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현지시간) 타계한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추모식과 장례식에서는 사상 유례없는 ‘조문외교’가 펼쳐질 전망입니다.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들, 브라질의 전현직 대통령들, 영국 왕실과 유럽의 지도자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국가원수 등 국가지도자급으로만 70~100여명이 남아공을 찾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추모식과 장례식 절차 못잖게, ‘누가 오고 누가 오지 않을지’에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메일앤드가디언과 SABC방송 등 남아공 언론들에 따르면 최소한 70명 이상의 전·현직 지도자가 남아공을 방문하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남아공 정부는 공식적으로 참석자 명단을 밝히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미국 언론들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조지 W 부시·빌 클린턴·지미 카터 전대통령의 방문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습니다.
클린턴과 만델라는 1990년대 중후반 각기 미국과 남아공의 현직 대통령으로서 숱한 만남을 가지며 친분을 쌓았습니다. 카터는 만델라를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 ‘원로’들의 모임인 ‘디엘더스(The Elders)’ 회원이며, 이번에도 디엘더스 회원 자격으로 조문을 한다고 합니다.
만델라와 카스트로의 '우정'을 소개한 허핑턴 포스트 기사
조지 W 부시의 조문은 다소 의외(?)로군요. 미국 대통령들 중에서 유독 만델라와의 만남을 거부한 전력이 있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부시는 이라크 침공 직후인 2003년 7월 아프리카 순방 때 남아공을 방문하면서 만델라와의 만남을 피했습니다. “스케줄이 맞지 않는다”는 핑계를 댔지만, 만델라가 이라크 공격에 반대한 것 때문에 심사가 틀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돌았지요. 하지만 조지 W 부시의 아버지인 조지 HW 부시와 부인 바버라 여사는 만델라와 비교적 친밀한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HW 부시는 고령에 건강이 나빠 조문 계획을 취소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과 부시 부부는 오바마 부부와 함께 9일 미국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을 타고 남아공으로 향했습니다. 백악관에서 외국 방문 때 경제인들이나 유명인사들을 에어포스원에 태우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이번에는 ‘조문 희망자가 너무 많아서’ 동승 인원을 줄였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습니다. 다만 빌 클린턴과 지미 카터는 따로 일정이 있어서 함께 타지 않았다네요.
브라질에서는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과 룰라 다 실바 전대통령을 비롯해 전현직 5명이 움직인다고 합니다. 룰라가 만델라와 교감을 나눈 것은 익히 알려져 있고, 그 전임자인 페르난두 엥히케 카르도주 역시 종속이론가이자 중도좌파로 유명했던 인물이고... 나머지 2명 중의 한 명은 1985~1990년 재임했던 중도좌파 주제 사니, 또 다른 한 명은 부정부패로 유명했던 포퓰리스트 페르난두 콜로르로군요. 브라질 정도라면, 총촐동할만 하지요.
영국에서는 왕실과 정부가 각각 따로 조문외교를 합니다. 찰스 왕세자는 고령인 엘리자베스2세 여왕을 대신해 남아공을 찾아가 만델라의 고향인 이스턴케이프주의 쿠누를 찾을 계획이고,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요하네스버그의 FNB스타디움에서 열리는 공식 추모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올 것인가, 오지 않을 것인가가 최대의 관심사인 인물들도 있습니다. 최근 국제무대에서 각광받은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그런 예입니다. 일부 언론에서 로하니의 남아공 방문 가능성을 보도했지만 아직까지 이란 정부는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로하니가 요하네스버그에 간다면, 석달 전의 뉴욕 유엔 총회에서 이뤄지지 못했던 오바마와의 조우가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자국 내 보수파의 눈치를 봐야 하는 로하니가 조문을 하지 않을 수도 있고요. 10일 보도를 보니, 로하니는 가지 않고 부통령을 보낼 모양인 듯하네요.
