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딸기21 2004. 10. 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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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집트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좀 이상하다. (아마 닐리리는 알겠지만) 너무 어릴적부터 이집트를 꿈꿨고-- 무슨 꿈인지는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정확히 말하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기보다는, 그런 기분, 그런 것들을 잘 모르겠다. 하여간 나는 어릴적부터 이집트에 가보고 싶어했고, 고고학자가 되고 싶어했다. (결과는? 아시다시피 못 되었다)
이집트를 향한 나의 로망은 너무나 깊은 것이었기 때문에-- 어릴적의 거의 모든 꿈이 이집트를 향해 있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오늘날 나의 각종 버닝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결국 꿈에 그리던 이집트에 가게 됐다. 우습지만, 최근 몇년간 이집트에 대해서 나는 여러가지 안 좋은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거지같고 도둑놈들 같고, 인심 사납고 바가지 투성이인데다 도시는 지저분하고, 독재정권에 미국에 빌붙어사는 놈들... 여자 관광객들이 이집트에 가면 섹스관광 온 줄 알고 들러붙는 남자들이 한 무더기, 자존심도 없고 밸도 없는 인간들... 뭐 이런 얘기.

그래도 이집트는 이집트. 나일강, 피라밋과 스핑크스, 아부심벨과 룩소르. 이런 것들이 있는 나라는 온 세상에서 이집트 뿐이다. 이집트에 대한 평판은 다 맞는 말이었다. 인심 사납고 관광객에게 바가지 씌우고 우스꽝스러운 나라. 어디를 가도 지저분하고 맘에 안 드는 나라. 가난해서 가난한 것이 아니고 부패해서 가난한, 권력형 부패의 냄새가 오만 곳에서 풍기는 나라. 

이집트는 더웠다. 더우기 우리는 8월에 이집트에 갔으니, 가장 더울 때를 골라서 간 셈이다. 카이로에서는 연합뉴스 특파원 선배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재작년에 선배가 서울에 들렀을 때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있다. 나하고는 서울에서 만난 적은 한번도 없고, 이라크와 요르단에서 만났었다. 알고 지낸 기간은 단 며칠에 불과한데 서울에 들렀을 때 전화라도 해 준 선배가 몹시 고마웠었다. 그때 내가 이집트에 한번 가는 것이 꿈이라고 했더니 놀러오라고 펌프질을 했었다. 
펌프질한 대가로 선배가 이것저것 많이 살펴줬고, 호텔 예약에서부터 기차표 사는 것 등등 모두 맡아서 처리해줬다. 만일 그러지 않았더라면- 꼼꼼이까지 데리고, 그 사기꾼들 틈에서 우리 가족 아마도 황당한 일 많이 당했을 것이다. 더우기 선배가 자가용 & 운전기사를 빌려준 덕분에 카이로에서는 편했다.

카이로에서 우리가 묵었던 곳은 기자(3대 피라밋이 있는 곳) 가는 길목의 제법 큰 호텔이었다. 호텔에서 기자로 가는 차 안에서, 멀리 보이는 피라밋을 찍었다. 



피라밋 앞에서 폼 한번 잡아 주시고.



이집트 피라밋 중에서 가장 큰(높이 147미터) 쿠프왕의 대피라밋. 가운데 구멍처럼 보이는 것은 석실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석실 안에 들어가봤지만(힘들어 죽을뻔했다) 사진 촬영 금지... 뭐 찍을 것도 없었다. 관광 가이드북에 다 나와 있다. 그냥 텅 빈 방, 천정이 높은 돌방이다. 
아지님은 피라밋을 보면서 굉장히 실망을 했다. 돌밖에 없다고...
그렇다. 피라밋에는 돌 밖에 없다. 
그래서 난 좋았다.



저것이 바로 스핑크스.



스핑크스의 발.



3대 피라밋을 한번에 보려면 좀 멀리 떨어진 곳에 가야한다. 세 개의 거대한 피라밋이 다 보이는 사막의 한 언덕. 구경꾼들이 몰려있는 공식적인 '사진촬영 장소'다. 관광객들이 있는 곳을 몇 미터 벗어나, 건너편 언덕으로 올라갔다. 



관광객한테 돈 뜯는 경찰들. 자기네 사진 찍으면 돈 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음. 쓰레기나 주울 일이지. 세상에, 이집트가 개판이라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피라미드 가는 길에 집들 꼬락서니 하고는... 



