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러시아 에너지 산업의 변화

딸기21 2014. 10. 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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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러시아 최대 석유회사인 로스네프트(Rosneft)가 민간 에너지회사 노바테크(Novatek)와 힘을 합쳐, 세계 최대 가스회사인 러시아의 국영 에너지회사 가스프롬(Gazprom)이 차지하고 있던 액화천연가스 수출부문의 ‘독점’을 깨뜨렸습니다.

 

올 들어서는 천연가스 생산부문에서도 가스프롬의 독점이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스프롬과 로스네프트, 두 개의 거대 에너지 기업을 보유한 러시아가 에너지 산업의 새로운 판도를 짜고 있는 것이죠. 세계 에너지 산업의 한 축인 러시아의 산업재편 움직임을 놓고 해석이 분분합니다. 이런 변화의 배경은 무엇이며, 이로 인해 어떤 것이 달라지는지 알아 볼까요?

 

가스프롬 ‘독점체제’ 깨뜨리는 푸틴

 

지난 7월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의 천연가스 독점체제를 재검토할 것을 당국에 지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어 9월, 푸틴 정부는 가스프롬의 독점 체제를 끝내고 향후 몇 년 간 러시아의 최대 에너지 프로젝트가 될 시베리아 천연가스전 개발에 가스프롬 외에 러시아의 다른 에너지 기업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로 인한 최대 수혜자는 로스네프트가 될 거라고 합니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로스네프트는 가스프롬 독점이 깨지자마자 가스프롬에서 액화천연가스 수출부문 책임을 맡았던 고위직 4명을 영입해갔다고 합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지는 배경을 이해하려면 먼저 가스프롬과 로스네프트가 어떤 회사인지 살펴봐야겠지요.

 

 

러시아의 에너지 산업은 세계 최대 가스회사인 가스프롬과 역시 세계 최대 석유회사인 로스네프트가 주도하고, 몇몇 기업이 뒤를 따르는 구조로 이뤄져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옛 소련이 붕괴한 후 소련의 국영 기업들은 대거 민영화됐지만 국영기업들을 불하 받은 새 주인들, 이른바 올리가르흐(신흥재벌)들의 재산 빼돌리기와 지나친 축재가 문제가 돼 국민적인 반발이 고조됐었죠.

 

2000년 집권한 푸틴은 소련 붕괴 뒤 경제를 좌지우지한 올리가르흐들을 내쫓고 에너지부문을 다시 국유화했습니다. 이는 당시 국민들이 푸틴에게 열광했던 이유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 후 경제개발 속도가 늦어지자 푸틴 정부는 다시 일부 자유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가스프롬 독점을 깨는 것은 그런 재편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시아 시장 확대 노린 포석

 

러시아의 이러한 에너지 산업의 변화는 유럽 대신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로의 에너지 수출을 늘리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유럽은 이미 포화상태의 시장이며, 게다가 우크라이나 사태 뒤 유럽은 러시아 제재를 시작하고 장기적으로는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 자립’을 꿈꾸고 있습니다.

 

반면 고속성장을 하고 있는 중국은 러시아산 에너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죠. 서방과 갈라선 푸틴은 요사이 중국과 밀착관계입니다. 지난 5월 상하이협력기구(SCO) 참석차 상하이에 간 푸틴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30년간 중국에 매년 380억㎥의 천연가스를 공급한다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금액으로 보면 무려 4000억 달러(약 410조원) 어치입니다.

 

중국에 그만큼의 천연가스를 팔기 위해 러시아는 ‘시베리아의 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550억 달러(약 60조원)가 투입될 ‘시베리아의 힘’은 시베리아의 야쿠치아•코빅친스크 2개 가스전과 중-시베리아 간 파이프라인을 포함하는 대규모 에너지 개발계획입니다.

 

‘시베리아의 힘’ 개발프로젝트- 지도 Gazprom 웹사이트


가스프롬은 이 사업 비용을 대는 대신 독점 운영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반면 로스네프트와 그 밖의 민간 에너지회사들은 가스프롬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사업이라며 자신들에게도 접근권을 달라고 요구해왔던 것이고요. 로스네프트는 지난 7월 가스프롬이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제소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별도로 로스네프트는 사할린2 가스전을 보유한 사할린에너지사를 지방법원에 제소했습니다. 사할린에너지는 가스프롬이 셸, 미쓰이 등 외국기업과 합작해 만든 회사로 가스프롬이 지분 절반을 갖고 있습니다.

