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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여행(1)- 신이 그린 풍경화, 예이랑에르 피오르

딸기21 2015. 5. 21. 13:57
여름으로 향하는 길목, 아직 날씨는 변덕스러웠고 바람은 쌀쌀했지만 해는 밤 10시가 넘도록 지지 않았다.

평화롭고 느렸다. 어디든 깨끗하고 소박했다. 노르웨이 남서부, 오슬로에서 40분간 비행기를 타고 크리스티안순에 도착했다. 이곳을 출발점으로 피오르(fjord) 순례에 나섰다. 64번 지방도로, 아틀란테하브스베이엔(Atlanterhavsveien·대서양길)이라 불리는 8.3㎞의 길은 스키점프대처럼 치솟은 다리로 섬과 섬을 잇고 있었다. 바다 위를 달리고 시골길을 지나 바닷가 소도시 몰데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예이랑에르(Geiranger), 노르웨이가 자랑하는 피오르이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다.

페리를 타고, 다시 자동차로 달리고, 또 페리를 타고, 눈 덮인 산봉우리 밑 해발 400m 고도의 호수를 지나니 예이랑에르가 내려다보였다. 독수리 날개깃들을 닮았다 해서 ‘외르네스빙옌(Ørnesvingen·독수리길)’이라 불리는 꼬불꼬불 산길을 타고 내려가는 길은 장관이었다. 협곡을 비집고 들어온 바다가 산과 만나는 곳, 피오르가 시작되는 곳에 마을이 있었다.

깎아지른 듯한 협곡 사이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예이랑에르 피오르가 펼쳐져 있다. 이곳 사람들은 “뉴질랜드와 칠레, 미국 알래스카에도 비슷한 지형이 있지만 피오르에 사람들이 사는 곳은 노르웨이뿐”이라고 말한다.





‘예이르’(화살)라는 이름처럼 이곳은 화살의 맨 앞머리에 해당하는 곳이다. 인구 250명, 골짜기 속 마을은 작고 고요했다. 계곡 밖 세상과 연중 내내 이어진 길은 외르네스빙옌 하나뿐이라고 했다. 오슬로까지 이어진 다른 도로들은 겨울에는 폐쇄된다. 5월인데도 산을 넘어올 때에는 진눈깨비가 몰아쳤다. 산 아래 풀밭과 새잎이 돋아나는 나무들, 눈 덮인 산꼭대기는 한눈에 4계절을 보여주는 듯했다.

부둣가의 레스토랑 옆에는 목조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아랫단은 돌로 받치고, 나무로 벽을 이었다. 지붕에 떼를 입힌 건 이 동네 전통 방식이다. 여름철 햇빛과 겨울철 한기를 막아주기 때문이란다. 언덕길을 올라가면 테마파크의 기념품점처럼 예쁜 초콜릿 가게가 나온다. 위층은 초콜릿을 파는 하늘색 상점이자 카페이고, 아래층 작은 ‘공장’에선 부지런히 한 남자가 초콜릿을 휘젓고 있다.



카페도 초콜릿 가게도 식당도 모두 아담하다. 군더더기 장식도 없고, 옛스럽지도 그렇다고 모던하지도 않은 것이 이곳 사람들 삶의 모습이다. 빼어난 경관도 좋지만 이 외진 곳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졌다. 피오르를 옆에 끼고 느릿느릿 걸으며 마을의 역사를 엿보는 것은 여행의 숨겨진 재미였다.

산에서 쏟아져내리는 강물은 유속이 빨라 얼지 않는다. 이곳에 오래전부터 마을이 자리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폭포처럼 떨어지는 물줄기를 따라 나 있는 산책로로 들어섰다. 한옆에 낡은 파이프가 보였다. 수력발전을 할 때 쓰던 것이라고 했다. 부두 옆 캠핑장엔 캠핑카와 텐트들이 모여 있고, 가파른 산등성이에는 관광객들에게 빌려주는 집들이 있다.

집들의 뒷면은 부두를 향해 있고, 위쪽 길로 난 앞면에는 초콜릿 카페 등의 가게가 있다.



주민 수는 몇 안되지만 있을 건 다 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마당 넓은 학교 옆엔 오래전 썼던 옛날 교사(校舍)가 그대로 서 있다. 학교 옆은 노인 요양홈이다. 노르웨이는 인구 510만명 중 20%만 도시에 산다. 피오르 근처 섬 출신인 헬렌(40)은 “나는 전교생이 52명뿐인 시골 학교에 다녔다. 노르웨이에선 시골이나 도시나 삶의 질은 똑같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피오르의 물빛은 푸르다 못해 검었다. 여름이면 ‘일곱 자매들’이라 불리는 일곱 개의 폭포가 산꼭대기에서 바다로 내려온다고 했다. 천혜의 협곡을 보러 외부 관광객이 처음 예이랑에르에 들른 것은 19세기 말이다. 1400년 무렵부터 마차와 말이 다니는 도로가 있었다지만 예이랑에르는 현대가 되기 전엔 오지나 다름없었다. 1889년 두 마리 말이 끄는 네 바퀴 마차를 타고 남쪽 내륙의 릴레함메르에서 이곳 경치를 보러 온 ‘첫 관광객들’이 도착했다. 릴레함메르에서 온 손님들은 2년 뒤 이곳에 호텔을 지었다. 산기슭에 위치한 유니온 호텔이 그곳이다.


