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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의 실험과, 사우디 등 걸프왕국들의 '카타르 손보기'

딸기21 2014. 3. 1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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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신문 알쇼루크는 16일 ‘외교소식통’을 인용해, 카타르 정보국이 과거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과 손잡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국왕을 살해하려 했다는 증거가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신뢰성이 의심스러운 내용에다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모두 지나간 일이지만, 카타르와 사우디 간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묘한 시점에 터져나온 ‘음모론’입니다.


중동의 맏형인 사우디와 새로운 맹주로 부상한 카타르의 관계가 심상찮습니다.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바레인 등 걸프 3국은 ‘걸프협력회의(GCC)’로 묶여 있는 이웃 카타르를 요즘 눈엣가시처럼 여깁니다. 대사 소환에 국경차단 경고까지 불거지면서 카타르와 걸프3국 간 균열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카타르와 3국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지난 5일 사우디 등이 카타르 주재 자국 대사들을 소환한 것이었습니다. 3국은 “카타르가 GCC 회원국들의 내정에 간섭하고 있고, 테러조직인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을 계속해서 지원하고 있다”는 이유를 달았습니다. 사우디는 카타르에 국경과 영공통과를 차단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며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한술 더 떠 지난 14일 사우디는 GCC 회의에서 카타르를 향해 “알자지라 방송을 폐쇄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또한 카타르 도하에 있는 미국계 싱크탱크 지부 2곳, 브루킹스연구소 도하 센터와 랜드연구소 아랍정치연구센터의 문도 닫으라고 요구했습니다. 반면 카타르 정부는 “사우디 등이 오히려 우리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이라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무슬림형제단’ 지원을 명분으로 삼았지만, 그 이면에는 걸프 독재왕정들과 카타르 간의 해묵은 갈등이 있는 듯합니다. 사우디 등 걸프 왕국들은 튀니지·이집트의 ‘아랍의 봄’과 같은 반독재 혁명을 몹시 경계해왔습니다. 이 왕정들은 시민혁명뿐 아니라 무슬림형제단 같은 이슬람 운동에도 적대적입니다. 미국의 지원 속에 독재정권을 유지하면서도 국민 여론을 흔들 수 있는 서구화와 자유화를 막으려 하고, 이슬람을 내세우면서도 풀뿌리 신앙운동은 경계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셈이죠. 



반면 지난 20년 간 카타르의 행보는 매우 달랐습니다. 같은 걸프 왕국임에도 영국 bbc방송 출신들이 주축이 돼 만든 범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를 왕실 차원에서 지원했습니다. 알자지라는 아랍 왕정들에 대해 ‘성역 없는 비판’을 해 숱한 공격과 탄압을 받아왔지요. 카타르 왕실은 주변 왕국들의 눈총 속에서도 알자지라의 방어막 역할을 했고요. 왕실은 도하를 아랍의 교육·미디어 중심지로 만들겠다며 서방 교육시설을 들이고, ‘위로부터의 점진적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각종 국제회의와 월드컵 유치를 통해 국제적인 호응도 받았습니다.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져 아랍외교의 맹주 자리가 빈 틈을 타 보폭을 확대하기도 했습니다. 이집트 무슬림형제단 정권을 지원하고, 시리아 사태에서도 발언권을 키웠습니다. 최근 아랍 외교에서는 ‘카타르의 독주’라 해도 될 정도로 이 작은 반도국가의 존재감이 커졌지요. 이 모든 움직임이 사우디의 신경을 건드린 것으로 보입니다. 



카타르가 걸프 이웃들의 압력에 쉽게 굴복할 것같지는 않습니다. 카타르와 사우디·UAE·바레인 3국의 연간 무역규모는 2012년 기준 64억달러 정도로, 카타르와 싱가포르의 무역규모보다도 작다고 합니다. 사우디의 ‘국경·영공 봉쇄’ 위협은 실현가능성이 낮으며, 실현되더라도 카타르에 큰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우디에서 활동하는 경제컨설턴트 존 스파키아나키스는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세계가 천연가스를 필요로 하는 한 카타르는 독자 행보를 계속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여담입니다만 카타르의 천연가스를 많이 수입하는 나라 중의 하나가 한국이지요). 


카타르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구매력 기준 10만2100달러에 이르며 천연가스 매장량은 러시아·이란에 이어 세계 3위, 석유 매장량은 세계 12위입니다. 돈 벌어 차근차근 개혁하되, 왕실의 권력은 유지하겠다... 최소한 사우디같은 나라들보다는 나아 보이지만, 최근 월드컵 경기장 건설을 둘러싼 이주노동자 문제에서 드러났듯 부작용과 문제점도 만만찮지요. 카타르 왕실의 실험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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