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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온천들(1) 온천의 최고봉 쿠사츠

딸기21 2013. 9. 23.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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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좀 거창하지만... 내가 뭐 일본의 그 많은 온천들 다 둘러본 것도 아니고. 좋다는 온천 찾아다니는 열성 관광객도 아니지만. 9년 전과 지난해, 각각 1년씩 2년간의 일본 생활을 통해 몇군데 둘러보긴 했다. 워낙 목욕탕을 좋아하며 추운 거 질색, 뜨신 물에 몸 담그고 세월아~네월아~ 하는 걸 즐기는 인간이라서. 그리하여 늘어놓는, '딸기가 다녀본 온천들에 대한 매우매우 주관적인 평가'....


일본 최고의 온천은 단연 쿠사츠!!!


일본의 무수히 많은 온천 중에서도 매년 온천100선 중 1위를 차지하는 명성의 온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막부 시절 에도(요즘의 도쿄)까지 여기 물 가져다 썼다 함. 물 나르던 이들은 그 무슨 개고생이었을까마는... 암튼 쿠사츠는 쵝오다. 가파른 언덕길, 온천지대 중간에 유바타케라는 게 있다. 한자로는 湯畑, '뜨거운 물 밭'이다. 절절 끓는 온천 원수를 식히는 곳. 거기 가면 안내판에 도쿠가와가 물 가져다 썼다고 나와 있어유.


town.kusatsu.gunma.jp


유바타케 옆에는 네츠노유(熱の湯)라는 조그마한 극장이 있다. 극장 자체가 꽤 귀여우니, 혹시라도 쿠사츠 가는 분들 있다면 들러볼 것을 권한다. 전통적으로 유바타케에서 물 다루는 동작을 예술로 승화시켜 공연처럼 만들어 보여준다. 어른 500엔 내면 30분 정도 하는 공연 볼 수 있다. 물 속의 미네랄을 뒤섞어 '부드럽게' 만드는 '유모미', 그것과 이어진 노래와 오도리(춤)을 보고 직접 체험도 할 수 있다. 



유모미를 그린 그림. kusatsu-onsen.ne.jp


유바타케 주변에는 서로다른 이름을 가진 여러 유(탕)들이 있다. 쿠사츠의 묘미는, 오래되고 비싼 온천여관들보다는 오히려 이런 길거리 온천들에 있다. 네츠노유 바로 옆에 '시라하타노유(白旗の湯)'라고 쓰인 건물이 있는데, 여기가 바로 그런 길거리 온천 중 하나다. 공짜다! 


노천탕 위에 나무 오두막 씌운 정도여서, 겨울이면 목욕탕 안이 영하의 기온~ 고드름 주렁주렁~. 하지만 그 뜨끈한 물에 몸 담그고 나오면 짱. 수돗물 따위는 없으니, 여기서는 비누나 샴푸 따위의 목욕용품을 쓰는 것은 금지돼 있다. 탕에 담긴 뜨거운 물을 나무 바가지로 떠서 몸을 살짝 헹구고 들어가, 몸 덥히고 나오면 기분 짱이다.


여기가 시라하타노유. 건물에 문이 두 개인데, 한쪽이 남탕 한쪽이 여탕이다. 사진 onsenoyazi.blog81.fc2.com


유바타케를 사이에 두고 시라하타노 유의 건너편 골목으로 꼬불꼬불 들어가면 지조노유(地蔵の湯). 여기도 공짜! 지조노유에 들른 날, 호텔에 돌아와 TV를 켜니 마침 TV도쿄 채널에서 쿠사츠의 지조노유를 소개하는 신기한 우연이... 


이 목욕탕엔 특이하게도 '유쵸(목욕탕의 '湯長')'가 있는데, 지조노유의 관리자이면서 '지칸유(時間湯)'라는 걸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고 체험을 도와주는 사람이다. 


지칸유란? 지조노유의 물은 강산성이란다. 안에 미네랄 등이 많은데 45도 정도 되는 목욕물에는 너무 뜨거워서 어른들도 들어가기 힘들다. 그런데 물을 '유모미' 해서 부드럽게 만들어주면, 물의 온도는 내려가지 않으면서! 신기하게도 물이 부드러워져서, 덜 뜨겁게(따갑게) 느껴지고 들어가 앉아 즐길 수가 있다고. 그렇게 물을 휘저어 들어가는 걸 지칸유라 한다고. 여기도 사실상 노천온천에 집 모양 나무틀 씌워놓은 식의 목욕탕이어서 샴푸 린스 비누 치약 등 각종 세제류 사용 금지다. 수건 한장 들고 여기저기 이런 온천들 돌아다니는 것이 쿠사츠 온천여행의 백미랄까.


