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아부그라이브 수용소 수감자 고문사건’에 책임이 있는 미군 계약업체가 미국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 전세계에서 반미 물결이 일게 만들었던 아부그라이브 사건 이후 10년만이다. 수감자들을 고문하고 학대한 미군 병사들은 개별적인 범죄행위에 대해 일부 처벌받았지만, 미군과 계약한 민간 회사의 책임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은 처음이다.
미국 버지니아주 연방순회항소법원의 바버라 키넌 판사는 지난달 30일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 수감돼 있다가 학대를 당했던 이라크인 4명이 당시 수용소 관리를 맡고 있던 경비업체 CACI인터내셔널을 상대로 낸 소송을 진행시킬 필요가 있다며 하급심의 기각 결정을 뒤집고 사건을 1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CACI는 2004년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의 인권침해를 보여주는 사진과 동영상 등이 공개됐을 당시 이 수용소의 관리를 맡고 있던 회사다. 수용소에서 고초를 겪었던 이라크인들은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 법원에 2011년 이 회사의 관리책임을 묻는 소송을 냈다. 원고 측은 1789년 제정된 미국 연방법인 ‘외국인불법행위법’에 따라 이라크에서 벌어진 이 사건도 미국 내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CACI와 함께 제소됐던 또 다른 미군 계약업체 L-3서비스(현 ‘엔질리티’)는 수감자 70여명과 합의해 2012년 11월 528만달러의 위로금을 지불했다. 하지만 CACI 측은 자신들이 ‘미군의 대리인’으로 일한 만큼 면책권을 인정받아야 한다며 맞섰다.
이 재판을 계기로 외국에서 벌어진 일에 이 법을 어느 정도나 적용해야 하느냐, 민간 계약업체가 미군이나 미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외국에서의 행위에 대해 면책 특권을 인정받아야 하느냐 등이 논란거리가 됐다. 1심 법원은 ‘외국인불법행위법’을 지나치게 폭넓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며 지난해 7월 소송을 기각했다. 아부그라이브 피해자들이 미군 계약업체 타이탄과 CACI를 상대로 낸 또 다른 소송도 기각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고문과 같은 행위는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사안이라며 재판을 진행시켜야 한다고 판결했다. 원고들과 함께 소송을 진행해온 미국 시민단체 헌법권리센터(CCR)는 “미국 기업이 외국에서 저지르는 고문이나 전쟁범죄 같은 인권침해가 더이상 면책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판결”이라며 환영했다. 알자지라방송은 “해외 주둔 미군을 대신해 민감한 업무를 떠맡고 있는 계약업체들에 대해서까지도 미국의 법적 책임성을 확장시켜 적용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달 워싱턴 연방지방법원에서는 2007년 이라크 바그다드 도심에서 민간인 17명을 사살한 미국 민간군사회사 블랙워터(현 ‘아카데미’) 직원들이 7년만에 법정에 서기도 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벌어진지 11년이 지났으나, 미군 혹은 민간 계약업체들이 연루된 인권침해에 대한 사법처리와 배상 절차는 이제 겨우 시작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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