피오르드 지역 전통방식으로 지어진 집들. 열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지붕에 풀을 심은 것이 특징이다.



이 호텔을 짓고 4대째 경영해온 미엘바 집안의 역사는 근현대 예이랑에르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4대째 이어진 호텔은 초창기 목조건물에서 1979년 콘크리트 건물로 바뀌었다. 호텔 1층에는 자동차 박물관이 있다. 1932년산 고풍스러운 뷰익 앞에는 자동차를 공동소유했던 농민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옆에는 고풍스러운 외관의 1931년식 내시와 1919년식 캐딜락57이 위용을 자랑한다. 마차에서 자동차로 세상이 바뀌던 시절, 농부들은 일종의 차량조합을 만들어서 미국 자동차를 사들였다. 깎아지른 협곡 마을에서 타기엔 적합하지 않았기에 미엘바 집안에서 자동차 개조공장을 만들어 ‘피오르 스타일’로 고쳤다. 이렇게 재탄생한 자동차들 문에는 예이랑에르의 마크가 찍혀 있다.


미엘바 호텔의 자동차 전시관.


미엘바 집안 3대손인 칼 미엘바는 여기저기 흩어졌던 자동차들을 모아 박물관을 만들었다. 그의 아들로 호텔 경영을 맡고 있는 신드라 미엘바(47)는 “아버지는 이 차들이 예이랑에르에 속한 것이라고 늘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1993년 소냐 여왕도 은혼식 때 이곳을 방문했다”고 자랑하지만, 오래된 호텔도 세상의 변화 앞에선 도리가 없다. 직원 120여명 중 상당수는 외지인이며 스웨덴 등 외국에서 온 사람들도 많다. 고령화 탓에, 이곳 주민들로는 노동력을 충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관광객으로 경치를 구경하기는 좋지만 피오르 안에서 사는 이들의 삶은 어땠을까. 그 자취를 보여주는 곳이 유니온 호텔 맞은편의 피오르센터다. 지은 지 몇 년 되지 않은 아담한 박물관은 상상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예이랑에르의 옛 생활상을 보여주는 민속박물관이면서, 뱃길 체험과 폭포 체험을 3D로 구현한 미니 테마파크 같기도 했다. 배를 타고 피오르를 지나듯 바닥이 흔들리고 물살이 튄다.


예이랑에르의 피오르 센터. 강을 따라 아래쪽으로 산책로가 나 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피오르 센터 안에는 주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공간과 심지어 '체험 시설'도 만들어져 있다. 사진속 짧은 다리를 지날 때면, 배를 타듯 흔들린다!


무지한 관광객의 의문 하나. 피오르에도 파도가 있을까? 있다. 그러나 피오르의 파도는 달의 인력이 아닌 산사태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이 다른 바다와의 차이다. 피오르는 잘 알려진 대로 빙하가 깎아내린 협곡에 바닷물이 들어차 생긴 지형이다. 얼고 녹기를 반복하는 바위산들은 유독 풍화가 심하고 산사태, 눈사태가 잦다. 피오르센터의 가이드 벤체 달은 “1930년대엔 눈사태로 쓰나미가 일어나 수십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 협곡의 상징과도 같았던 닙스플로(knivsfla), 수면에서 250m 위 절벽에 자리잡았던 ‘벼랑농장’들이 사라진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염소를 키우던 농장들은 산사태 위험 때문에 1960년대가 되자 모두 떠나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농장 건물들은 나뭇가지들 사이에 숨어 유유자적 배를 타고 노니는 관광객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 예이랑에르 가는 길

오슬로에서 국내선 항공편으로 올레순으로 이동, 올레순에서 124㎞는 자동차로 움직이는 게 편하다. 에이스달에서 시작되는 지방도로 63번이 외르네스빙옌과 예이랑에르로 이어져 있다. 여름철에는 올레순에서 예이랑에르까지 정기버스가 운행된다. 헬리실트에서 피오르로 들어가는 카페리는 하루 4~8차례 운항한다. 6월20일부터 8월20일 사이에는 발달렌 부두에서도 매일 2차례 페리가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