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공감] 과거는 응답하지 않는다

딸기21 2013. 11. 5.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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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90년에 대학에 들어갔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행복했던 연령집단일 90학번. 누구나 다 그렇듯 공부에 찌든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많은 걸 누릴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한번도 교복을 입어본 적이 없는 ‘X세대’였다. 해방둥이나 유신세대, 87민주항쟁 세대 같은 우리 역사의 마디들이 아니라, 미국의 X세대와 일본의 ‘신인류’가 우리와 통했다. 외국의 무슨 무슨 세대와 일치된 아이덴티티를 가질 수 있었던 집단은 우리가 처음이지 않았을까. 고속성장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국제화니 세계화니 하는 말들은 좀 허풍스럽기는 해도 생판 남의 나라 이야기같지는 않았다.

 

‘보통사람’이라 억지 쓰던 노태우 정권 후반기였고, 구로공단에서는 여공들이 10시간씩 서서 일하고 있었고, 강경대 열사의 죽음과 우루과이라운드 반대투쟁이 있었다. 하지만 1970~80년대의 정치적 폭압은 누그러졌다. 우리는 뒤늦게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공부했지만, 마음속에는 ‘이미 소련은 무너졌는데 뭘’ 하는 시니컬함과 ‘우리의 앞길에는 무언가 다른 우리만의 싸움이 있지 않을까’ 하는 발랄한 희망이 공존했던 듯하다. 이마저도 어쩌면 내가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아름다운 포장일지는 모르겠지만.



해외로 뻗어나간 ‘한류’는 없었지만 한국 가요는 그 자체로 90년대가 전성기였다. 일본 드라마를 살짝 베껴온 듯한 트렌디 드라마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얼굴엔 와인색 립스틱에 과도한 화장이 넘쳐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샴페인을 미리 터뜨린’ 흥청거림, 홍대 앞 오렌지족과 야타족.

 

그 모든 것은 거품이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 그러고는 불과 몇년 만에 온 나라가 쪽박 신세가 된 듯했지만, 내가 20대 초·중반에 누렸던 것들이 어떻게 다 거품이기만 했을까. 한국이, 우리 사회가 발전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취직 준비는 해야 했지만,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짓눌리지는 않았다. ‘5대 재벌’이 한 해 1만명을 뽑았다.

 

돌이켜보면 너무 짧았다. 그것이 장밋빛 시절이었다면. 유행하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90년대를 불러대는 것은 IMF 이전 좋았던 시절에 대한 희구심리일 수도 있고, 시절이 수상할 때면 늘 등장하는 추억 마케팅일 수도 있다. 별로 많지도 않은 나이에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며 ‘서울의 달’ 주제가와 ‘마지막 승부’의 장면들에 입 벌리고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는 나.

 

87년 투쟁의 경험을 공유했다는 집단이 정치꾼 혹은 변절자가 되어 권력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내게는 기억조차 없는 ‘유신시대’의 잔당들이 다시 나타나 내가 평생 당연하게 누릴 것이라 생각했던 인권과 민주주의와 자유를 뻔뻔하게 유린하고, 내가 키우고 있는 아이들은 극단적인 경쟁에 내몰려 인간됨을 잃은 사람들로 자라날 것이 뻔해 보이는 이 시기에, 드라마를 보며 어릴 적 추억이나 회고하고 있는 나. 누가 나를, 우리를 배신한 것일까? 좌파 정권도 4대강 정권도 유신회귀 정권도, 그 어느 것도 딱 떨어지는 답은 아닐 것 같다.

 

페이스북에서 지인들과 수다를 떠는데, <응답하라 1994>의 추억 코드들은 단연 화제다. 2000학번인 후배는 ‘응답하라 2000’이 나왔으면 좋겠다 하고, 80년대 학번인 어느 교수님은 ‘응답하라 1987’을 얘기하신다. IMF 이후의 척박한 2000년을 호출할 시기가 올까? 1987년 또한 호출의 대상은 아니다. 1987이라는 한때의 마법 같던 숫자가 맛이 갔다는 걸 모두가 안다. 그래서 그 짧았던 90년대의 호황기를 드라마는 호출하고 있지만, 과거를 불러내는 것은 언제나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같은 것이다. 

 

노래와 옷차림과 추억의 얼굴들은 달콤하지만 이내 입안에서 녹아버리고, 장밋빛 시절은 지나가버렸다는 자각만 남는다. 과거는 내게 응답하지 않는다. 내가 대면해야 하는 것은 ‘오늘’이다. 전교조 선생님들이 다시 ‘법외노조’로 밀려나고, ‘초원복집’ ‘우리가 남이가’가 앙코르처럼 들려오는 쓰디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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