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남서부 올레순(Alesund)은 대서양에 면한 항구와 섬들로 이뤄진 인구 4만5000명의 작은 도시다. 노르웨이 사람들이 원래 부르던 이름은 ‘카우팡’, 시장이라는 뜻이었다. 바닷가 시장 마을이 1838년 시로 격상되면서 지금의 이름이 붙었다.
올레순은 ‘아르누보(신예술)의 도시’로 통한다. 1905년 큰 화재가 일어나 목조주택 850여채가 불에 탄 뒤 당시 유행하던 아르누보 스타일로 도시가 재건축됐기 때문이다. 악슬라(어깨)라는 이름의 산 전망대에 올라가면 도시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희고 노랗고 파란 집들이 모자이크돼 만들어내는 풍경은 왜 이 곳이 아르누보의 도시라 불리는 지 알수 있게 해준다. 현지 신문 다그블라뎃이 2007년 ‘노르웨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았던 곳이기도 하다.
악슬라 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올레순의 전경은 왜 이곳이 ‘아르누보의 도시’라 불리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도시 가운데를 흐르는 바닷가 양편으로 지어진 지 100년 넘은 호텔과 집들이 들어서 있다.
악슬라 전망대에서 도시를 굽어보는 사람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유럽에서 유행하던 아르누보 양식은 장식적이고 화려한 스타일을 특징으로 하지만, 올레순의 아르누보는 조금 다르다. 옹기종기 예쁜 집들이 모인 유럽의 여느 도시들에 비하면 소박한 편. 건물 외벽 가운데에 뱀 무늬, 밧줄 무늬, 투박한 얼굴 모양 부조들이 새겨져 있다. 가이드 벤테(67)는 “바이킹들의 문양을 곁들여 올레순만의 아르누보 스타일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운하처럼 도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바닷가를 따라 늘어선 호텔들과 언덕 위의 집들은 깔끔하고 아름답지만 관광객들의 눈길을 확 사로잡는 허세나 화려함은 없다.
시내 중심가의 아르누보 센터는 1907년 지어진 건물이다. 약국으로 쓰이다가 2001년 박물관으로 변신했다. 약국 시절의 고풍스런 가구와 일본에서 가져왔다는 벽지, 두 차례 세계대전 사이의 전간기 문화와 2차 대전 후 재건 과정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상을 볼 수 있다. 아르누보 센터 앞에는 쇠파이프에 온수를 넣은 ‘온돌 벤치’가 지나는 이들을 붙잡는다.
아르누보 센터
온돌 벤치
올레순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아틀란테하브스파르켄(대서양 수족관)이다. 바닷물을 가둬 물개와 물범을 키우고, 바위 지형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인 친환경 수족관으로 유명하다. 앞발로 박수를 치며 사육사가 주는 먹이를 받아먹는 물개들 뒤편으로 수평선이 이어져 있다. 건물 안과 밖에 여러가지 체험 시설들이 있다. 수조에 손을 넣어 불가사리를 커다란 가리비 위에 올렸다. 가리비가 포식동물인 불가사리를 피해 허둥지둥 도망을 친다.
올레순 대서양수족관의 사육사가 물개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지형을 살려 바닷물을 끌어들인 이 수족관은 친환경 설계로도 유명하다.
언덕 위로 걸어올라가니 작은 영화관이 나온다. 멀티플렉스 상영관들만 남은 한국에선 이미 오래 전 사라진 소극장. 기둥에 붙은 <어벤저스>와 <매드맥스> 포스터만 아니라면 이 곳이 극장인 줄 아무도 모를 것 같았다. 오후 5시가 넘으면 거리는 텅 빈다. 저녁 늦게까지 문을 여는 몇 안 되는 레스토랑 중 한 곳에 들어가 바칼라우를 먹었다. 바칼라우는 스페인에서 대구를 가리키는 말인데, 노르웨이에서는 소금에 절여 말린 대구를 지칭한다.
