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지난달 23일 일방적으로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자 미국은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못 박았고 전투기들을 중국 측이 주장한 방공식별구역 안으로 출격시켰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29일에는 민간항공사들에 “중국의 요구대로, 중국 측 방공식별구역 비행 전에 사전통보를 해주라”고 권고했다.
젠 사키 미 국무부 대변인은 항공운항 안전규정에 따라 권고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본 측이 중국 요구를 자발적으로 따른 민간항공사들에 사전통보 중단을 지시한 것에 비추면, 미국의 태도는 ‘한발 물러선 것’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딕 체니 전 부통령의 아시아담당 보좌관을 지낸 스티븐 예이츠는 미 정부의 조치가 “나쁜 움직임”이었다고 비난했다. 현상유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미국은 한국이 방공식별구역을 확대해 중국·일본과 갈등을 키우는 것도 환영하지 않는다.
버락 오바마 정부의 ‘절제된 조치’에 높은 점수를 주는 시각도 있다. 이들은 2001년 미국 정찰기가 중국기와 충돌하면서 양국 간 군사적 긴장이 촉발됐을 때와 이번을 비교하며 미국이 ‘위기관리’에 성공하고 있다고 본다. 미국은 수차례 전투기를 띄워 동아시아의 현상유지를 깨는 중국의 일방주의를 묵과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반면 민간항공기들에는 중국 측의 요구를 따르라고 권고했다. 뉴욕타임스는 분쟁을 피하기 위해 ‘확실한 선’을 그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동시에 미국은 아시아로 귀환했다. 오바마 정부가 주장해온 ‘피봇 투 아시아(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정책이 최근 시리아·이란 문제 등으로 궤도를 이탈했는데, 중국의 도발 덕분에 다시 미국 안보전략 이슈가 아시아에 집중되는 효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중국의 움직임은 명백하게 일본을 겨냥한 것이었고, 미국은 아시아의 관리자로 적극 개입할 수 있게 됐으니 최소한 손해본 것은 없다는 것이다.
득실 계산은 아직 이르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마빈 칼브는 중국의 이번 조치가 중국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3중전회) 이후에 나온 것임에 주목하면서 중국이 본격적으로 ‘거친 정책’으로 갈 것임을 보여주는 신호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군사 비행’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은 중국의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주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임과 동시에, 남중국해에까지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하고 나서는 걸 막겠다는 의도도 들어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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