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를 일으킨 태국 군부 지도자가 스스로 총리대행 자리를 꿰찼다. 헌법은 정지됐고, 초헌법적 기구를 만들어 전국을 공포정치로 몰아가고 있다. 해임된 잉락 친나왓 전 총리 등 탁신계 정치인들은 줄줄이 군부에 소환됐다.
잉락 등 탁신계 정치지도자 소환, 155명 출국금지
방콕포스트는 쁘라윳 짠-오짜 육군참모총장이 23일 새벽 스스로 ‘총리대행’을 맡았다고 보도했다. 전날 쿠데타를 선언하고 헌법 효력을 정지시킨 쁘라윳은 ‘국가평화질서유지위원회(NPOMC)’를 구성한 뒤 이 기구의 위원장직도 함께 맡았다.
“정부를 완전히 맡을 새 총리가 선출될 때까지”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이미 쁘라윳은 정국을 완전히 장악했다. 또 육군참모차장은 국방·치안·정보·외교부문을, 공군참모총장은 재무·산업·노동·에너지·교통 등 경제부문을, 해군참모총장은 내무·사회부문을 맡는 식으로 군 수뇌부에 권한을 나눠줬다. 그러고 나서 쁘라윳은 일상업무로의 복귀를 주장하며 “잉락 정부가 지급에 실패한 쌀 수매금을 농가에 주는 일이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라운드업] 태국 '사면법 시위'에서 군사쿠데타까지
Reporters are kept at bay by soldiers guarding the Army Club. CHANAT KATANYU /방콕포스트
쁘라윳은 쿠데타 이틀째인 23일 새벽 잉락을 포함한 탁신 일가와 쏨차이 웡사왓 전 총리 등 탁신계 정치인들에게 소환 명령을 내렸다. 또한 잉락을 비롯한 155명에게 출국금지령을 내렸다. 잉락은 “소환에 응하지 않으면 체포하겠다”는 위협에 밀려 이날 낮 NPOMC에 출두했다.
반 총장 민정이양 촉구, 미국은 제재 가능성 시사
라디오와 TV방송들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쁘라윳의 발언과 위원회의 포고령들을 내보내고 있다. 주요 신문들도 군부 통제하에 들어갔다. 군부는 이런 조치를 비판하는 언론은 폐쇄하겠다고 경고했다. 또 탁신 지지 시위대에게는 발포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전국 주지사들에게도 각 지역 군 사령부의 통제를 받으라고 지시했다. 쁘라윳은 “옳든 그르든 내 책임을 짊어질 준비가 돼 있다”며 반대세력에 대한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태국 군부에 민정 이양을 촉구했으며, 미국은 제재 가능성을 내비치는 등 쿠데타를 비난했다. 하지만 미국이 중단할 수 있는 태국 지원액 규모는 1000만달러 정도이고 군사교류를 유보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각국은 쁘라윳에게 민정 이양 일정을 명확히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군부가 외부 압력 때문에 물러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쿠데타 이후 태국 군부의 조치
·헌법 효력 정지
·국가평화질서유지위원회(NPOMC) 구성
(쁘라윳 육군참모총장 위원장 겸 총리대행)
·잉락 전 총리 등 23명 소환, 155명 출국금지
·상원의 총리지명권 박탈
·야간 통행금지령 선포, 시위대엔 발포 경고
·TV·라디오 정규방송 중단, 비판언론 폐쇄 위협
쁘라윳은 왕당파 반탁신 성향이지만 잉락 집권 기간에는 관계가 나쁘지 않았다. 2010년 탁신 지지 시위를 유혈진압한 이후로는 군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데 주력했다. 그래서 외부에서는 쿠데타 가능성을 낮게 봤으나, 며칠 새 벌어진 풍경은 예측이 틀렸음을 보여줬다.
로이터통신은 계엄령 선포 뒤 쁘라윳이 주재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의 말을 인용해 “그는 마치 교장선생님이 학생들을 야단치듯 했다”고 전했다. 올해 60세인 쁘라윳은 연말 참모총장 자리에서 물러나 퇴직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잉락을 쫓아냈음에도 반탁신 진영 내에 내세울 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자 스스로 정국 장악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NPOMC는 정부 기능을 관료들과 쁘라윳 등 군 수뇌부가 나눠 맡겠다고 하면서, NPOMC가 ‘즉각적인 정책들과 장기적인 정책들’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쁘라윳 체제가 상당기간 지속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왕실과 결탁한 군부, 늘 권력의 핵심에
1855년 설립된 군은 주변 아시아국가들에 비하면 100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가는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태국 군은 두 차례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 등 20세기의 주요 전쟁에 모두 참전해왔다. 또 군은 왕실의 수호자라는 명분을 늘 강조해왔다. 1992년 쿠데타를 일으킨 수친다 끄라쁘라윤 장군이 국왕 앞에 무릎을 꿇은 적 있다. 이 일은 푸미폰 아둔야뎃 현 국왕의 권위와 국왕에게 충성하는 군부라는 두 가지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헌법은 군의 역할로 국가주권의 수호와 함께 ‘왕권 보호’를 명기하고 있다.
군과 왕실은 정치적 고비 때마다 손잡고 권력을 지켜왔다. 잦은 쿠데타 속에서도 군은 여전히 상당수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 또한 군에 비판적인 시민들도 ‘권력투쟁은 엘리트 내부의 일’이라 여기는 경향이 많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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