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오는 6월 3일 대통령 선거를 치르겠다며 상세한 대선 계획을 내놨다. 부자 세습 독재정권에 항의해온 국민들과 전쟁을 치러 15만명 이상이 숨졌는데도 아랑곳없이 앞으로 7년간 더 권좌를 지키겠다며 사실상 재집권을 선언한 것이다.
무함마드 알라함 시리아 국회 의장은 21일 “시리아아랍공화국의 국민들은 6월3일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대통령 선거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시리아는 1971년 3월 현 아사드 대통령의 아버지인 철권독재자 하페즈 알 아사드가 권력을 잡은 이래로 대통령 선거를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대통령의 집권을 승인하는 국민투표를 몇차례 실시했으나, 모두 정권의 강압 속에 치러져 압도적인 투표율과 압도적인 찬성율을 보였다. 하페즈가 급서한 뒤 2000년 권력을 이은 아사드도 집권 7년만인 2007년 형식상의 국민투표로 국민들의 승인을 받았다.
3년여 전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와 함께 내전이 시작되자 궁지에 몰린 아사드는 2012년 2월 대통령 직선제를 핵심으로 하는 새 헌법을 국민투표에 부쳐 통과시켰다. 이번에 대선이 실시되면 수십년만에 처음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다.
하지만 이번 선거도 자유롭게 치러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알자지라방송 등에 따르면 아사드 정부는 대선 입후보 자격을 ‘10년 이상 국내 거주자’로 제한했다. 미국의 공격을 받았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미국 망명자 출신인 하미드 카르자이가 과도정부를 맡았다가 대통령이 됐고, 이라크에서는 이란·시리아 등에 오랜 기간 망명했던 누리 알말리키가 총리가 됐다. 아사드 정권은 반정부 망명 인사나 친서방 정치인이 귀국해 출마하는 것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출마자 자격을 제한하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사드는 현행법상 오는 7월 17일 임기가 끝난다. 따라서 이름뿐인 선거라도 치러야 국내외에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다. 이미 14년간 집권한 아사드가 이번 선거에서 이기면 7년간 더 정권을 이어갈 수 있다. 전황이 정부에 유리한 쪽으로 흘러가면서 그는 최근 부쩍 여유를 보이고 있다. 부활절인 지난 20일에는 초기 기독교 성지이자 최근 정부군이 반정부군에게서 탈환한 다마스쿠스 북쪽 말룰라를 찾아갔다. 아사드가 다마스쿠스 밖으로 나간 것은 내전 이후 처음이었다. 이 방문에서 그는 “기독교도들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반정부군 내 이슬람 극단세력의 기독교도 살해를 부각시켰다. 대선 계획을 밀고나온 것도 자신감의 표현으로 보인다.
유엔과 국제사회는 일제히 시리아 정부를 비난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라크다르 브라히미 유엔-아랍연맹 시리아 특사는 시리아 측의 일방적인 대선 계획 때문에 정부군과 반정부진영 간 평화협상이 완전히 깨질 수 있다며 “과도정부를 세우기로 한 제네바 합의와도 위배된다”고 지적했다.미국·러시아·카타르를 비롯한 10여개국 대표들과 시리아 반정부군 대표들은 지난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리아 대선 실시에 합의했으나, 여기에는 아사드 출마를 배제해야 한다는 전제가 달려 있다. 반면 아사드는 대선 후보로 나서겠다고 일찌감치 밝혀왔다.
제이 카니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민주주의를 패러디하는 것”이라며 신뢰성도 정당성도 없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리아 반정부 단체인 시리아국민연합의 아흐마드 자르바 의장도 “인구 3분의 1이 난민캠프로 이동한 판에 투표권을 행사할 유권자가 어디 있느냐”며 비판했다. 알자지라방송은 “시리아 정부도 이런 상황에서 선거를 어떻게 치를지 구체적인 계획은 내놓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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