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근교에서 최고의 온천여행지로 꼽히는 하코네(箱根). 이즈하코네국립공원이라 묶여 있는 풍광 좋은 지역의 일부인데, 초입에 하코네유모토(箱根湯本) 즉 온천의 본향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 있다. 그 일대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것 같은 온천 료칸들로 가득하다. 우리 가족은 그런 비싼 곳에는 안 묵어봤고... 도쿄에서 가깝기 때문에 당일 여행이 가능하므로, 대부분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이번 추석 연휴에 들은 거지만, 하코네에서 인기 온천 랭킹 1위는 테노유, 2위는 하코네노유, 3위는 유노사토 오카다라고 한다. 전부 가봤다.... 나는야 하코네 마니아. ^^;;
그 중 3위이고 여러번 가본 유노사토 오카다(湯の里おかだ). 옆에 큰 온천호텔도 있지만 우리는 당일치기용 온천탕에서만 놀았다. 참 좋다...... 1인당 목욕값 1400엔이니 싸지 않다. 하지만 시설이 좋고, 타타미 깔려있는 휴게시설이 좋다. 하지만 먹을 거리는 비싸니까 여기서 안 먹음.
랭킹 2위인 하코네노유(箱根の湯)는 훨씬 서민적이다. 오카다 올라가는 길에 있는데, 어른 1000엔 어린이 500엔.
kaorun2480.blog.so-net.ne.jp
사진이 영 없어서 저런 걸 올려놓으니 폼이 좀 안 나는데, 수영장 풍의 초큼 깊은 노천탕 2개(여탕 기준;;)에 침탕이라고 하는 낮은 욕조(이름은 침탕이라는데 난 여기서 도저히 잘 수가 없어 ㅠ.ㅠ)가 있다. 실내의 탕은 대부분 그렇듯 노천탕보다 뜨겁고 물도 매끈매끈 좋다.
여기 휴게실은 역시 타타미 방에 밥상들 줄지어 있고, 할머니할아버지들 목욕하고 나와 잠시 낮잠 자는 구조. 먹을 거 싸가지고 와서 먹어도 되고, 비싸지 않게 파는 우동을 사먹어도 된다. 제법 규모가 있으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에 깨끗하고 괜찮은 시설들을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온천이니 인기가 있는 것이 당연한 듯.
그런데 하코네의 이런 온천들은 물이 쿠사츠만큼 좋은 줄은 잘 모르겠다. 유노사토 오카다 올라가는 길에 있는 '후루사토'라는 아주 작은 온천에 들러봤더니 오히려 거기 물이 하코네에서 들러본 곳 중 가장 매끄럽고 좋았음.
위용을 자랑하는... 우린 낮에 가봤지만... ㅋ
사진 www.tabiulala.com
어른 1200엔인데 시설 매우 좋고, 물도 참 좋다! 여기가 랭킹 1위인 줄 알았으면 여기로 다니는 거였는데... 그걸 몰라서 작년에 뻔질나게 하코네 다닐 적에 계속 다른 곳에만 갔다...
맞은편 산등성이가 바라다보이는 노천에 거인이 나를 가마솥에 넣어 끓여서 잡아먹으려고 하는 것 같은 분위기의 가마솥과 돌솥 등등 1인용 탕이 4개나 있고, 커다란 노천탕과 노천 침탕이 있다. 온천은 맑은 날보다는 역시나 흐리고 비오는 날이 좋은 듯. 테노유에 갔던 날은 화창쾌청한 가을날이었으나 그래도 좋기는 했다.
www.jiyujin.co.jp
바로 요런 분위기로.... 거인의 국거리가 된 기분으로 저 안에 들어가 온천을...
하코네 온천들의 좋은 점은? 우문우답같지만, 하코네에 있다는 점.
하코네는 온천이 아니더라도 볼 것들이 많은 곳이다. 목욕하고 나와 오오와쿠다니(大涌谷) 화산에 가서 연기 모락모락 올라오는 화산길 걸어보고, 뜨거운 온천수에 익힌 까만달걀 '쿠로타마고(黑たまご)' 먹으면 별미. 오오와쿠다니 휴게소에서 파는 시커먼 국수도 괜찮고, 같은 곳에서 파는 와사비 과자도 정말 맛있다. 날씨 좋으면 후지산이 바로 보이고, 그 아래 아시노코(芦ノ湖)도 내려다보인다(아시노코의 한 온천 여관에도 묵어봤는데 온천은 그냥 그랬음).
아타미(熱海)는 2번 가봤지만 그리 매력은 없었음.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추억은 방울방울>에 여주인공 타이코가 어린 시절 할머니와 아타미 온천에 갔던 걸 회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2004년 처음 일본에 머물게 됐을 때 가장 먼저 갔던 여행지가 아타미였다. 그때 앞집 다나카 할아버지가 어디 가냐고 하셔서 내가 '아타미'라고 여러번 말해도 못 알아들으시고... 나중에 할아버지가 '아, 아타미~' 하실 때에 잘 들어보니 그냥 아타미가 아니라 '아'에 꽉! 힘주어서 "아(!)타미"라고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던 기억이...
암튼 아타미는 바닷가 온천인데 별 풍미도 없고 호텔(료칸)들은 낡았고. 우리 가족이 쿠사츠에 자주 갔던 것은 온천이 좋기도 하지만 거기 쿠사츠 국제스키장이라는 놀기 좋은 스키장이 있어서인데... 아타미에선 별로 할 일이 없더이다.