지조노유의 실내. 사진 livedoor.blogimg.jp


유바타케 부근 골목으로 올라가면 쿠사츠 온천호텔이 있다. 100년 넘었지만, 이걸로는 이 동네에선 가장 오래된 축엔 끼지 못한다고. 이름만 호텔이지 온천여관(료칸)을 좀 키운 곳 정도다. 여기 물도 좋았는데, 온천장 실내가 엄청 춥다... 


낡고 오래됐지만 깔끔하게 공들여 가꾼 곳이었다. 복도에 놓인 멋스러운 가구들, 방안에는 오래전 외할머니 친할머니 쓰시던 것같은 경대가... 요즘 사람들 쓰는 '화장대' 말고, 작고 길다란 거울이 있고 그 밑에 작은 서랍 한두개가 붙어 있는 옛날식 경대를 오랜만에 봤다. 울 딸 요니는 이 곳에서 다이얼 전화기 처음 보고 무지 재미있어 했음. 



유바타케에서 좀 떨어진 '베르츠 도오리' 쪽에는 테루메테루메(Therme Therme)라는 수영장 & 온천 시설이 있다. 물 좋은 쿠사츠에서 굳이 이런 리조트형 시설을 갈 필요는 없을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와타노유(綿の湯)'라는, 무지무지 맘에 드는 온천이 있다.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의 나무 욕조에서 아주 뜨거운 물에 들어가 유황 냄새 팍팍 맡으며 몸 담그는 것인데, 나무 욕조의 크기는 딱 두 사람 마주 보고 않을 정도다. 시간 정해놓고 남녀가 번갈아 이용하는 희귀 시설;; 되겠슴돠.


테루메테루메의 '와타노유'. 사진 blog.livedoor.jp


그러나 머니머니해도 쿠사츠 온천의 양대 산맥은 사이노카와라 노천탕과 오오타키노유다.


사이노카와라(西の河原) 노천탕은 흔히들 생각하는 목욕탕이 아니라, 그냥 계곡 물을 막아놓은 형상이다. 여기도 물론 세제류 사용 금지. 시라하타노유나 지조노유도 그렇지만, 사이노카와라유에도 아예 수도가 없다우. 샤워기? 당근 없다우. 바가지로 몸에 물 끼얹은 뒤 숲속의 연못스러운 노천탕에 퐁당 들어가서 유유자적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 됨. 물은 정말정말정말 좋다... 매끌매끌. 시설이 별 게 없으니 값도 싸다. 대략 500엔 아래쪽으로 기억.


사이노카와라 노천탕. 사진 blogs.yahoo.co.jp/yuamijavajava




오오타키노유(大滝の湯)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한국의 거대한 찜질방처럼 휴게 공간이 잘 되어있고 안에 식당과 매점과 자판기도 있고... 이용료는 어른 800엔. 이곳은 가히 온천의 여왕(난 여탕만 들어가봤으니 ㅎㅎ), 목욕을 좋아하는 이들의 성전과 같은 곳! 실내 대욕탕과 노천탕은 평범한 수준이지만 '아와세유(合わせ湯)'라는 멋지구리한 시설이 있다. 


아와세유는 서로 다른 온도의 욕조들을 오가며 온천을 즐기는 것을 가리키는데, 여기 아와세유는 일본이 자랑하는 히노키 탕의 진수! 계단식으로 히노키 욕조 네 개가 있고 아래쪽에서부터 물 온도가 39도, 41도, 43도, 45도로 높아진다. 차례로 1분씩 몸을 담가 체온을 높이면서 온천을 즐기는 것. 욕조는 물론이고 벽도 바닥도 의자도 모두모두 히노키. 매끌매끌한 나무의 촉감과 은은한 냄새, 끝내줍니다. 여기는 진정 궁극의 목욕탕이라고 감히 생각하는 바입니다... 



이곳은 진정한 '목욕의 신전'! 사진 ohtakinoyu.com


쿠사츠 온천 물은 미끌미끌한데다 미네랄이 많이 들어있어서 입에 닿으면 찝찌름한 맛이 나고 눈에 들어가면 아픔. 사해의 물을 묽게 희석한 느낌? (네, 자랑질입니다~ 저 사해 가봤어요.. )


일본에 쿠사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도쿄 근방에선 하코네와 아타미가 온천지대로 유명하다.


하코네는 경치 좋고 볼거리도 많아서 자주 갔다. 실은 이번 추석 연휴에도 두번이나 갔다. 

하지만 하코네를 비롯해 쿠사츠 이외 지역의 온천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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