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이웃동네, 일본

도쿄의 무더위

딸기21 2004. 7. 21.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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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도 넘는 날이 벌써 며칠째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 몇해전 여름휴가 때 도쿄에 왔을 때에도 날씨는 너무 더웠다. 국립박물관에 들렀다가 우에노공원으로 나왔던 순간,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코와 입 안에 밀려들어오던 그 후덥지근한 공기가 생각난다. '더위'를 생각할 때면 나는 두고두고 그 날의 감각을 떠올렸었다.
어제는 일본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도쿄 기온 최고라는 39.5도, 그리고 오늘도 39도는 너끈히 달성할 것이라고 한다. 엊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방송에서는 계속해서 '충격적인' 무더위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39도는 백엽상의 날씨일 뿐이고, 실제 생활하면서 느껴지는 기온은 40도를 웃돌고도 남는다. 
조그만 우리집은 찜통 그 자체다. 꼼꼼이와 내가 생활하는 마루방은 24시간 에어컨을 틀고 있지만 안방과 부엌은 불볕이 그대로 들어와버려서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다. 내 혼자 몸이라면, 더위를 그닥 싫어하지도 않고, 어떻게든 놀아보겠지만, 아이까지 데리고서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싱크대는 온통 뜨끈뜨끈하다. 수도를 틀면 새 물이 나오기 전까지 따뜻한 물이 나온다. 어제는 밥 해먹기 싫어서 대형수퍼에서 파는 장어덮밥과 삼각김밥을 사다가 점심을 때웠다. 저녁에는 집 근처 패밀리레스토랑에 갔다.
아이는 입맛이 떨어졌는지 어제 하루종일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오로지 쥬스만 마셨다. 며칠전 열이 올라 병원에 다녀온 뒤로 컨디션이 그닥 좋지는 않다. 열은 진작에 가셨지만 콧물이 나오고 감기기운이 조금씩 남아 있다. 다행히도 오늘아침에는 TV 요리 프로그램을 틀어놨더니 제 입으로 "밥 먹자"고 해서 계란프라이를 해줬다.
이렇게 더운 날 햇볕에 나가 있으면 오래지 않아 쓰러지겠지. 햇볕에 알레르기가 있는 것일까? 여행을 떠나기도 전부터 이미 내 얼굴은 빨갛게 익었고, 꼼꼼이는 팔다리가 새까맣다. 내 팔뚝은 그을려지면서 부풀어올라 알레르기 증상을 보이고 있다. 사실 나는 40도의 기온이 처음은 아니다. 재작년 이라크에 갔을 때에도 하루 정도, 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도쿄의 이 무더위는! 끈끈하고 후덥지근한, 숨쉴수 없게 만드는 이 공기.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너무 많다.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다. 하지만 사람이, 무력해지기 쉬운 환경 속에서도 힘을 잃지 않는 것 또한 생각해보면 쉬운 일일 수 있다. 나는 무슨 꿈을 꾸면서, 무슨 재미난 상상을 하면서 날씨라는 적과 싸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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