짓다 만 집인 줄 알았는데 모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카이로 같은 국제도시에 저게 뭔 꼴?
하지만 가장 놀랐던 것은 피라미드 앞의 쓰레기더미였다.
사람 몇명 시켜서 하루만 치우면 될 것을 그대로 놓아둔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 피.라.미.드. 아닌가? 피라미드만한 구경거리가 세상에 얼마나 된다고, 그 앞에 모래더미에 쌓인 쓰레기들을 그냥 둔단 말인가?



저녁에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앞에서 라이트업 쇼를 한다. 안타깝게도, 무려 기자까지 가서, 라이트업 쇼를 보지 못하고 왔다. 아지님만 봤다. 왜냐? 꼼양이 무섭다고 울어제껴서 나는 못 보고 걍 뒤에 앉아있었다. ㅠ.ㅠ



멤논 거상. 사실 멤논(그리스의 아가멤논)하고는 상관이 없는데, 알렉산더가 이집트 정복하러 왔을때 그리스 군인들이 저걸 보더니 그리스 신화 속의 멤논 같다면서(자세한 에피소드는 생략)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고.
이 거상부터는 카이로 주변이 아니라 룩소르. 침대차를 타고 나일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사실 올라갔다고는 하지만 방위로 따지면 남쪽으로 내려간 것. 나일강은 북반구에서 매우 드물게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강이다. 따라서 이집트 인들의 공간감각으로는 남쪽이 위(상류), 북쪽이 아래(하류)가 된다. 고대의 상이집트(Upper Egypt) 하이집트(Lower Egypt)도 남쪽왕국과 북쪽 왕국을 각각 가리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왕가의 계곡... 룩소르와 아스완 쪽은 무쟈게 덥기 때문에, 꼭두새벽부터 관광을 해야 한다. 저 곳에 도착하니 한 일곱시 정도 됐었나.



람세스 2세의 무덤 입구



람세스 6세의 무덤속 벽화



하트솁수트 여왕의 신전. 하트솁수트는 고대 이집트의 유일한 여왕이다. (그럼 클레오파트라는 뭔가?)


나일강


"이집트는 나일강이고 나일강은 이집트다"


나일강은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길이 6600km,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 중의 하나를 낳은 강, 이집트의 어머니. 나일강은 에티오피아/수단 일대에서 발원해 이집트를 남에서 북으로 흘러 지중해로 나간다. 앞서 설명한대로,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강이다. 이집트를 흐르는 것은 나일강 전체 길이의 6분의 1 정도 밖에 안 되지만 그래도 '이집트는 나일강이고 나일강은 이집트'다. 관광가이드책에 나온 말이다. 이집트에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나일강. 세계에서 가장 긴 강. 미시시피나 아마존과는 달리 곁을 주지 않는 강. 이집트에 가본 사람이라면, 역시 이런 설명에도 동의하게 될 것 같다. 아마존은 길이로 치면 세계 3위이지만 유역의 넓이는 단연 세계최대다. 
반면 나일강은 인색하다. 그렇게 기나긴 거리를 흘러가는 '큰 강'인데, 강에서 양 옆 몇백미터 정도를 빼면 모두 사막이다. (이집트는 국토의 97%가 사막이고, 인구의 97%가 나머지 3% 지역에 몰려 있다. 그럼 3%의 인구는 어디에 사나? 사막에서 산다는 결론이 나옴) 

이렇게 큰 강이 있는데 어쩜 그렇게 유역이 좁은지. 모든 것을 강물이 스스로 끌어안고 흐르는 것일까. 아니 그렇게 인색하기 때문에 강인하게도 드넓은 사막을 수천 킬로미터 흘러갈 수 있는 것인지도. 아지님한테 이 얘기를 했더니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는 대답.

나일강은 멋있었다. 어릴적 '나일강~'으로 시작되는 만화책에 심취했었다. 라이브러리에서도 한번 말한 적 있었던, 일본 만화 '왕가의 문장' 해적판이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번역되어 나왔다. 나일강의 소녀, 나일강의 여신, 나일강의 사랑, 나일강이여 영원히. 



아스완 호수(아스완댐을 만들면서 생긴 인공호)에서.



카이로 시내를 흐르는 나일강. 옆에 선상 카페가 있다.



강에서 조금만 눈을 위로 올리면, 바로 옆에 사막이 있다. 아스완에서, 아부심벨 들렀다가 호텔로 돌아가는 길, 자동차로 3시간 내내 옆에는 사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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