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

응답하라 1988, 그리고 추억담.

딸기21 2015. 12. 1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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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팔 보며 떠오른 추억??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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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른이 될 때까지 내게 가장 큰 추억의 둥지로 남아 있는 어릴 적의 '우리 집'이 굉장히 큰 2층 양옥집이었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엄마가 그 집 열 여덟평이었다고 해서 충격을 받았다.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굉장히 큰 양옥집일 수는 없었던 게, 1층에 방 하나 2층에 방 하나였다. 음... 마루가 굉장히 컸던 게 틀림없어. -_-;;

그나마도 2층은 난방도 없고 해서 거의 못 쓰고 아래층에 할머니 포함 여섯식구가 함께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살았는지. 참고로 내동생은 아장아장 걷던 무렵 2층 창문에 걸터앉아 있다가 아래층으로 떨어질 뻔함. 울엄마 혼비백산함.


암튼 그 집 부엌 옆에 창고방이 하나 딸려 있었다. 거기 아주머니 아저씨와 직장 다니는 딸이 세들어 살았는데, 어느날 그 방에 연탄가스가 새어들어가 딸이 병원에 실려갔다. 울엄마가 너무너무 놀라서 사색이 됐던 기억이 난다. 



융자금을 늘 전문용어인듯 자랑스럽게 '용자금'이라고 하시던 그 집 아주머니는 우리를 귀여워해주셨다. 동네 무허가 집들이 재개발되어 무궁화연립이라는 연립주택 단지가 지어졌고, 아주머니네는 그리로 옮겨가셨다. 하지만 어차피 울집과 거의 붙어 있었던지라 그 댁에 수시로 놀러갔다. 아주머니가 연립 마당에 조롱박을 키우셨는데 엄청 많이 달렸다! 그걸 다 톱으로 썰어서 바가지를 만들어주셨기 때문에 한동안 우리 집에는 조롱박 바가지가 끊이지 않았다. 


서울 복판(이라고 우겨봄)이었지만 실은 우리 집에도 밭이 있었다. 옥수수밭. 그리고 우리 집 마당에는 아주아주 크고(아 이건 내 상상이 아닐거야, 틀림없는 사실이야) 멋지고 근사하고 마법에 에워싸인 목련나무가 있었다. 나는 그 나무에 늘 올라가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대체로 매일매일 꽤 오랜 시간을 그 나무 위에 있었다. 


옥수수밭 없애고 거기다가 새 집을 지었는데 지을 동안 무궁화연립의 어느 집에 세들어 살게 됐다. 이번에도 역시 단칸방에 다섯 식구(할머니는 부산 작은집으로 가심)가 함께 살았고, 부엌도 주인집과 같이 썼다. 집을 새로 지은 뒤에는 제법 커서 큰집과 같이 살았다. 큰집 식구들이 미국으로 이민간 뒤에는(응팔에 나오는 성동일의 형처럼, 울 큰아버지도 LA에서 세탁소 하셨다...가 아니고 다른 교포가 운영하는 세탁소에서 일하셨다고 한다) 부산서 작은집 식구들이 올라와 함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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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우리 식구끼리만 살았던 적이 별로 없구나. 내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_- 굉장히 큰 집으로 이사가기 전에는 적산가옥처럼 생긴 청운동 외가에서 함께(라고 쓰고 '얹혀'라고 읽는다) 살았다. 대학 갈 무렵 오랜 터전을 버리고 우리집과 작은집은 헤어졌다. 그리고 우리 식구는 다시 외가에서 (또 얹혀) 살게 됐다. 


1998년 아파트에 처음으로 살게 됐을 때 엘리베이터 타면서 기분이 이상했다. 엘리베이터야 그 전에도 무수히 많이 타봤지만, 날마다 그걸 타고 집으로 들어간다니. 내 밑에 층에 사람이 자고 있고 그 밑에도 자고 있고 그 밑에도 자고 있고 그 밑에도 자고 있다니...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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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팔의 덕선이 동생 노을이. 무쟈게 늙었다. 생각해 보니 우리 동네에도 어려서부터 엄청 늙은 애가 있었다. **라는 아이인데 동네 가게집 막내아들이었다. 국민학교 6학년 때 나하고 같은 반. 걔는 국민학교 입학도 하기 전부터 영감님 얼굴이었다. (세상이 넘 좁고 좁은데... 설마 걔가 이 글 보는 건 아니겠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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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팔이 딱 내 나이(88년 고2) 아이들 얘기라 엄청 공감된다. 고등학교 때 늘 함께 어울려 다니며 놀았던 친구들도 생각난다.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놀던 기억도. 재우네 어머님도 기억남. 나중에 나 결혼한다고 재우네 전화를 했는데 "재우 있나요" 했더니 어머님이 전화받으시자마자 내 목소리 알아들으시고 "정은이니?" 하셔서 깜놀했던 기억도. 음... 재우네 방에서 공 가지고 놀다가 전등 깨뜨리기도 했었구나. 작년에 상 당했을 때 찾아온 재우는 완전 증권맨스러워보이는 중년아저씨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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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드라마에서 쌍문고 애들 교복입고 다니는 거 이상함. 걔넨 교복이 있었나? 우린 교복 한 번도 안 입어본 세대인데... 

그리고 "과외 한번 안 시키고 학원 한번 안 보내고" 어쩌구 하면서 보라 엄마가 얘기하는 것도 너무나 요즘 사고방식에서 나온 대사같다. 불법 비밀 과외를 하는 아이들이 일부 있었다고는 하지만 정말 극소수였고, 과외나 학원 교육 안 시켜줬다고 부모가 죄책감을 느끼는 시대는 아니었다. 하긴, 나중에 어른 돼서 만난 어떤 사람은 비밀과외를 받았다고 했는데, 자기가 받았기 때문인지 "에이, 남들도 다 받았다"고 주장하더라.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님. 고등학교 때 성적이 많이 올라간 아이가 있었는데, 걔가 몰래 과외받는다고 온 학교에 소문이 퍼졌을 정도로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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