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낙타는 죄가 없다

딸기21 2015. 6. 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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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얘기부터 꺼내자면. 낙타는 착할까, 못됐을까? 그냥 사람들끼리 '쟤 참 착해', '쟤는 사나워', '쟤 못됐어' 할 때처럼 낙타를 사람이다 생각하고 물어봤다. 낙타에게 물어본 것은 당연히 아니고 오래 전 중동을 방문했을 때 거기서 오래 산 한국분께 여쭤본 적이 있다. 답은, "아마도 못되지 않았을까"였다.


둘이 머리 맞대고 나눈 이야기의 '근거'는 이솝우화였다. 우화집에는 낙타와 관련된 이야기가 두 개 나온다(실은 그 시절 그 분과는 하나의 우화만 얘기했지만;;)


어느 추운 밤, 아랍인이 천막 안에 앉아 있는데 낙타가 머리를 들이밀었다. 자기도 추우니 머리만 넣으면 안 되겠느냐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그랬더니 다음엔 목을, 앞다리를, 넣으면 안 되겠냐고 한다. 허락을 했더니 뒷다리, 그 다음엔 아예 자기도 좀 들어오면 안 되냐고 한다. 주인은 낙타를 어엿비너겨 허락을 했다. 그리고는... 주인은 낙타에게 쫓겨났다. 


낙타가 황소의 뿔을 시샘해, 제우스신에게 자기도 뿔을 달라고 했다. 크고 강한 몸을 갖고도 기껏 황소의 뿔을 샘내는 낙타가 미워서 제우스는 뿔을 달아주기는커녕 낙타의 긴 귀를 싹둑 잘랐다. 그래서 낙타는 귀가 짧아졌다고 한다.


낙타는 보복을 하는 동물이라는 얘기도 있다. 캬라반들이 낙타를 타고 여행을 할 때, 행여 낮에 낙타를 때리기라도 했으면 밤에는 반드시 입고 있던 옷을 벗어서 다른 곳에 놔둬야 한다고. 낙타가 밤에 와서 그 옷을 보고, 주인인 줄 알고 질근질근 밟으며 복수를 한다는 것이다. 거대한 낙타에게 밟히면... 으으... 


실제로 낙타의 복수가 유튜브에 올라온 적 있다. 도살당하기 직전, 나무에 묶여 있던 낙타가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들의 목을 물어 내동댕이치는... (아래 동영상은 실은 19금이다. 그러나 오들오들매거진은 19금 사이트이므로... 걍 퍼다놓음. 난 잔혹할 것같아 안 봤다.)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에 난리다. 이 질병에서 이렇게 방역이 무너진 나라는 없었다. 이런저런 자료를 찾다보니, 이건 뭐... 불가해한 수준의 시스템 붕괴를 목도하는 기분이랄까. 


연이어 들려오는 소식들은 코미디다. 



낙타가 무슨 죄냐고... 


잠깐 설명하자면 낙타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 건조지대에 사는 단봉낙타(C. dromedarius)와 중앙아시아의 쌍봉낙타(C. bactrianus)다. 실제로 다가가서 본 낙타는 '사막의 배'라는 말이 딱 맞았다. 낙타의 모든 것은 사막에 맞춰져 있다. 모래바람을 막아주는 기나긴 눈썹, (이건 19금 포스팅이니 한줄 더 붙이자면 낙타 눈알을 남성 성기능 강화 보조기구로도 썼다는 얘기도 있다), 정말 꼭 필요한 존재인데도 괜히 혹이라고 불리는 등의 지방(도쿄 우에노의 과학박물관에는 무려 이 지방덩이가 전시돼 있다), 뜨거운 모래바닥을 걷기 좋도록 털 부숭부숭 난 넓은 발, 심지어 똥조차도! 수분 배설을 최소화한 것이어서 그 주인의 덩치에 비해 아주 작고 깨끗??하다.


카멜이라는 말은 그리스어에서 나왔고, 그 그리스어는 중근동 히브리-페니키아어의 가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두 종류의 낙타를 비롯해서 카멜은 아니지만 카멜 비슷한 것들, 즉 신대륙의 야마, 알파카, 과나코(얘가 알파카의 선조다), 비쿠냐를 통틀어 카멜네 식구들(Camelidae)이라고 부른다. 


사실 지금 현재 세계에서 낙타가 가장 많이 사는 나라는 호주다. 호주 서부 사막에 낙타가 75만마리 정도 사는데, 너무 개체 수가 많다고 해서 막 핍박을 한다. 19세기에 자기들이 들여가 놓고... 낙타의 잘못이 아니다.


낙타는 유구한 세월 동안 인류와 함께 해온 동물이다.


영양처럼 보이는 이 귀여운 것들이 낙타의 원형... Life restoration of Stenomylus hitchcocki from W.B. Scott's A History of Land Mammals in the Western Hemisphere. 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이스라엘 네게브 사막에 남아 있는 낙타 암각화. 사진/위키피디아


One of six figures from the Mughal emperor's ceremonial procession on the occasion of the Id. 무굴 제국의 마자르 알리 칸이라는 화가가 1840년 그린 그림. http://collections.vam.ac.uk/


20세기 초반 발칸 전쟁 때 불가리아군에는 낙타부대가 있었고


Painting depicts mounted troops of the Imperial Camel Corps Brigade with the Egyptian town of Magdhaba in the distance, 23 December 1916. 이집트에 쳐들어간 영국군대도 낙타를 탔다.


솔직히 낙타를 타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생각만큼 낭만적이거나 멋지거나 즐겁지는 않다.



이집트 대피라미드를 보러 낙타를 타고 갔다가 엉덩이가 까져 피가 철철 났다는 어떤 처자의 스토리도 있다.


그래도 낙타는 죄가 없다.


낙타와 관련된, 아주 슬픈 에피소드 하나.


"엄마, 우리 눈가에는 왜 털이 많아" 

"사막에 모래가 많아서." 

"발톱은 왜 두개야" 

"사막에서 잘 걸어 다니려고" 

"등에 있는 혹은 뭐고" 

"사막에서 오래 견디려고" 

"근데 왜 우린 동물원에 있어?"


이젠 동물원에서도 잘 못 지내게 생겼네...


이 글을 읽은 중동전문가님들이 낙타의 '성깔'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다.


건국대 최창모 교수님은 "낙타 화 나면 정말 무서워요"라고 하셨고, 사우디에 거주하는 고교 동창 김태희님은 "한성깔하던데"라고 제보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타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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