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공감] 넬슨 만델라... 그에 대한 기억도 박제가 될까

딸기21 2013. 6. 2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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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 할아버지에게선 지혜로운 냄새가 나요(smells wise).” 


몇 해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해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을 만난 미국 10대들이 했던 얘기다. 국제뉴스를 전하는 일을 한 지 오래됐지만, 외국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늘 미소짓게 되는 것이 만델라에 대한 소식들이었다. 만델라가 1998년 지금의 부인인 그라사 마셸과 결혼하면서 “나는 지금 꽃처럼 피어나고 있다”고 했던 일도 기억난다. 그 때 만델라는 80세, 그라사는 53세였다. 여든 살 할아버지의 핑크빛 고백은 보는 이들의 마음도 따뜻해지게 만들었다.


내가 만나본 남아공 사람들은 흑인이든 백인이든 모두 만델라에 대한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다. 서거한 전 교황 요한바오로2세를 비롯해 모든 지도자들은 공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만델라처럼 모두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경제정책과 과거사 ‘사면’, 혹은 에이즈 예방운동 등에 대한 반대가 없지는 않았지만 진실로 그는 ‘세계의 지도자’였다. 만델라의 생일인 7월 18일마다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는 축하행사, 그의 뜻을 받들겠다며 모인 지미 카터와 아웅산 수지와 메리 로빈슨 같은 국제사회 원로 모임 ‘디 엘더스’ 등은 세계가 이견없이 그에게 애정과 존경을 보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벌써 과거가 되어버린... 만델라가 1994년 역사적인 총선에서 투표를 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지난달 제이콥 주마 대통령이 대화조차 하기 힘든 만델라를 찾아가 방송촬영을 하며 ‘정치쇼’를 했다가 국민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나도 남아공 사람들처럼 분노했다. 화면 속 만델라는 권투로 다져진 젊은 시절의 단단한 모습도, 1964년 반역죄 재판 때 ‘공산주의와 무장투쟁에 대한 나의 입장’을 당당히 밝히던 사진 속 모습도, 퇴임 뒤 고향집에서 꼬마들을 반기던 모습도 아니었다. 쇠약한 노인이 되어버린 만델라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만델라의 상태가 위중해졌다고 해서 ‘타계 이후’를 위한 기사들을 준비하고 있자니 마음이 아프다. 동시에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만델라는 위대한 투사이자 협상가였고, 정치가였고, 평등과 자유와 화해의 지도자였다. 

하지만 그의 뒤에 가려진 투사들도 많았다. 백인정권의 고문 속에 숨져간 또다른 흑인 운동가 반투 스티브 비코, 백인 여성 정치인으로서 외롭게 인종차별에 맞서 싸웠던 헬런 수즈먼 같은 이들. 만델라는 로벤 섬 감옥에 있을 때 홀로 교도소를 찾아와 백인 교도관들과 싸우던 수즈먼의 모습을 평생 잊지 않았다고 했다.


지금은 만델라의 부인인 그라사의 전 남편 사모라 마셸도 있다. 모잠비크 독립영웅이자 민족 지도자였던 사모라 마셸은 대통령 재임 중 남아공 백인정권과 미 중앙정보국(CIA)의 공작으로 추정되는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졌다. 그후 혼자 민주화 투쟁과 여성운동을 해온 그라사는 만델라와 재혼한 뒤 남아공 정부를 상대로 전남편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한 바 있다. 


말하자면 만델라라는 위대한 지도자는, 역사의 뒤안으로 간 수많은 다른 투사들의 총합이다. 그런 이들이 있었기에 만델라가 역사를 바꿀 수 있었다. 이 사실을 잊지 않았기에 만델라는 위대했다.


만델라가 타계하면 그에 대한 기억도 박제가 되어버릴까? 그럴 지도 모르겠다. 몇해전 요하네스버그에 갔을 때, 신시가지 샌튼의 쇼핑몰들 사이에 우뚝 선 만델라의 동상을 봤다. 부조화 그 자체였다. 


주마 현대통령과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2인자 시릴 라마포사, 만델라 기념재단 이사인 토쿄 세크왈레 같은 사람들은 모두 만델라의 후광을 이용해 먹고 산다. 아파르트헤이트와 싸우던 이들 중 상당수가 신진 졸부집단이 되어 케이프타운의 백인 고급 주택들을 사들이고 흥청망청 살고 있단다. 심지어 광업회사를 차리고 흑인 광부들을 고용, 드비어스를 흉내내는 자들도 있다고 한다. 


BBC방송은 퇴임 뒤에도 정신없이 바쁜 만델라의 일상을 소개하면서 “넬슨 만델라에게 평화란 없다”는 제목을 붙인 적 있다. 돌아가신 뒤에도, 만델라 할아버지에게 평화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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