아타미보다 더 남쪽으로, 이즈(伊豆) 반도로 내려가면 이토(伊東)라는 곳이 있다. 딱히 대단한 곳은 아닌데 가다보면 또 재미있고 해서 우리 가족은 이 곳에 여러번 다녀왔다.
전망이 일본 최대 급이라는 거대한 온천이 있으니, 이름하여 아카자와 히가에리(당일치기) 온천관(赤沢日帰り温泉館). 여기도 찜질방같은 구성으로 돼 있어서 당일치기 목욕에는 꽤 좋으나, 도쿄에 살고 있지 않은 다음에야 한국인 관광객이 여기 들를 일은 거의 없을 듯. ㅎㅎㅎ
전망 하나는 정말 끝내준다!
돈받고 빌려주는 개별 온천탕들과 공동 이용하는 큰 온천탕이 있는데, 공동욕탕의 노천탕은 바다를 내려다보게 되어 있어서 전망은 정말 짱임. 하지만 물은 수돗물과 별반 차이 없더라능. DHC 브랜드와 연결돼 있어서 비치된 바디케어 제품들(공짜로 맘껏 사용 가능)은 모두 거기 것들. 그 브랜드 물건들 싸게 파는 매장도 있음. 식당과 휴게소 모두 깔끔하지만 식당에서 음식을 먹어보지는 않았음.
시설 하나는 끝내주는 아카자와...
1편에서 일본 최고의 온천이 쿠사츠라고 했는데, 온천 순위에서 쿠사츠 뒤를 잇는 2위는 남쪽 규슈 지방의 유후인(由布院)이다. 한국 관광객들에게도 인기 많은 곳이죠... 9년 전 거기 들렀는데 온천은 안 해봤음.
3위는 홋카이도의 노보리베츠(登別). 여기도 역시 9년 전에 가봤는데, 특색 있는 작은 탕이 아니라 큰 온천호텔에 묵었기 때문에 색다른 느낌은 없었음. 거기 호텔 여탕에선 남탕이 보여요. (그 반대는... 안 보임. 남탕이 여탕보다 아래쪽에 있음) 수증기 때문에 실루엣만 보이더라능. ㅋㅋ
한국 관광객들이 자주 가는 오이타(大分) 현의 벳푸(別府). 여기도 오래전에 갔는데, 지고쿠 메구리(지옥 돌아다니기)라는 게 있음. 땅에서 온천물과 수증기가 솟아나오는 곳을 관광지로 만들어서 산책하며 구경하는 거다. 그런데 벳푸는 한국에선 유명한데 일본에선 특급 온천지대로는 안 쳐주는 분위기...
그러나..........................
지금껏 가봤던 일본의 온천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곳은...
홋카이도의 텐닌카쿠(天人閣). 공포의 온천...
홋카이도 동부 다이세츠잔(大雪山) 국립공원 내에 있는 텐닌쿄(天人峡)라는 협곡에 위치. 으스스 비오고 안개낀 날, 협곡의 절경을 감상하며... 어쩐지 스산한 분위기 속에서도 탄성을 지르며 찾아간 곳. 가파른 계곡의 중턱에 위치한 온천여관이 보이는데 이거이거 왠지... 어쩐지... 수상하고 미심쩍은 분위기...
바로 이런 곳... 우린 여름에 갔지만.
표 파는 사람도 안 보여서 부르니 그제야 나와 '자판기에서 사라' 하고, 1층에 있는 온천으로 내려가는데 건물이 어째 완전 쇠락해 사람 안 오는 분위기. 고추아가씨 호박아가씨 풍의 동네 미녀들 사진 실린 광고용 포스터가 붙어있는데 대부분 10년 전 사진. 온천수로 물레방아 돌아가는 온천탕이 있다는데, 그것도 이미 문 닫힌지 오래인 듯... 거대한 쇠문이 막고 있는데 그 문 자체가 공포스러웠음.
들어갔더니 손님 한 분 있다가 나가고 아무도 없어서 요니와 둘이 목욕하는데...
욕조가 7~8개 되는 큰 곳인데 그 중 물 들어있는 건 서너개 뿐. 나머지는 물 빼내고 얼룩덜룩 & 전등도 제대로 켜놓지 않은데다가, 천정도 얼룩덜룩해... <바톤 핑크>의 피흐르는 천정 분위기야 ㅠ.ㅠ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딸기의 사정... 귀신의집 뭐 이런 거 무쟈게 싫어해요. 그런데 들어가면 무서워서 꼼짝못해 못 나와요. 소리지르고 막 난리나요. 그런데 이게 왠 귀신의집이란 말이냐고..
blog.livedoor.jp/kamiyako09
중간에 요니가 머리끈 가지러 나갔는데, 나갔다 오는 요니도 무서워 떨고, 안에서 홀로 기다리던 나도 무서워 떨고... 요니라도 있었기에 망정이지, 나 혼자 갔으면 목욕 안 하고 그냥 나왔을 것임.
http://www.mapple.net/spots/G00101060602.htm
물은 미끌미끌하고 미네랄 아주 많이 들어있어서 좋은 것 같긴 한데... 과거 화려했던 시절을 상징하는 괴상망측한 스핑크스에, 노천탕에 나가보니 벌레가 둥둥 ㅠ.ㅠ 물 빼놓은 노천탕 한 곳엔 빗물이 발목 깊이로 들어차서 이끼가 둥둥 떠있어 젠장... 1인용 가마솥에 들어가면 정말로 나랑 요니를 끓여먹으려는 괴물 소굴에 들어온 것 같아서 무서워서 목욕을 할 수가 없었다. 버티고 버티다 30분 지나서 결국 나왔다.
이렇게 공포스러운 체험은 처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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