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딸기의 하루하루

이라크로 가는 친구

딸기21 2003. 4. 12.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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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서 돌아온 뒤로 나는 좀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일시적 우울증이라 하면--좀 과장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바그다드와 암만에서 3주를 보내면서 몸도 마음도 지쳐서 돌아왔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바그다드에서 나는 하루에 한갑씩 담배를 피웠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아 우유와 오렌지주스로 연명했고 계속 긴장된 상태로 돌아다니다가 밤에는 연신 리모콘을 눌러가며 CNN과 BBC, 알자지라 방송을 봐야 했다.

무엇보다 마음이 괴로왔다는 얘기를 다시 해야겠다. 여행기에서 언급했지만, 일주일 동안 나는 여러 사람을 만났다. 사람을 만나고 돌아설 때마다 "저 사람이 살아 있어야 할텐데"라고 기도해야 하는 현실은 나를 꽉꽉 조여왔다.

돌아온 뒤에도 외상성증후군처럼 후유증이 나를 따라다녔다. 회사 사람들이 전쟁에 대해 '쉽게' 이야기할 때, '국익'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속으로 얼마나 분노했는지 모른다. 짐바브웨와 콩고민주공화국, 네팔의 분쟁을 얘기하고 글로 쓸 때 나 역시 그들과 똑같은 이야기를 했었으면서. 분노하고, 속 끓이다가 돌아서면 마음 속으로 방향을 바꿔본다.

내가 뭐 잘났다고, 내가 무슨 반전운동가라고 남의 나라 전쟁에 속상해하나. 그러다가 다시 방향이 돌아간다. 생각하기를 포기하면 그것은 더이상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사고하라. 그리고 뇌세포들이 또 갈등하기 시작한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주제에, 아니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는 주제에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고민한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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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그런 갈등과 무력감에 시달리는지, 사실 나 자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평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온 사람도 아니며, 인생 32년을 그리 치열하게 살지도 않았다. 게다가 나는 '뚜껑이 잘 열리는' 사람도 아니다. 최근 몇년간 나의 생활신조는 "좋은 게 좋은 거지"였다. 철갑상어처럼 살갗에 방어막을 두르고 나를 지켜왔다. 겹겹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갑옷의 하나는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수동적인 것이었고, 또다른 하나는 관대함을 가장하는 긍정적인 것이었다. 내 좁다란 시야를 조금이라도 넓히기 위해 애를 쓰면서, '되도록이면' 봐주자고, 보기 싫다 생각하지 말고 좀 봐주자고 생각했다.

도저히 못봐준다 싶으면 과감히 내치는 것이 내 성격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괜찮았던 것 같다. 아주 심한 것이 아니면 그냥 봐주자구.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좋다 생각하자구. 그러면 정말 좋아진다니깐. 인터넷에 집을 운영하면서 맘에 걸리는 것이 없지 않았지만, "싫지 않다" 생각하니 다 들어주면서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그래, 봐주는 거야. 아침마다 전달되어 오는 스팸메일들에 짜증내지 않으며, 속으로 미워하는 누구와도 매일 농담따먹기를 진행하며, 듣지 않던 음악에도 심취해보며, 내가 좋아하는 명작 드라마의 시청률이 지하 150m를 헤매고 있어도 분개하지 않으며, 양아치가 설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도 즐겁게 관람하며, 하다못해 바르셀로나까지도 너무 미워하지 않고 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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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 '진보'라는 말이 들어가 있는 한 모임이 있다. 조직이라 하기엔 그저 몇몇씩 만나 웃고 떠드는 수준의 모임이니 정체를 밝히긴 민망하다. 어쨌든 그런 모임이 있고, 그 모임의 사이트가 있다. 그 곳의 몇분이 내게 메일을 보내주셨다. 이라크에 가있는 동안에 보내주신 것들인데 돌아오고 나서야 읽었다. 그래서 고맙다는 얘기, 잘 다녀왔다는 인사라도 전하려고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어떤 이의 글을 보았다. 아마도 나의 선배일, 주변에 대고 386세대입네 하고 다녔을 사람의 글이다. 대충 기억나는 내용은,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에 찬성한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현실론' 대 '이상론'의 분열적인 싸움을 제기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그 사람의 말하는 방식은 정말이지 맘에 안 들었다. 누가 대통령인가. 그 사람이 대통령인가. "노무현은 개혁을 하기 위해 파병을 하는 것이다"라는 식의 논리가 어떻게 가능하다는 것인가. 수구세력에 덜미잡혀 5년 내내 고생하지 않으려면 '일보 후퇴 이보 전진'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무엇이 개혁이고 무엇이 정의란 말인가.

