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중학교 1학년인데, 지금껏 학원이나 과외 없이 영어를 혼자 하게 했어요.
중학교 들어가서 영어시험을 봤는데, 문법도 단어철자도 잘 몰라서 걱정했지만 뜻밖에도 점수는 잘 나왔네요.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사교육 없이 공부하게 하려고요.
딱히 ‘엄마표 영어교육’이라고 할 만큼 제가 붙잡고 가르친 것은 아니예요. 제가 직장에 다니는 엄마라서요. 그래도 CD딸린 영어 책들을 엄청 많이 읽게 했기 때문에 웬만한 영어 책들은 섭렵해본 것 같습니다.
모 사이트에서 어느 분이 초등생 아이 영어공부에 대해 묻는 글 올리신 걸 보고....
주제 넘게도 적었던 글, 혹시 좀 더 많은 분들께 도움 될까 싶어 옮겨 놓습니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건
- 영어책을 읽는 것은 (한글책 포함해서) ‘책을 읽는’ 과정의 일부이지, 영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
영어로 된 책들 중에 좋은 게 참 많거든요. 특히 문화적 다양성이나 인권 감수성 높은 내용들이 많아서, 아이들 훈육 위주인 한글 책들보다 더 마음에 들었어요. 영어를 배우는 것은 내용을 알기 위해서이지, 책 읽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영어 공부하겠다고 책 읽는 행위를 목적으로 하면 아이들이 지칠 것같습니다.
-유치원 나이 정도의 아이라면 영어로 된 책은 완전 비추... 아이들이 스토리를 무한정 빨아들이는 시기인데, 영어 네이티브 1~3세 수준의 영어책 읽어주면 지적 자극도 안 되고 무엇보다 재미가 없어. 초등학생 때부터 조금씩 읽히되, CD를 듣게 하는 방법으로 했습니다 저는. (제가 읽어주고야 싶지만 발음이... ㅎㅎ)
-CD 들으면서 따라 읽는 식으로 책마다 두번 정도 반복했습니다.
-인터넷이나 디지털기기를 이용한 활동은 시키지 않았습니다. 디지털기기는 어차피 할 것이고, 책 보는 재미를 느끼는 게 중요할 것같아서요.
그럼, 우리 딸 초등 때 했던 것들 난이도 순으로 얼추 기억나는 대로 말씀드릴게요.
아이 반응은 아이마다 다를 테니 그냥 참고만 하세요. 전질들이라 책의 권수는 다 합치면 매우 많습니다.
책읽기 버릇 들이기 좋은 그림책들
1. 옥스포드 리딩트리(단계별로 있음)
생각보다 별로였습니다. 내용이 그저 그랬는지 아이가 크게 흥미를 느끼지 않더군요. 테이프에서도 한국말 분량이 많았습니다.
2. Brain Bank
그림과 사진 중심으로 재미있게 구성돼 있고, 글은 많지 않지만 내용이 알차서 초등 1학년 정도에 딱 적당했습니다. 책 자체가 미국 킨더가튼과 1학년용이예요.
3. Berenstein Bears
글이 그리 많지 않지만 줄거리가 재미있어요. 그림도 귀엽고요. 저희 딸은 무지무지하게 좋아했어요. 내용을 확인차 물어보면 잘 대답을 못 하는데, 알아듣느냐고 물으면 다 알아듣는다고 큰소리... 하나하나 이해하지는 못해도 전체적인 줄거리를 그림 보면서 이해하고 재미있어하더군요.
4. Arthur 어드벤처북
난이도는 베렌스타인 베어스와 비슷하거나 살짝 윗급. 이것도 정말 재미있어했어요.
글 읽는 재미를 늘릴 수 있는 책들을 챕터북들
5. Magic School Bus 리더스북
신기한스쿨버스는 한글판도 워낙 인기인 좋은 책이죠. 이건 영어판 그림책인데, 아무래도 과학 얘기라 어려운 단어들이 있지만 무시하고(^^) 자연스럽게 읽고 책장 넘기게 했어요.