 

이 두 공룡의 싸움에서 푸틴은 로스네프트의 손을 들어준 셈입니다. 푸틴은 가스프롬의 시베리아 가스전 독점을 끝냈을 뿐 아니라 로스네프트와 사할린에너지의 분쟁 대상이었던 트란스사할린 파이프라인에 대해서도 로스네프트의 접근권을 인정해줬습니다. ‘시베리아의 힘’이 완공되고 나면 러시아산 에너지의 아시아행은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간 코메르산트에 따르면 러시아의 2013년 LNG 생산은 6770억㎥였는데 오는 2030년까지 아시아 수요 증가 덕에 9500억㎥로 늘어날 전망이라고 합니다.

 

기원전부터 쓰였다는 ‘천연가스’

 

천연가스는 석유, 석탄과 함께 ‘화석연료(fossil fuel)’의 일종이죠. 동식물 같은 유기물질이 땅 속에서 썩어, 오랜 세월 높은 압력과 온도 속에서 형성된 것이 이런 화석연료랍니다.

 

세계 천연가스 생산량 지도- 위키피디아

 

이미 기원전 500년 전에 중국인들이 땅 속에서 새어 나오는 천연가스를 발견해, 대나무 관을 땅에 꽂아 추출했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물론 당시의 중국인들이 이걸 전기로 만들어 썼을 리는 없지만, 이 연료로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추출해냈다고 하니 고대인들의 지혜는 참 놀랍기만 합니다.

 

산업혁명 이후에 천연가스 채굴이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은 미국이었습니다. 뉴욕 주 프리도니아에서 1825년 처음으로 천연가스 채굴이 이뤄졌습니다. 전 세계에 매장돼 있는 천연가스의 양은 850조㎥ 정도로 추정됩니다. ‘월드에너지아웃룩’ 사이트에 따르면 2009년까지 세계에서 뽑아 쓴 양은 그 중 8% 정도인 66조㎥랍니다.

 

세계 천연가스 시장에서 러시아는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매장량 추정치를 기준으로 천연가스 보유국 상위 랭킹 10개국을 한번 볼까요.

 

 순위

 나라

 매장량

 1위

 러시아

 47조8000억㎥

2위

이란

33조6100억㎥

3위

카타르

25조2000억㎥

4위

투르크메니스탄

17조5000억㎥

5위

미국

9조4590억㎥

6위

사우디아라비아

8조1500억㎥

7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6조890억㎥

8위

베네수엘라

5조5240억㎥

9위

나이지리아

5조1530억㎥

10위

알제리

4조5040억㎥

 자료: 미 CIA 월드팩트북

 

그러니 러시아 시장의 변화에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것이고요. 지난달 모스크바타임스 등의 보도를 보니, 가스프롬은 유럽의 수요가 줄면서 올 들어 천연가스 수출량이 14%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고 합니다. 가스프롬이 유럽시장의 축소와 독점체제 붕괴라는 2연타를 맞았다고들 합니다만, 그래도 워낙 덩치가 크니 이 정도로 타격을 입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중국, 다음은 일본?

 

러시아가 중국으로의 에너지 수출을 늘린다고 했는데, 이것이 국내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까요?

아직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기는 이릅니다만, 기대감이 커질 수는 있을 듯합니다. 당장 일본은 ‘러시아의 파이프라인, 중국 다음엔 일본으로 이어질까’ 하며 기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사실 러시아를 상대로 ‘파이프라인 유치전’을 치열하게 벌여왔습니다만, 최근 중국에 밀렸습니다. 하지만 다시 꿈이 살아나는 분위기입니다. 지난 5월 도쿄에서 발행된 영문 외교잡지 ‘더 디플로맷’에 따르면 일본 의원 33명이 사할린을 거쳐 러시아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일본 이바라키현까지 끌어오는 방안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바라키현은 도쿄와 맞닿아 있습니다. 구상에 따르면 사할린~이바라키 파이프라인은 1350km 길이가 되는데, 이 송유관을 통해 연간 200억㎥ 분량의 천연가스를 일본으로 끌어올 수 있다는 겁니다.

 

이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는 북한과 남한을 거치는 파이프라인도 ‘생각은’ 하고 있다고 하는데... 러시아 가스관이 남북한을 이어주는 교량 겸 에너지 수송로가 될지 궁금합니다. 물론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러시아 가스관이 이어질 날을 기대하기보다는 우선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효율화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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