또 다른 관심 대상은 쿠바 지도자입니다. 잘 알려진대로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은 만델라와 오랫동안 우정을 나눠왔습니다. 만델라는 서방의 비호를 받는 백인정권에 맞서 오랜 투쟁을 벌였고, 카스트로는 옥중의 만델라를 응원했거든요. 만델라가 1990년 석방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 중의 하나가 쿠바를 찾아가 카스트로를 만난 것이었습니다. 지난 6월 미국 허핑턴포스트는 두 사람의 오랜 우정을 소개하며 “서로를 존경해온 관계”라고 전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카스트로는 87세의 고령에 건강이 악화돼 있어, 남아공을 방문할 수 없습니다. 그의 동생으로 권력을 물려받은 라울 카스트로 현 국가평의회 의장이 조문을 하러 올 것이며, 요하네스버그 추모식에서 추도사를 한다고 합니다. 라울과 오바마가 나란히 추도사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겠군요.
만델라 추모식-장례식 일정
8일 만델라 추모 기도 국경일 (Nat‘l Day of Prayer and Reflection)
9일 헌화식, 폴스모어 감옥
10일 공식 추모식 일정
본 행사는 요하네스버그 FNB 스타디움에서 열리며. 10일 오전 11시 시작(한국시간 오후 6시)
제이콥 주마 대통령 비롯 세계 각국 지도자, 대표들 추모사
공식장소는 FNB 스타디움이지만, 올란도·돕슨빌·란드 등 세 군데 스타디움이 추가로 개방될 예정
정부차원에서 대형 스크린 90개를 설치하고, SABC가 생중계할 예정.
11일-13일 선별된 외국 조문객들에게 프리토리아 유니언빌딩에 운구된 만델라 시신 공개
시간 정해 일반에도 공개
이 기간 시신안치소에서 매일 아침저녁 시민들로 “guard of honour” 편성해 운구
14일 프리토리아 워터클루프 공군기지에서 이스턴케이프주 쿠누로 운구
15일 쿠누에서 장례식
16일 국가 ‘화해의 날’. 프리토리아 유니언빌딩 앞 만델라 동상 제막식.
짐바브웨의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는 조문을 하러 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가베는 서방의 미운털이 박힌 인물이지만, 짐바브웨와 남아공은 각별한 관계입니다. 짐바브웨는 과거 남아공과 이어져 있던 영국령 ‘남로디지아’가 독립해 1980년 세워진 나라이며 지금도 두 나라 사람들 간의 이동이 잦습니다.
과거 남아공 백인정권과 결탁했던 이스라엘... 미국 전현직 대통령들도 다 온다는데,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보안 상의 이유' 등을 들며 조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고. 웃깁니다. 안 온다고 섭섭해할 사람 하나 없을 것 같습니다.
추모식장은 인종분리의 상징인 소웨토에 위치
서로 적대해온 지도자들까지 모두 한데 모이게 될 FNB스타디움은 그 자체로 상징적인 곳입니다. 뉴욕타임스는 “상징적인 이유와 실용적인 이유 모두를 감안해 선택된 장소”라고 풀이했습니다. 이 경기장은 남아공 흑인들의 ‘분리 거주지역’으로서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만들어진 소웨토(Soweto·South Western Townships)에 위치해 있습니다. 소웨토는 1976년 역사적인 흑인 폭동과 유혈진압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죠. 만델라는 그 시기엔 옥중에 있었지만, 출소 이후 1994년 대통령이 되기까지 4년간 그 곳에 살았습니다.
만델라는 FNB스타디움에서 2010년 월드컵 경기가 열렸을 때 골프카트에 앉아 관람객들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것이 만델라가 공개석상에 나타난 마지막 행사였습니다. 9만4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경기장이 남아공에서는 최대 인파가 모일 수 있는 시설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남아공 정부는 만델라의 고향 쿠누에서 치러질 15일의 장례식보다는, FNB스타디움에서 10일 열리는 추모식에 더 많은 정상들이 참석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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