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이랑에르를 뒤로한 채 산을 넘어 또 다른 협곡으로 향했다. 노르드피오르다. 1848m 높이의 스콜라 산이 먼 곳에서 온 손님을 반긴다. 해마다 여름이면 해수면 높이부터 이 산에 뛰어올라가는 경기가 열린다고 했다. 피오르가 끝나는 곳에 7000명이 사는 작은 도시 로엔이 있다.
눈 덮인 산들과 셴달 호수를 바라보며 초가집들이 서 있다. 미네랄 성분이 많은 이 호수의 물빛은 유독 파랗다.
로엔의 명물은 피오르와 거의 맞닿을 듯 가까이 있는 셴달 호수다. 물이 유난히 푸르다. 물속 미네랄 성분이 햇살을 머금고 에메랄드그린으로 빛나고 있었다. 유람선의 선장은 “1890년대부터 증기선 관광이 성행하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호숫가 언덕엔 브렝 폭포가 떨어지고, 역시 지붕에 풀밭을 얹은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림 같다’는 것이 바로 이런 풍경이겠구나 싶었다.
호수가 끝나는 곳에는 레스토랑이 있고 송어요리를 팔았다. 특이하게도 이곳의 송어는 흰살생선이었다. 호수의 미네랄 때문에 생선살이 붉지 않고 희다고 했다. 호수를 떠나 숲길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니 셴달 빙하가 나왔다.
세계적인 철학자이자 생태학자였던 아르네 네스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도구로서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자체에 가치를 뒀다. 그는 환경을 인간의 쓸모 차원에서만 접근하는 걸 ‘표층생태주의’라 부르면서, 이를 벗어난 심층생태주의를 주창했다. 어떤 이들은 네스와 같은 사람들을 ‘근본생태주의자’라 부르기도 한다. 네스가 바로 노르웨이 태생이다. 평생 숲과 산골짜기를 벗삼아 찾아다녔던 네스 같은 사람을 낳은 것은 노르웨이의 자연이었다.
유난히 흰 자갈들, 봄을 맞아 연초록을 뽐내는 나무들, 그 위로 서늘한 푸른 빛을 내는 빙하.
하지만 아름다운 피오르들이 지금까지 공짜로 지켜진 것은 아니다. 1970년 네스는 700m 높이의 마르달스포센 폭포 앞 바위에 쇠사슬로 자신의 몸을 묶었다. 정부가 피오르에 댐을 건설해 자연을 망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네스를 비롯한 일군의 시위대는 경찰에 들려나왔고 결국 댐은 예정대로 지어졌으나, 이 사건은 노르웨이 전역에서 환경을 지키자는 목소리가 퍼져나가는 결과를 낳았다. 예이랑에르도 실은 지금 위기를 목전에 두고 있다. 2005년 유네스코가 그 일대를 세계유산 목록에 올렸지만 정부는 피오르를 가로지르는 전력망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밤이 되어도 여전히 날은 밝았다. 피오르에 한 주민이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었다. 순식간에 물고기 한 마리를 낚아올린다. 손바닥보다도 큰 물고기였건만, 낚시꾼은 “너무 작다”며 이내 다시 풀어준다. 팔뚝만 한 고기가 낚이는 이곳에서 그 정도 크기는 치어에 불과한 모양이었다. 선선한 바람, 점점 검게 물들어가는 산들과 바다. 피오르 사람들의 삶의 시간은 우리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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