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문제에 정답이 두개라고, 온나라가 난리가 났다. 엊그제 '문제의 문제'를 봤는데, 이번에 시험 쳤다면 아무래도 나는 대학 떨어졌겠다. 난 그 문제의 답이 뭔지 모르겠다. 이것저것 다 답인 것 같기도 하고, 다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백석의 연인이었던 기생 할머니가 쓴 책을 오래전에 읽은 적 있는데, 책 제목은 '내사랑 백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야'라는 할머니가 회고하는 백석과의 연애기. 할머니의 소탈하면서도 옛스런 문체가 아주 좋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하기도 했었다. 백석의 시가 몇편 들어있었는데 역시 맘에 들었다. 나중에 찔끔찔끔 백석의 시 몇편을 읽고, 참 좋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나한테 백석은, '뒤늦게 알려진 좋은 시인'인데, 아마도 울나라 사람 수백만명에게 백석은 '골치아픈 인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다 저놈의 수능 때문에. 그리스 신화도 마찬가지다. 테세우스, 미노타우루스, 미궁 같은 건 신기하고 요상하고 멋지기도 한, 신화의 줄거리였는데 역시나 울나라 사람 몇백만명에게는 '지랄같은 얘기'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3번을 답으로 썼건 5번을 답으로 썼건, 그 애들은 훗날 '백석'의 이름을 들으면 무엇을 떠올릴까. 백석의 단아하고 정겨운 시가 아니라, 그 뭣같은 시험문제부터 떠올리지 않을까.
백석은 백석이고, 테세우스는 테세우스다. '고향'이라는 시에서 화자(나)는 의원을 만나 고향을 떠올리고, 아버지와 그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테세우스는 영웅이다. 내가 왜 답을 고를 수가 없냐면, 백석의 시가 됐건 테세우스의 신화가 됐건 나는 두 이야기를 너무나 별개의 맥락에서 접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내게 백석의 시는, 뿌리 잊은 자가 노인네의 얼굴에서 실종됐던 감정의 일단을 끄집어내는 향수(鄕愁)의 이야기다. 테세우스와 미궁 이야기는 영웅을 통한 구원의 이야기이고, 도전과 응전의 이야기다. 지문으로 제시된 두 개의 글에서 각각 전개방식과 논리구조를 파헤쳐보고 A is to B, C is to D의 괄호를 채우라는 문제인 것 같은데, 대체 뭣때문에 백석과 테세우스를 어거지로 연관지어야만 한다는 것인가. 제기랄.
중학교 때 국어교과서에 김상용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가 실려있었다. 아마 같은 교과서를 읽었던 이들이라면 다 알겠지만, 이 시를 배울때 빼놓지 않고 외워야 하는 것이 있었다. 첫구절인 '남으로 창을 내겠소'는 '이니스프리의 호도'이고, 마지막의 '왜 사냐면 웃지요'는 '소이부답심자한'(귀찮아서 한자는 생략)이라는 것이다. 김상용은 김상용이고, 예이츠는 예이츠다. 이태백은 이태백이다.
또 이런 것도 있었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가 아니었나 싶은데, 공무도하가의 백수광부는 '디오니소스'라고, 참고서에 나와있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디노니소스는 박쿠스이니, 그 반대말은 아폴로라...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붙어있었다. 술먹고 탱자탱자하던 디오니소스가 웃을 일이다. 시와 음악의 신인 아폴로가 비웃을 일이다. 누가 내 이름을 그따위 참고서에서 팔아먹어! 하고, 아폴로가 황금마차 끌고 창 꼬나잡고 달려올지 모르겠다.
백수광부가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백수광부는 백수광부고 디오니소스는 디오니소스다. 백석은 백석이고 테세우스는 테세우스다. 억지로 얽어맨 문제를 보니 마음이 심히 허탈하다. 수능이 요구하는 '종합적인 교양'이 기껏 신화와 시를 엮어 단어꿰맞추기를 하는 것이라니. 거기에 수백만명이 목을 매달고 있어야 하니, '왜 사냐건 웃지요'라고 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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