올레순의 작은 영화관
함께 간 벤테에게 “이렇게 일찍부터 가게들이 문을 닫으면 불편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올레순 관광당국에서 일하는 벤테는 “안 그래도 그것이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집권 우파 연정 중 가장 보수적인 진영에서 평일 영업시간 연장, 일요일 영업 등 관광산업을 키우기 위한 방안을 내놨으나 결국 무산됐단다. 벤테는 “나도 소비자로서 가게들이 일요일에 문을 열면 편하겠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나는 노동자이기도 하다”며 삶의 질 순위 1위인 노르웨이 시민다운 답변을 내놨다.
고요한 항구에 서 있는 빨간 등대가 눈에 띈다. 지어진 지 150년이 넘은 이 등대는 객실 1개짜리 호텔이다. 이웃한 바닷가에 위치한 브로순뎃 호텔에서 운영하는 특별 객실인 셈이다.
1층엔 침실, 2층엔 욕실이 있는데 1박에 550달러가 넘는다. 오슬로 오페라하우스를 디자인한 유명 건축회사 스뇌헤타가 실내 설계를 맡았고, 주로 신혼여행객들이 찾는다고 한다. 스웨덴 말라렌의 ‘떠다니는 수족관 호텔’ 우테르인, 네덜란드 하를링겐 부두의 독사이드 크레인 호텔, 미국 플로리다주 키라르고의 줄스해저롯지 등과 함께 세계의 이색호텔들 명단에서 빠지지 않는 곳이다.
오슬로에서 만난 고흐+뭉크
노르웨이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에두바르 뭉크다. 오슬로의 뭉크갤러리에서 ‘반 고흐+뭉크’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특별전시회를 볼 수 있었던 건 운이 좋았다. 설명이 필요 없는 예술가들, 그러나 그리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만은 볼 수 없는 두 사람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고흐와 뭉크라니, 얼핏 두 사람의 작품 스타일을 생각할 때 어울리지 않는 결합이다. 1853년 태어나 1890년 세상을 뜬 고흐는 네덜란드 태생이고, 1863년부터 1944년까지 살았던 뭉크는 노르웨이 남동쪽 오달스브룩에서 태어났다. 19~20세기 북유럽의 대표적인 화가인 두 사람의 접점은 프랑스 파리다. 파리에서 두 사람은 유럽 대륙의 화풍과 사조들을 받아들였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냈다. 고흐는 1886년부터 2년 동안 200여점을 그린 뒤 아를로 옮겨갔고, 1890년 생레미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았다. 뭉크는 고흐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1년 전 파리에 도착했다.
뭉크의 '마돈나'
암스테르담 반고흐미술관과 오슬로 뭉크갤러리의 합작으로 이뤄진 전시회는 두 걸출한 화가가 남긴 작품들을 교차해 보여준다. 병 든 아이, 절규, 낫을 든 밀밭의 농부, 그리고 별이 빛나는 밤. 75점의 유화와 25점의 스케치들에는 예술가들의 내면의 고통이 담겨 있다. 점묘파 화가 쇠라와 고흐, 뭉크의 작품들이 한 벽에 걸리니 미묘한 붓질의 차이가 한눈에 들어온다. 관객들을 쏘아보는 듯한 고흐의 자화상이 너무나도 강렬한 화가의 자의식을 드러내보이는 반면, 뭉크의 자화상은 관객의 어깨를 넘어 어딘가로 시선을 던지고 있다.
고흐의 밤은 어둡지만 별들은 노랗게 빛난다. 뭉크의 밤은 표현하기 힘든 기묘한 색채들로 젖어 있다. 무도회에서 춤출 때조차 뭉크의 인물들은 관객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절규’의 가장 유명한 버전은 오슬로국립건축디자인박물관 소장품인지라 이번 전시회에서 볼 수 없었지만 스케치에 좀더 가까운 또 다른 ‘절규’가 있어 아쉬움을 달랬다. ‘모성’이 가진 모든 생명력을 제거해버린 듯 창백한 ‘마돈나’도 빼놓을 수 없다.
전시는 9월6일까지다. 한진관광은 오슬로 직항 대한항공 전세기를 6월20·27일, 7월4·11일(총 4회, 매주 토요일) 운항하며 카타르항공도 오슬로에 취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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