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 메르주가에서 밤을 보내다
알 바브 알 사하라, ‘사막의 문’을 지나 진짜 사하라로!
리싸니에서 물 한병씩 사서 차에 싣고 다시 한참을 달린다. 가도 가도 끝없는 황량한 땅, 해가 기울 무렵 메르주가의 입구로 통하는 곳에 도착했다.
모로코 사하라 투어의 꽃은 메르주가 Merzouga 부근에 있는 에르그 체비 Erg Chebbi.다. 사진에서나 보는 사하라의 붉은 모래 언덕들이 늘어서 있는 곳. 머리수건 두르고, 물병이 떨어지지 않도록 낙타의 등에 설치된 안장(이라기보다는 의자) 밑에 잘 끼워 넣고, 배낭에서 물건 흘리지 않게끔 정돈을 하고 낙타에 오른다.
이미 이틀 전 자고라에서의 경험이 있기에 요니도 엄마와 떨어져 자신 있게 '자기만의 낙타'에 오른다.
메르주가 가기 전에 들른 다데스 협곡과 와르자자트.
그렇게 두 시간 동안 낙타를 타고 사막 가운데에 베르베르족이 쳐놓은 천막으로. 날이 흐렸고 별빛 달빛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 안내하는 베르베르족은 휴대전화 꺼내들고(그들에게 '원주민' 따위의 말은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수다를. 며칠 동안 돈 주고 산 우리의 낭만을 깨버리는 가이드 ㅋㅋ
어떻게 찾아가는 건지 우리 같은 이방인들이야 알 수 없지만, 구릉이 꿀렁꿀렁 이어지는데 잘 살펴보면 우리를 태운 낙타는 높낮이 이동을 최소화하면서 걷는다. 베르베르족 가이드가 그렇게 길을 안내하기 때문이다. 좀 높다 싶은 모래언덕에선 가운데 비탈을 타고, 낮게 패인 구덩이가 보이면 둘레의 높은 길을 아슬아슬 따라서 걷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낙타라는 건 말이지... 30분 정도가 적당해. 두 시간을 타니까 엉덩이가 뽀솨지려고 하잖아!!!
낙타라는 동물, 똥조차도 수분 배설을 최소화하게 돼 있는 사막의 동물. 이 큰 녀석들 위에서 부대끼며 모래언덕을 지났다.
여담이지만 사하라 투어 첫날 묵었던 자고라는 모로코 남부에 있다. 거기서 이웃한 남쪽 나라 말리의 자랑인 세계적인 유적 통북투에 갈 수 있다. 투어 프로그램이 혹시 있는지 물었다. 52jour라 돼있기에 설마 했다. 진짜였다. 낙타 타고 52일간 통북투 가는 카라반 투어가 있단다. 님들 짱이셈...
메르주가에서는 천막촌이 자고라에서보다 좀 컸다. 유럽에서 온 젊은 관광객들이 많았고 호주에서 온 젊은 여성들도 있었는데 엄살에 어리광에 정말 시끄러운 민폐형들이었다. 말 한 마디 나누지 않았고, 그저 꼴도 보기 싫었을 뿐. 포르투갈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다는 한국 대학생들도 두 명 만났다. 젊은 서양의 이방인들, 그 밤에 모로코 사막에서 스마트폰으로 '강남스타일'을 틀더군요.
나에게 가장 즐거운 대화상대는 홍콩에서 온 아저씨. 사막에 앉아 수다를 떨었는데 대화가 잘 된다 싶더니 저널리스트. ㅋㅋ 일곱 살 딸 쌍둥이가 있는데 어떻게 하면 요니처럼 사막에 뒹구는 아이로 키울 수 있냐고 묻는다.
천막 뒤에 거대한 사구가 있는데 요니가 야밤에 거기 올라가자고 해서 네 발로 기어 올라가다가 포기. 온몸이 모래투성이에 파리까지 덤벼드니 정말로 짐승이 된 기분. 하지만 그 모래 언덕 중턱에 앉아 어두운 하늘 밑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여행의 동반자인 멋을 아는 소녀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이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름.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모래언덕에서 뒹굴며 미끄러져 내려오는 그 재미 또한 안 해본 사람은 모름.
요니한테 "나중에 사춘기 겪고 커나가면서 우울하거나 힘들면 사막 생각하라"고 했다. 사막을 다녀온 적이 몇 번 있었다. 내 경험을 돌아보면 아기자기 예쁜 곳들, 즐거운 장소에 대한 기억들은 지치고 마음 복잡할 땐 잘 떠올려지지 않는다. 기분이 그럴 땐 모래먼지 이는 황량한 곳이 생각난다. 그러면서 감상(感傷)에서 한 걸음 떨어져있을 수 있게 된다고 할까.
사하라에서도 먹기는 잘 먹어야지! 사막에서나 어디서나, 따진, 우린 널 사랑해!
다진 고기에 토마토 소스, 계란 하나 떡하니 얹어 내주는 따진 까프따도 먹어봤다. 늘 맛있는 따진. 하지만 가격은 제각각이다. 마라케시 광장에선 30디르함, 사막투어 휴게소 식당에선 60.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하두의 카스바(성채) 부근 식당에선 무려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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