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이웃동네, 일본

넥타이 푸는 것도 '정치'

딸기21 2005. 8. 3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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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치권이 30일 선거 공시와 함께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했다. 다음달 11일 실시될 총선 캠페인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자민당은 ‘우정(郵政) 민영화’를 내세워 공세를 벌이고 있고, 정권 교체의 기대에 부푼 제1야당 민주당은 연금제도 개혁을 내걸며 맞서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를 비롯한 6개 당 당수들은 29일 도쿄(東京) 시내 일본기자클럽에서 열린 공개토론회에서 우정법안과 연금문제 등 선거 쟁점들을 놓고 첫 ‘진검 승부’를 펼쳤다.


‘우정’이냐 ‘연금’이냐


이날 토론회에는 자민, 공명, 민주, 공산, 사민 5개 당 당수와 자민당 탈당파들로 구성된 ‘국민신당’ 대표가 참석했다. 선거전 주역들이 처음으로 모두 모인 이 자리에서는 초반부터 설전이 벌어졌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번 선거의 쟁점은 우정사업 민영화”라며 포문을 열었고, 민주당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대표는 “연금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맞섰다. 고이즈미 총리가 우정민영화로 쟁점을 좁혀 ‘개혁 대 반개혁’으로 선거 구도를 몰고 가려는 의도인데 반해, 민주당은 국민의 최대 관심사인 연금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정권 선택’을 호소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1100명 전후의 후보자가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은 우정민영화와 관료기구 축소, 재정건전화 등을 핵심 이슈로 부각시켰다. 자민당은 우정개혁 이외에는 민감한 사안들을 모두 빼고 ‘안전한 공약’을 내세우면서 총리 개인의 인기로 승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고이즈미 총리는 12월14일 끝나는 자위대 이라크 파병 시한 같은 민감한 이슈에 대해서는 “12월이 다가오면 그때 가서 판단할 문제”라며 넘어갔다. 반면 민주당은 연금재정 악화와 출산률 저하 등 사회복지 관련 이슈를 쟁점화하려 애쓰고 있지만 개혁 이슈를 이미 자민당에 선점당해 고전하고 있다.




‘고이즈미 페이스’


세세한 사안들에 대한 설명은 모두 미루면서 우정민영화라는 키워드만 내세운 고이즈미 총리의 선거 전략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최근 고이즈미 총리와 자민당의 지지율은 중의원 해산 직후 상승세에서 약간 주춤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야당들을 압도하고 있다.

마이니치(每日) 신문은 6개당 첫 토론회에 대해서 “‘고이즈미 페이스’로 선거가 진행될 것이라는 인상을 굳힌 자리였다”고 전했다. 사이타마대학 정치학과 마쓰모토 마사오(松本正生) 교수는 이 신문 인터뷰에서 “토론회의 승자는 고이즈미 총리”라며 “오카다 당수는 왜 우정민영화에 반대하는지를 여전히 국민들에게 납득시키지 못했다”고 평했다.

야당 당수들이 모두들 정장 차림을 하고 나온 반면, 고이즈미 총리는 TV로 중계된 공개토론회에 홀로 넥타이와 재킷 없이 셔츠만 입은 ‘쿨 비즈’ 차림으로 나와 눈길을 끌었다. 이번 토론회는 마치 총리를 주역으로 한 대국민연설회 같은 느낌을 주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 ‘헨진’은 역시 ‘헨진’

“내가 테러를 당한 셈이니 선거일은 테러기념일로 잡자”.

독특하고 돌출적인 행동으로 일본 정계의 ‘헨진(變人·괴짜)’으로 불리는 고이즈미 총리는 선거 일정을 정하는 과정에서도 괴짜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이즈미 총리의 측근인 야마자키 타쿠(山崎拓) 전 자민당 부총재는 30일 우쿠오카(福岡)시에서 강연을 하면서 다음달 총선 날짜가 11일로 정해지기까지의 뒷얘기를 소개했다.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달 8일 우정 민영화 법안이 참의원에서 부결된 뒤 야마자키 전 부총재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투표일은 9월11일이 좋다”고 못박았다는 것. 이유는 2001년 미국 9·11 동시다발테러 기념일이라는 것이다. 고이즈미총리는 “참의원 반대파들이 동시다발테러처럼 나를 공격했으니 그 날이 좋다”며 “나는 빌딩에서 추락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고 그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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