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오바마도 이라크 수렁으로... 4대에 걸친 미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

딸기21 2014. 8. 10.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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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안에 문제가 풀릴 것같지는 않다. 장기간에 걸친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9일 이라크 이슬람국가(IS) 반군지역 공습에 대해 설명하면서 한 말입니다. 전임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을 ‘어리석은 전쟁(dumb war)’이라 평했던 오바마는 공습 재개와 함께 진창에 발을 들였습니다. 전쟁에서 손 떼기 위해 철군에 주력했던 오바마는 이라크를 공격한 미국의 네 번째 대통령이 됨으로써 결국 전임자들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졌군요.


'어리석은 전쟁' 평했던 오바마, 등 떼밀려 진창에 발 담그다


오바마는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겠다고 누차 강조했으나 지난 6월 반군의 대공세가 시작된 뒤 이미 1000명 가까운 미군을 ‘경비 강화’ 명목으로 이라크에 들여보냈지요. 고심 끝에 공습을 시작하면서 오바마는 “이라크 지도자들이 새 정부를 세울 때까지”라는 단서를 달았으나, 새 정부가 만들어진다고 IS와의 대치가 끝날 지는 미지수입니다.



미국 뉴욕타임스, 영국 가디언 등은 오바마의 말을 인용해 이라크 군사작전이 몇달에 이를 것이라고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공습을 선언하면서 오바마는 북부 쿠르드 자치정부 수도인 아르빌의 미국민과 미국시설을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습니다. 9일 연설에서는 이라크인 소수 종파 보호를 언급, 목표를 확장시키고 기한도 좀더 장기화할 것임을 시사하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미 국방부 관리들은 “반군의 아르빌 진입을 막는 목표는 며칠 내로 달성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북부의 쿠르드 지역과 중부의 바그다드 등을 지켜내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죠. 쿠르드 지역과 바그다드를 지킨다 해도, 시리아 접경지대를 반군에 내준 채로 현상유지를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거기에만 몇 달이 걸릴 것이라는 얘기이고요.



미국의 이라크 공격, 25년간의 기나긴 전쟁


오바마는 “이라크의 더 큰 위기는 군사적으로 풀 수 없는 문제”라 못박았습니다. 이라크 안정화는 이라크인들의 몫이며 미국은 IS 극단주의 세력이 더 퍼지지 않도록 막는 선에서 그치겠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라크전쟁이 다시 시작된 것일지 모른다는 미국민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


조지 H W 부시 행정부



1990.8 이라크의 침공으로부터 쿠웨이트를 보호한다며 ‘사막의 방패’ 작전 돌입

1991.1.16 미군 등 연합군 81만명 투입, ‘사막의 폭풍’ 작전 개시(걸프전)


빌 클린턴 행정부



1998.12.17 유엔 대량살상무기(WMD) 사찰단 철수 직후 ‘사막의 여우’ 작전 개시, 14일간 공습


조지 W 부시 행정부



2003.3.20 ‘이라크 자유’ 작전 돌입, 바그다드 공습과 함께 이라크 침공


버락 오바마 행정부



2011.12.15 “이라크전 종료” 공식 선언, 미군 철군

2014.8.8 이라크 중·북부 ‘이슬람국가(IS)’ 반군지역 공습


미국은 조지 H W 부시 시절부터 시작해, 25년째 이라크와 싸우고 있습니다. 군사작전의 이름과 명분과 규모는 제각각 다르지만 미국의 4개 행정부가 유라시아 복판에 있는 석유의 보고 이라크를 통제하기 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셈입니다. 


H W 부시는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의 쿠웨이트 침공을 빌미로 걸프전을 일으켰습니다. 명분은 후세인의 도발이었으나 탈냉전 시기를 맞아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의 도래를 과시하기 위한 무력행사였지요. 부시는 이라크의 군사력을 크게 무너뜨렸지만 후세인 정권은 그대로 놔뒀습니다. 



뒤 이은 빌 클린턴 행정부는 후세인의 쿠르드족·시아파 탄압을 빌미로 이라크 남북의 제공권을 장악, ‘이라크 3분할’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클린턴 정부는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의혹을 제기하며 이라크를 국제적으로 고립시켰고 1998년에는 대규모 공습을 했습니다.


'사막의 여우'라는 이름의 이 공습 작전(옛 영국의 제국주의 점령군을 이끌던 장군의 별명에서 따온 것이기도 하지요) 직전에, 이라크를 취재한 한 기자의 글을 책에서 본 적 있습니다. 자신은 며칠 취재한 뒤 떠나면 끝이지만, 폭격을 맞을 이 사람들은 어떻게 될지 몰라 걱정하며 밤에 호텔 방에 돌아와 울었다는. 이 공습은 당시 '제2 걸프전'이라고 불렸는데, 그 뒤에 더 어마어마한 전쟁이 벌어진 까닭에 사람을 머리 속에서 거의 지워져버렸지요.


테러와 분쟁의 '로컬화', 미국엔 답이 없다


이라크를 아프가니스탄과 함께 ‘미군의 수렁’으로 만든 것은 뭐니뭐니 해도 아버지 뒤를 이은 조지 W 부시 정부입니다. W 부시는 2001년 9·11 테러 뒤 대테러전을 선언하면서 아프간을 넘어 이라크로 전선을 확장했습니다. 



오바마는 이라크 안정화 등 전쟁 뒷처리에 전력했으나 시리아 내전 등 중동 곳곳에서 터져나온 분쟁에 대응하는 데 실패, 다시 전투기를 보내는 상황이 됐습니다. 


작년에 시리아 화학무기 공방이 벌어졌을 때 미국이 시리아 공습을 하지 않은 것을 놓고 미국 내 매파들이 비판을 했는데, 그 후 시리아를 넘나들며 세력을 키운 IS가 이라크마저 위협하는 지경이 됐지요. 역학관계 세력다툼 같은 것이야 냉정&신랄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지만, 문제는 시리아와 이라크 모두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 이대로라면 오바마가 시리아 상황에 개입하려 하지 않음으로써 실기했다는 비판이 커질 수 있겠네요. 시리아를 공습한들 사태가 해결이 됐겠느냐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지만요.


물론 이번 공습이 오바마 정부의 정책적 변화를 의미한다고 보기엔 아직 이르다고 알자지라방송 등은 지적합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오바마가 원하든 원치 않든 ‘끝없는 전쟁’이 될 판입니다. 대테러전의 프레임이 달라졌고, 미국이 원하는 구도로 이라크의 상황을 정리한 뒤 전쟁을 끝내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임무가 돼버렸기 때문입니다. 


W 부시는 국가 대 국가의 전쟁을 통해 극단세력을 없애려 했으나 극단주의 무장조직들은 철저히 지역화돼 있어 외부 국가(미국)의 군사작전으로 대응하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필립 크롤리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는 9일 bbc 웹사이트 기고에서 “테러의 위협은 글로벌 네트워크로 이어져 있는 동시에, 지역이나 부족 간의 문제와 결합해 있기 때문에 미국이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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