS, Feb. 11, 2002). 만주 지역에서만 900만명이 징용됐다고 본다(John Leicester, Chinese Forced Laborers Are Suing Japanese Firms for Compensation, reprinted in SEATTLE TIMES, Aug. 24, 2000).
일본의 거대 기업들은 만주의 일본인 소유 광산과 공장에서 징용자들을 동원할 수 있도록, 매우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일본 군을 부추겼다. 전쟁 말기에 이르자 일본이 자국 내로 끌어모은 중국 노예 노동자만 4만명에 이르렀다.
400만~600만명의 한국인(조선인)이 전시에 노예노동자가 됐다. 일본에서 725,000명의 조선인들이 일했는데 그들은 대부분 광산이나 건설현장에 동원됐다. 나머지 징용자들은 한반도에서 노역에 종사했다(Donald Macintyre, Fighting for Wartime Retribution, Time Mag., Jan. 17, 2000)
일본의 노예노동자 수는 독일의 두 배에 이르렀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점령 치하 동아시아에서는 그 규모가 두드러진다. 예를 들면 태국의 악명높은 샴-버마 철도건설 프로젝트 하나에만 아시아 강제징용자 25만명이 투입됐다. 호주 역사학자 Gavin Daws에 따르면 여기 동원된 노동자들의 15%가 목숨을 잃었을 정도였다.
일본에서나 독일에서나 징용자들 상당수가 민간기업에서 일했다. 지멘스, 크룹, 다임러벤츠 같은 독일 기업들과 독일 정부는 노동수용소 생존자들 혹은 관련 단체에 오랫동안 보상을 해왔다. 그들은 또 전시의 기록을 공개했다. 2000년 미국 정부와 독일 정부, 독일 기업들은 나치 강제노동 희생자 개개인에게 보상하기 위해 ‘기억과 책임, 그리고 미래(Remembrance, Responsibility and the Future)’라는 이름의 52억달러 규모 기금을 만들기도 했다(United States-Germany Agreement Concerning the Foundation “Remembrance, Responsibility and the Future,” July 17, 2000). 호주와 호주 기업들도 비슷한 기금을 만들었다(John R. Schmertz, Jr. & Mike Meier, Esq., U.S. and Austria Agree on Fund to Compensate Individuals Forced Into Hard Labor During World War II, INT’L LAW UPDATE, Oct. 2000).
반대로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이런 형태의 기억과 책임에 계속해서 저항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전시의 기록을 공개하기를 거부했고(Stephen Goode, How the Japanese Used American POWs for Slave Labor, INSIGHT MAG., Feb. 28, 2001) 아주 적은 수의 기록만이 전쟁 말기의 조직적인 자료 파괴 작업에서 남겨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자들에게 직접적인 보상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국제노동기구(ILO)의 보상 요구도 거부했다(Mar Yamaguchi, Japanese Company To Pay Korean War Workers’ Kin, SEATTLE POSTINTELLIGENCER, Sept. 23, 1997). 일본 정부는 1951년의 평화조약(Treaty of Peace with Japan, Sept. 8, 1951) 같은 전후의 조약들을 통해 모든 보상 문제가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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