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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수스/터키의 음식

딸기21 2004. 9. 27.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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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버스

8월7일--이라고 메모장에 적혀 있구나. 에페수스로 떠나는 날이었다. 시르케지 부둣가의 괜찮은(다시 말하면 비싼) 까페에서 네스까페를 마셨다. 밤중에 호텔을 나와 BOSS라는 회사에서 운영하는 터미널로 향했다. 터키는 철도보다는 버스가 가장 활용도가 높은 교통수단인데, '오토갸르'라고 부르는 터미널도 있고, BOSS처럼 별도의 터미널을 버스회사에서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이스탄불에서 '오토갸르'라고 하면 보통 시 외곽의 큰 터미널을 가리킨다. 우리는 이 오토갸르가 아닌 보스의 터미널에서 야간버스에 올랐다.

버스를 타고 이스탄불을 출발한 것은 밤 11시도 넘어서였다. 터키 서부 해안, 즉 에게해에 면한 쿠샤다시라는 관광지를 향해 가는 길이었다. 야간버스 중에서도 매우 비싼(1인당 32달러) 것을 탔기 때문에, 차량 자체는 좋았다. 아침도 주고, 화장실도 있고... 
꼼양 때문에 자는둥 마는둥 하다가 잠시 눈을 감았나보다. 이상한 기분에 눈을 떠보니 밤 12시 30분, 출발한지 1시간 좀 넘긴 시각이었다. 이상하게도 버스 옆차로에 차들이 꽉꽉 차 있고, 버스는 멈춰 있었다. 몇분간 동향을 살펴보다가... 궁금증을 못 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버스 뒷문이 열려있길래 내려가서 차장(남자 차장이 3명이나 타고 있었음)에게 "왜 가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영어로 뭐라뭐라 한다. 멍청하게 못알아듣는 표정을 하자, 버스 뒤편을 가리킨다. 육교 -_-;;가 보였다. 저기 올라가서 직접 눈으로 보라나. 
버스는 배 위에 있었다. 육교 ^^;; 가 아니고 배의 2층이었고나. 하늘엔 노란 초승달, 발 밑에는 에게해가 있었다! 구불구불 해안도로 대신에 배를 타고 연안을 내려가는 모양이었다.

에페수스

아침 6시30분, 버스 안에서 '지중해식' 아침식사를 했다. 올리브 몇 알, 빵, 버터, 딸기잼, 커피. 
야간버스는 후유증이 컸다. 쿠샤다시의 호텔에 짐을 풀긴 했지만 하루종일 비몽사몽... 몽롱한 가운데 에페수스에 갔다. 무지막지하게 비싼 돈을 두고 개인 패키지 투어를 예약해놨었다. 전문가이드인 세즈긴과 운전기사 대동하여 우리가족만의 패키지 관광을 하는 거였다.
에페수스는 요즘 이름으로는 에페스다(터키에는 '에페스'라는 맥주도 있다). 성경의 '에베소'가 바로 여기다. 에게해 연안 지역은 사실 투르크 내지는 이슬람 분위기보다는 그리스 분위기가 한결 많이 난다. 에페수스가 대표적이다. 그리스 시절의 유적도시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고대 중근동 3대 도서관이라 하면 제일로 쳐주는 것은 역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고, 페르가몬이 두 번째, 그리고 에페수스에 있었던 셀수스 도서관이 세번째다.
에페수스에는 신전과 극장, 거리, 주택가, 상점가, 김나지움의 원형이 많이 살아있어서 재미있게 구경을 했다. 세즈긴은 가이드 자격증을 갖고 있는 정식 여행가이드였는데, 사명감이 있는 듯-- 우리를 열심히 가르치려고 했으나... 꼼양은 피곤함과 졸음과 더위에 쩔어 울어제끼지, 하나는 비됴에 하나는 카메라에 몰두해서 설명 제대로 듣지도 않지, 영어도 잘 못하지... 나중엔 우리를 다소 한심하게 여기는 듯 보이기도 했다 ^^;; 아마 속이 터졌을 것이다. 터키에서 정식 관광가이드가 되려면 4차례 시험을 치러야 한다고 한다. 1차에 합격하면 1달간 전국투어를 하면서 소양을 쌓아야 하고, 그 뒤에 다시 세 번의 시험을 치러야 가이드 자격증이 나온다고. 이렇게 자격증을 소지한 가이드가 전국에 7000명이라고 한다. 

