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지난 23일(현지시간)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치인이나 경제·문화·예술계 인사들의 리스트다. 하지만 이 목록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사람이 있다. 인도네시아 출신으로, 홍콩에서 가사노동자로 일했던 에르위아나 술리스티야닝시라는 23세의 여성 노동자다.
자카르타글로브 등 인도네시아 언론은 타임의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 리스트에 이례적으로 에르위아나가 이름을 올렸다며 26일 에르위아나의 ‘용감한 고발’을 다시 돌아보는 기사를 실었다. 에르위아나는 지난해 홍콩에 파견노동자로 이주해 한 가정에서 가사노동자로 일했다. 하지만 에르위아나가 일했던 집 주인은 8개월 동안 그를 노예처럼 학대했고, 때로는 고문에 해당되는 폭력을 쓰기도 했다.
홍콩에서 가사노동자로 일했던 에르위아나 술리스티야닝시의 건강했던 모습(왼쪽)과, 지난 1월 휠체어를 타고 인도네시아 스라겐 시의 병원에 왔을 때의 모습.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이 겪는 인권침해를 고발한 에르위아나는 23일(현지시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에 이름을 올렸다. /AFP
고용주의 폭행에 이가 부러지고 온 몸에 중상을 입은 에르위아나는 지난 1월 이를 인권단체와 언론 등에 알려 홍콩 내 가사노동자들이 겪어야 하는 열악한 실태를 고발했다. 그를 학대한 고용주는 결국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재판 과정에서 고용주가 대걸레나 자, 건조대 등 살림 도구들을 ‘무기’처럼 이용해 에르위아나를 학대한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에르위아나의 폭로를 계기로, 가사노동자들이 겪는 인권침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법적·사회적 허점 속에서 구조적으로 빚어지는 일임이 드러났다. 홍콩에서만 외국에서온 가사노동자 30만명이 일하고 있으나, 이들의 인권을 보호할 장치는 없었던 것이다. 이 사건 전에도 고용주들의 가사노동자 학대가 불거진 적은 있지만 에르위아나의 폭로는 특히 가사노동자들의 분노와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 홍콩 시내에서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의 시위가 이어졌으며,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한 인권단체들과 아시아 노동단체들이 이주노동자 인권보호 캠페인을 벌였다. 홍콩 당국와 인도네시아 정부도 파견 노동자 인권보호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타임은 “에르위아나의 용감한 폭로 덕분에 홍콩의 가사노동자들을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고 높이 평가했다. 에르위아나는 타임 리스트에 선정됐다는 소식에 “세계의 이주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딸기가 보는 세상 > 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델리가 베이징보다 더 오염?” 인도 정부 ‘발끈’ (3) | 2014.05.08 |
---|---|
말레이시아 여객기 국제 공동수색, 성과 없이 종료 (0) | 2014.04.29 |
인도 차기 총리 나렌드라 모디, '힌두 민족주의' 공약 논란 (0) | 2014.04.08 |
무함마드 카심 파힘 아프간 부통령 사망 (0) | 2014.03.10 |
중국 스모그는 미국 레이저무기 방어수단? 중 장성 발언 '빈축' (0) | 2014.0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