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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과 친해지려던 대사가 공격을 받았다" 리퍼트 대사 피습, 미 언론들 보도

딸기21 2015. 3. 5.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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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과 친해지려 했고 아들 이름까지 한국식으로 지었던 대사가 공격을 받았다.”


미국 언론들은 5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 피습 사실을 일제히 보도했다. 특히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들은 리퍼트 대사가 지난해 10월 부임한 뒤 한국인들과 친해지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던 점을 지적하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리퍼트, 오바마 '이너서클' 멤버

CNN방송은 이날 오전 내내 리퍼트 대사가 흉기에 난자당했다며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방송은 리퍼트 대사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오랜 친구이며 오바마 대통령이 상원의원이던 시절부터 ‘이너서클(측근그룹)’의 멤버였다고 전했다. 


마리 하프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CNN 인터뷰에서 “주한 미 대사관이 한국 법 집행기관의 수사에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면서 폭력행위를 강력 비난했다. 그러나 하프 부대변인은 이번 사건을 ‘폭력행위(this act of violence)’라고 언급했고, ‘테러’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CNN은 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버나딧 미핸 대변인의 성명을 인용해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리퍼트 대사에게 위로 전화를 했다고 보도했다. 미핸 대변인은 “대통령은 리퍼트에게 전화해 리퍼트와 아내 로빈을 늘 생각하고 기도하고 있다면서 빨리 회복되길 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리퍼트 대사 피습 사실을 확인한 미 국무부 성명. 미 국무부 웹사이트



워싱턴포스트는 리퍼트 대사가 서울에 도착한 이래 몸을 낮춰(down-to-earth) 한국인들과 가까워지려 애써왔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신문은 “리퍼트 대사는 관저에서 집무실까지 짧은 거리이지만 거의 매일 걸어서 출근했다. 하운드견 그릭스비와 서울 도심을 산보하고 그릭스비 트위터를 만들어 사진을 올리고 서울생활을 전했다”고 소개했다. 또 올초 첫 아이를 서울에서 낳았고, 아들에게 세준이라는 한국어 미들네임을 지어줬으며 이런 사실이 한국 언론에도 많이 보도됐다고 전했다.

일본 언론들, 셔먼 발언과의 연관성 주목

뉴욕타임스는 “한미 연례 합동군사훈련에 반대하는 사람이 리퍼트 대사를 흉기로 공격했다”며 “좌파 성향 한국인 일부는 연례 합동훈련이 북한과의 긴장을 높이고 한반도 화해 노력을 어렵게 만든다며 비판해왔다”고 보도했다. 폭스뉴스는 리퍼트 대사가 서울에 부임한 이래 한국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지만 주한미군의 존재에 대해 일부 한국인들은 통일의 장애물이라 여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언론들도 리퍼트 대사 피습 뉴스를 신속하게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사건 발생부터 용의자 체포, 대사 병원 이송 등을 실시간 속보로 타전했다. 아사히신문 등 주요 언론들은 인터넷판에 이 사건을 톱뉴스로 실었다.
 
일본 언론들은 피의자 김기종씨가 2010년 당시 주한 일본대사에게 콘크리트 조각을 던진 전력이 있다는 점을 중시했다. 일부 언론들은 한·일 과거사 문제와 관련, 웬디 셔먼 미 국무차관의 일본을 편드는 듯한 발언이 한국 내에서 반발을 산 것과 관련이 있는지에 주목했다.

알자지라방송과 BBC 등도 이 사건을 인터넷판 톱뉴스로 올렸다. 



2000년대 이후 미 외교관, 미국 시설 노린 공격들 급증

미국 대사관이나 외교관들은 세계 곳곳에서 무장세력이나 반미 진영의 표적이 돼왔다. 정치적 반대를 넘어 폭탄테러나 총격, 수류탄 공격 등 물리적인 폭력의 타깃이 되는 경우도 잦았다. 

대표적인 예가 2012년 9월 벌어진 리비아 벵가지 미국 영사관 테러다. 리비아 제2의 도시이자 동부 중심지인 벵가지는 무아마르 카다피를 축출한 내전에서 반카다피 세력의 거점이었다. 카다피 정부군의 벵가지 주민학살을 막기 위해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함께 군사개입을 결정했고, 이는 카다피를 몰아내는 데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하지만 전후 리비아의 불안정이 계속되면서 이슬람주의 반군들을 중심으로 세속주의 새 정부에 맞선 공격이 이어졌다.

이슬람무장세력은 9월11일을 맞아 벵가지의 미국 영사관을 로켓포 등으로 공격했다. 이로 인해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대사와 영사관 직원, 미 정부와 계약한 민간군사회사 직원 2명 등 미국인 4명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미국 대사가 희생됐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미 정부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당시 국무장관이던 힐러리 클린턴에게 책임 논란이 따라붙었다. 공화당은 국무부가 무장집단들의 공격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듣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아 참사가 일어났다며 맹공격했다.

이 사건은 클린턴이 대선에 출마할 경우 최대 이슈가 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클린턴 스스로도 지난해 6월 출간된 저서 <힘든 선택들>에서 이 사건을 ‘치명타’로 묘사했다. 


미국 시설이나 해외 미국인들에 대한 공격으로 지금도 미국인들 사이에 뼈아프게 남아있는 악몽은 1979년의 이란 테헤란 미대사관 인질사건이다. 이슬람혁명 뒤 1년이 채 지나지 않았던 그 해 11월 대학생 등 과격 시위대가 미국으로 달아난 파흘라비 국왕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며 미대사관을 점거하고 미국인 외교관 등 70여명을 인질로 잡았다. 


미국은 이란 원유수입 금지, 미국 내 금융자산 동결 등 경제제재를 가했고 걸프와 인도양에서 무력시위를 했다. 1980년 4월에는 특공대를 투입해 구출작전까지 시도했으나 항공기와 충돌하는 등 작전에 차질을 빚어 특공대원 8명만 목숨을 잃었다. 인질 억류와 구출작전 실패로 지미 카터 정부는 미국 내에서 대대적인 비난을 받았다. 인질 사태는 1981년 1월 444일만에야 종료됐고 인질들은 풀려났다. 이 사건은 지금도 미국과 이란의 관계 정상화를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1998년 케냐·탄자니아 미 대사관 테러공격은 알카에다가 미국 시설을 겨냥해 저지른 9·11 이전의 대표적인 테러사건이다. 두 곳의 미 대사관에서 동시 폭탄테러가 일어나 200명 이상이 희생됐다. 

그러나 미국 시설이나 미 외교관들이 중동과 아시아, 아프리카 곳곳에서 주된 공격 목표가 된 것은 2000년대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이라크에서 전쟁을 벌이면서다.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는 미국 등 서방 외교관과 기업 주재원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교전이 벌어졌고, 파키스탄에서는 몇 번이나 미 영사관을 노린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터키, 우즈베키스탄, 인도, 인도네시아 등 곳곳에서 이슬람 무장세력의 미국 대사관·영사관 공격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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