어쨌든 당신은 대통령이 아니잖아. 종교가 있으면 종교가 있는대로, 학생이면 학생인대로, 나는 나대로, 나의 양심에 따라 전쟁을 평가하면 되는 거지 무엇 때문에 내가 '대통령의 입장'에서 사태를 파악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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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단순하게' 화가 나 있었다. 간만에 뚜껑 열리나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의 글 밑에 내 친구(이제사 등장하는 이 글의 주인공)의 코멘트가 붙어 있었다. 내 친구가 상당히 열받았던 모양이다. 어쨌든 나는 작자의 글에 마음이 많이 상했다.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화가 나서, 혼자 씩씩거리다가 친구를 만나 같이 '씹고' 전쟁 이야기를 했다. 내 친구는 예전부터도 나의 두서없는 중동이야기를 매번 들어주었다.

그리고 엊그제 다시 그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말도 안 되는 황당한 글이 있었다. 미국이 왜 나쁘냐는 내용이었는데--이따위 짓거리들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 하다가 마음 잡고 댓글을 올렸는데 어제 보니 게시판에 '○○○씨(내 이름)'라는 이름의 글이 올라와 있지 않은가. 후세인이 나쁜 놈인데 왜 미국을 욕하냐고, 나더러 '더블 스탠더드'라 한다. 그리고는 '너무 가혹하게 비판'해서 내가 마음 상할까 걱정이란다.

젠장, 또라이 아냐, 라고 하면서 나왔는데 오늘 아침 혹시나 내가 뭐라도 대답을 해야 하나 싶어서 다시 게시판에 들어갔더니 코멘트가 주르르 붙어 있다. 내 친구가 열변을 토해놨다. 그 자를 마구마구 비판하면서 다분히 '감정 섞인' 글까지 같이 올려놓은 걸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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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화가 풀렸다. 친구가 흥분하는 걸 보니 기분이 몹시 좋아졌다. 물론 친구가 내 대신 흥분한 것은 아니다. 그 작자의 글을 읽어보고 스스로 분노하여 격렬한 반응을 보인 것 뿐이다. 그러나 기분이 좋은 것을 어찌 하랴. 내 편 들어줬다 그 얘기가 아니라, 나 분노하고 있는데 같은 사안을 놓고 같이 분노할 친구가 있다는게 기분 좋다는 말이다. 역시, 넌 내 친구야!

그 친구가 내일 이라크로 떠난다.

몸 건강히 다녀오라는 '기본적인' 바램 말고, 한가지 더 바라는 것이 있다. 나는 내 친구가 바그다드에서 나처럼, 아니 나보다 훨씬 더 괴로워했으면 좋겠다. 다녀 와서 나처럼 정신적 질병에 시달리면서 괴로와했음 좋겠다. 최소한 한달 동안-나는 다음주쯤 질병에서 회복될 예정이니깐- 분열적 갈등에 시달렸으면 좋겠다. 그러고 나서, 바그다드에서 보낸 단 며칠의 기억일지라도 두고두고 몇년 동안 그 기억 떠올릴 때마다 무력감과 자괴감에 고통받고, 인생에 책임감 느끼며 고민했으면 좋겠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본 허망한 글 몇줄 때문에 친구가 분노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기분이 맑아졌는데, 친구가 오래오래 괴로와하고 분노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기분이 좋아질까!

두고두고 서로 괴롭히는 얘기를 하면서 느낄 그 '동질적 분노'에 나는 기대를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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