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

베네치아

딸기21 2014. 12. 30.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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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자네가 말하지 않은 도시가 하나 남아 있네.” 

마르코 폴로가 고개를 숙였다. 

“베네치아.” 

칸이 말했다. 

마르코가 미소를 지었다. 

“제가 폐하께 말씀드린 게 베네치아가 아니라면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황제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난 자네가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걸 본 적이 없네.” 

“도시들을 묘사할 때마다 저는 베네치아의 무엇인가를 말씀드렸습니다.” 

 

사흘 동안 베네치아의 골목들을 걸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정처없이 걸어다녔다. 그렇게 돌아다녔건만 내게는 사진 한 장 없다. 지도를 손에 쥐고 있었지만 글자들을 읽을 수는 없었다. 적지 않게 여행을 해보았고, 먼 나라 낯선 도시에서도 길 찾는 것은 늘 쉬웠다. 골목의 이름, 건물의 이름, 사원이나 성당의 이름을 적어두고 되새겨보고 기억하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이 도시에서 나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다. 

 

어떤 글자도 읽을 수가 없었다. 문을 밀어야 하는지 당겨야 하는지, 열쇠를 오른쪽으로 돌려야 하는지 왼쪽으로 돌려야 하는지 몰라 헤맸다. 고풍스럽고 예쁜 호텔 방에는 옥상 발코니가 딸려 있었지만 그것도 하루 지나서야 알았다. 낮동안 돌아다닌 곳들을 지도에 표시하면서도, 유명하다는 여러 건물들의 이름조차 읽을 수가 없었다. 굳이 펜을 꺼내 표시를 한 것은 그저 다음날 더 많이 돌아다니기 위해서였다. 더 많이 걷고자 한 것은 잠을 자기 위해서였다. 올케는 잠도 자지 않았고 밥도 먹지 않았다. 나는 조금 잤고 조금 먹었다. 피붙이를 잃는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하루 종일 한숨이 나왔다. 숨을 쉬기 힘들었다.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아팠다. 아프다기보다는 먹먹했다. 

 

그곳에 가기 전까지, 내게 베네치아는 칼비노의 도시였다. 칼비노가 그린 도시, 마르코 폴로가 입에 올리지 않았던 도시.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칼비노의 도시가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까. 그곳에서의 시간은 끝이 보이지 않는 숨막히는 터널처럼 길었다. 나는 지금도 내가 왜 그곳에 가야했는지 알지 못한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래야 했을까.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을까. 끊임 없이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스스로 대답할 수도 없고 누군가 답해줄 수도 없는 물음을. 가족을 잃은 이들의 아픔을 이전엔 미처 알지 못했던 내가 한심했다. 그런 아픔을 겪은 모든 친구들에게 미안해졌다. 나는 타인의 슬픔과 상실감에 얼마나 무감각했던가. 얼마나 바보같았던가.

 

 

직장 동료가 세상을 떠났을 때 왜 나는 그 정도밖에 안타까워하지 못했던가. 누이를 잃은 동료에게 왜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지 않았던가. 이태 전 몇 달 간격으로 부모님을 떠나보낸 친구의 아픔을 왜 위로하지 못했던가. 날마다 기사를 쓰면서 나는 수많은 죽음을 전한다. 내전으로 죽는 사람들, 비행기가 떨어지고 재난이 일어나 죽는 사람들. 이제 나는 누구의 죽음도 쉽게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오빠를 보낸 뒤에야. 젊은 나이에 떠난 사촌들을, 가방에 돌을 잔뜩 집어 넣고 한강에 뛰어들었던 친구를, 이 세상에서 할 일이 참 많았는데 어이없게 교통사고로 숨진 선배를, 내가 더 아파했어야 했던 죽음들을 다시 떠올린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이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에겐 부질없는 충고일 뿐임을 깨닫는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는 드라마에 묘사되는 것처럼 멀쩡하게 돌아다니고 먹고 말할 수 없다는 것도. 겨울이다. 오빠는 재가 되어 찬 바닥에 묻혀 있다. 겨울이 아니라면 좀 나았을까. 덜 추웠을까.

 

장례식장에 오신 분은 베네치아에 머무는 동안 한국의 오라버니를 잃었다고 하셨다. 그 분이 아이를 낳았다는 베네치아의 병원에 내 오빠가 누워 있었다. 사람과 사람은, 삶과 죽음은 어떤 식으로 이어져 있는 것일까. 누워 있는 오빠를 가장 먼저 발견한 이를 오늘 낮에 만났다. 그 또한 몹시 놀랐고, 충격이 컸을 것이다. 일주일 동안 밤이 되면 오빠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는, 오빠의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래서 좋았다고, 마지막 여행을 함께 했던 사람들끼리 만나서도 즐거웠던 순간만을 이야기했다고. 

 

호수의 수면 위에 잔물결이 일었다. 송나라 때 지은 오래된 구릿빛 왕궁의 그림자가 물에 떠다니는 나뭇잎처럼 산산이 부서지며 반짝였다. “기억 속의 이미지들은 한번 말로 고정되고 나면 지워지고 맙니다. 저는 어쩌면, 베네치아에 대해 말을 함으로써 영원히 그 도시를 잃어버릴까봐 두려웠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다른 도시들을 말하면서 이미 조금씩 잃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입관과 장례식과 화장과 안치와 추모와 사망신고의 과정 중에서 어떤 순간이 '이별'의 매듭인지 모르겠다. 마르코가 다른 도시들을 말하면서 조금씩 베네치아를 잃어버리듯, 남겨진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위를 통해 오빠는 자꾸만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말로 하기 힘든 것들. 맴돌기만 하는 느낌들. 그래도 기억해야만 하는 것들을 적어보려 애쓰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다. 아직도 나는 전화를 받은 순간 이후를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내게 괜찮으냐고 묻는다. 혹은 묻지 않는다. 말 없이 이해해주는 사람도 있고, 이젠 괜찮아졌겠거니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족을 떠나보낸 이들에게 내가 그랬듯이. 후배가 올린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한 구절을 보았고, 베네치아를 떠올리는 걸 멈출 수는 없었다. 칼비노 전집을 주문했다. 오늘이 오빠의 49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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