6. The Tiara Club
챕터북 중에서는 좀 쉬운 편. 여자아이라면 이걸로 시작하시면 좋을 듯.
7. Junie B. Jones / Nate the Great
둘 다 난이도는 비슷한데, 독특한 유머가 있어요. 그런 유머코드까지 아이들이 영어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구어체 표현들이 많은 게 좋았던 듯. 여자아이라면 주니 B 존스, 남자아이라면 아무래도 네잇 더 그레잇을 좋아할 것 같네요.
8. Magic Tree House
한글판 <마법의 시간여행>을 초등 2~3학년 때 먼저 읽었는데, 그 책을 아이가 느무느무 좋아하더라고요. 내용을 대충 아는 상태에서 영어로 읽게 했어요.
9. The Secrets of Droon
판타지 장르라서, 자연스럽게 빠져들며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제 딸은 초5때 읽었는데, 그 땐 좀 늦었다 싶더라고요. 이미 한글로 된 판타지 소설들을 여러 권 본 뒤였기 때문에 이 책이 좀 시시하게 느껴졌대요. 초등 3학년 정도면 좋을 것 같습니다.
10. Arthur 챕터북
어드벤처북이 그림책이라면 이것은 그냥 책. 어드벤처북도 엄청 좋아하더니 이것도 많이 좋아했어요.
11. Magic School Bus 챕터북
리더스북이 그림책이라면 이것은 그냥 책. 역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12. Usborne Puzzle Adventure series
퍼즐책처럼 돼 있어서 부담 없이 구경(?)하며 읽었어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영어를 공부하려고 억지로 읽는 게 아니라
재미난 책들이라서 읽는데 그게 영어로 돼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이가 책을 읽을 때에는 해석도, 단어도 중요하지 않아요
그리고 또, 아이에게 한글로 해석해주지 않았습니다.
CD(영어로 책 내용만 녹음만 해놓은 것들. 한글 해석 전혀 없어요) 들으며 따라 읽고,
저절로 내용을 아이가 따라가며 이해하게 했어요.
단어도 미리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아이가 읽다가 스스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단어가 있을 때만 알려줬어요.
영어공부가 아니라, 진득하니 앉아서 ‘책 읽는 힘’을 기르는 것에 초점을 뒀거든요.
간혹 전질들 중 한국의 판매사가 부록으로 주는 단어장이 딸려 있는 게 있어요.
5학년(이어야 하지만 안 다니고 집에서 놀) 때 단어장 보고 공책에 정리하라고 했는데,
하다보니 그게 오히려 짐스럽다는 느낌도 있었어요.
아이 상태와 기분 봐가면서 하면 좋을 듯.
어떤 책을 골라줘야 할지 모르겠다면
아이가 어떤 걸 재미있어할지, 내 아이라 해도 취향이 다르고
아이 상태도 그때그때 달라서 어떤 걸 좋아할지 확신을 못하겠더라고요.
아이가 고르게 하세요
아이 데리고 교보문고 같은 큰 서점에 가셔서,
영어로 된 챕터북 코너에서 이것저것 구경하게 하세요.
두루두루 보여주시고, 아이가 ‘이거 읽고 싶다’ 하는 걸 알아보세요.
책 베껴쓰기
참, 듣고 읽기는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것만 계속 할 수는 없으니까
홈스쿨링 할 때에는, 역시 단어는 가르쳐주지 않으면서
얇은 영어책(제 아이 경우는 The Wind in the Willows) 한 권을
매일 한 쪽씩 베껴 쓰게 했어요.
몇달에 걸쳐 한권 다 쓰고 난 뒤의 성취감을 아이가 크게 느끼더군요.
다만 책 선정은 좀 잘못됐던 듯... 저 책이 영어권 명작이라고는 하는데,
100년도 더 전에 나온 것이고 더군다나 축약본으로 돼 있어서
단어나 줄거리가 어째 좀 희한했어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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