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총선과 지방의회선거가 14일 실시됐다. 스웨덴이 자랑해온 복지국가 모델에서 이탈해 자유시장 정책을 펼쳐온 중도우파 연합은 8년만에 좌파 진영에 정권을 내주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좌우 어느 진영도 안정적인 집권에 필요한 의석수를 확보하는 데에는 실패해, 총선 뒤 치열한 합종연횡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로칼 등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사민당·녹색당·좌파당 등 좌파 정당들은 이번 선거에서 집권 우파연합보다 5.3~5.7%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총선 때 ‘적녹연합’을 구성했던 좌파 진영은 이번에는 제각각 후보들을 내세웠으나 선거 뒤 연정에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
스테판 뢰펜 사민당 대표. 사진 www.thelocal.se
이번 선거에서 스웨덴 국민들이 다시 ‘왼쪽’을 택한 것은 신자유주의 민영화정책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우파 정부는 2006년 집권 이래 세금을 감면하고 주요 복지시스템을 민영화했다. 국가지원 요양홈과 유치원들은 민간기업에 넘어갔고, 무상교육시스템은 무너졌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표현되던 복지정책은 대폭 후퇴했다. 하지만 ‘민영화 개혁’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최근 몇년 새 스웨덴에서는 교육시스템 민영화 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학업성취도 지표(PISA)의 순위가 크게 떨어진 것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예테보리 대학이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서 스웨덴 국민 10명 중 7명은 공공복지 영역을 민간기업의 이윤추구장으로 만든 정부정책을 ‘실패’로 규정했다.
민영화 피로감에 지친 유권자들은 우파 연합에 대한 지지를 거둬들였으나 제1당인 사민당 역시 확고한 대안을 보여주진 못했다. 사민당은 1994년 이후 12년간 집권했다가 2006년 야당이 됐다. 2010년 총선에서 사민당은 349개 의석 중 112석을 얻었으나 연정 구성에 실패, 더 적은 의석을 얻은 우파연합에 다시 정권을 내줬다. 20세기 내내 스웨덴 정치를 주도했던 사민당이 8년간 집권에 실패한 것은 100여년만에 처음이었다.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스테판 뢰펜 대표는 사민당이 ‘구원투수’로 선택한 인물이다. 철강노조 지도자 출신인 뢰펜은 현역 의원이 아님에도 2012년 당 대표로 선출됐다. 하지만 의원이 돼본 적도, 입각 경력도 없는 그는 잇단 말실수로 곤욕을 치르는 등 이번 선거 내내 경험부족을 드러냈다. 쇠데르퇸대학 정치학교수 니콜라스 아일로트는 “정치 경험이 별로 없는 뢰펜에게 복잡한 연정구성 협상은 총선보다 더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가디언에 말했다.
사민당은 녹색당과의 연정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시장중시 정책에 지친 유권자들 사이에서 환경·복지 이슈를 되살려낸 것은 사실 무기력한 사민당이 아닌 녹색당과 페미니스트들이었다. 녹색당의 31세 젊은 지도자 구스타프 프리돌린은 “보건시스템과 학교에까지 민영화를 도입한 우파 정책에 국민들은 지쳐있다”며 ‘적녹 바람’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이번 선거의 또다른 주인공은 신생 정당 ‘페미니스트 이니셔티브(FI)’였다. 아쉽게도 득표율 3.9%로 의석확보에 필요한 하한선인 4%를 얻는 데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이나 FI는 녹색당과 함께 친환경·여성주의 이슈들을 부각시키는 공을 세웠다. 사민당·환경주의자·여성주의자들이 각개약진한 이번 선거는 북유럽 좌파의 고민과 모색을 그대로 드러내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극우파 정당인 스웨덴민주당은 2010년 사상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한 이래 이번 선거에서도 선전한 것으로 보인다. AFP통신은 스웨덴민주당의 득표율이 4년 전 5.7%에서 이번에는 9.6%로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중도우파가 지지를 잃는 와중에도 ‘반(反)이민’을 내세운 스웨덴민주당은 오히려 기반을 넓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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