세즈긴과의 대화

세즈긴은 대학에서 관광경영을 전공했고, 역사와 고고학에 관심이 많아 가이드가 됐다고 했다. 터키의 동쪽 아르메니아와의 국경지대에 태어나서 서쪽 끝 쿠샤다시까지 왔다니, 멀리도 왔다. 세즈긴은 열심히 설명을 해주려고 했던 것 같이도 보이지만 우리는 잘 안듣고 못 들었던 관계로, 에페수스에 대한 자세한 고고학적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에페수스 다음날 페르가몬을 구경하고 세즈긴과 헤어졌는데, 헤어지기 전 호텔 로비에서 잠시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여행에서 가장 재미나고 보람있는 것은 사실 사람들과의 만남인데, 세즈긴은 굉장히 지적이고, 뭐랄까-- 서구적이었다. 아시다시피 터키는 여러가지 정체성을 갖고 있다. 외양에서는, 아랍인과는 완전히 다른 유럽스러운 사람도 있고, 투르크스러운 사람도 있다. 종교적으로는-- 이건 내가 관심을 가졌던 부분인데, 터키는 공식적으로 '세속 국가'다. 다른 이슬람국가들처럼 헌법에 '이슬람공화국' 또는 '이슬람왕국'으로 규정돼 있지 않을 뿐더러, 이슬람 세력의 정치세력화 또한 군부에 의해 많이 막혀왔다. (터키 군부에 대해 나중에 설명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지만, 특이하게도 터키에서는 군부가 세속주의의 기치를 수호하는 보루 역할을 해왔다)
세즈긴을 우리에게 소개해준 사람은 이스탄불에서 묵었던 호텔 사장 무스타파였다. 무스타파에게 무슬림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i'm not religious"라고 대답했다. 똑같은 질문을 세즈긴에게도 던졌다. "are you a muslim?" 이라는 내 질문에 세즈긴은 "i'm fine"이라는 농담으로 대답했다.
세즈긴은 주민등록증을 꺼내서 내게 보여줬는데, 뒷면에 '종교' 칸이 있었다. islam. '공식적으로' 터키는 인구의 98%가 무슬림이다. 세즈긴의 경우도 이슬람신자로 되어 있듯이. "이건 부모가 적은 거니까. 부모님은 무슬림이다"
이라크나 요르단에서 만난 사람들은, 당연히 전부 무슬림이었다. 자신이 무슬림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나는 세즈긴에게 "무스타파와 당신, 모두 무슬림이 아니라고 한다. 신기하다"고 했다. 세즈긴은 "당신이 물어본 터키 사람 두 사람이 특이한 사람이다"라며 웃었는데, 꼭 무스타파와 세즈긴이 특별한 것 같지는 않다. 터키는 종교적인 냄새가 많이 안 났다. 하루 다섯번, 모스크에서 울려오는 독경 소리만이 이곳이 이슬람 국가임을 상기시켜줬을 뿐이다. 공휴일도 다른 나라와 똑같이 일요일(이슬람의 주일은 금요일)이고, 길거리 풍경이나 여자들 옷차림이나, 종교적인 경건함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세즈긴은 이슬람의 다섯 기둥(무슬림의 의무로 규정된 5가지 행위)를 예로 들면서 자신의 비종교적인 태도를 옹호했다. "왜 신이 우리에게 단식(금식월-라마단의 단식)을 하라고 했을까? 몸도 마음도 정결히 하라는 의미다. 신학 교리의 이면에 있는 배경과 목적을 이해하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순종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나. 종교적 심성이라면 나도 갖고 있다. 하지만 생활 모든 것을 종교에 의존하지는 않는다. 내 방식대로 믿을 뿐이다"
말만 그럴듯하지, 사실상 비무슬림의 말이나 똑같다. 조그만 여행사를 운영하면서 인터넷과 모바일폰으로 일하는 사람 답다.
'세즈긴'은 터키 말로 '앞날을 보는 사람' '예언하는 사람'의 의미라고 했다. 헤어지기 전 그는 "내가 예언컨대, 당신들의 여행은 즐거울 것이다"라면서 덕담을 해주었다.



에게해 연안의 햇빛은 정말 눈부셨다. 너무 환해서 사진이 거의 잘 안 나왔다. 드넓은 하늘엔 진짜로 구름이 한.점.도. 없었다. 지중해성 기후의 특징(여름엔 고온건조 겨울엔 온난습윤) 그대로였다. 여름철 넉달 정도 건기가 이어지는데, 그래서인지 농사의 스케줄이 우리나라하고는 달랐다. 건기가 시작되기 전에 한차례 수확을 하고, 건기가 끝난 뒤에 다시 농사를 시작한다고 한다.
건조한 탓에, 양달과 응달의 기온 차이가 확실히 컸다.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고, 밤에는 선선하다. 낮에는 빛나는 태양-- '빛나는' 이라는 말로 밖에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작열하는' 같은 치열한 느낌은 아니고, 그저 햇빛이 눈부시다. 그 햇빛이 신선한 토마토와 올리브, 오렌지를 익히는 것이겠지.

Tip. 터키의 음식

이번 여행에서 얻은 작은 수확은 올리브의 재발견! 
터키에서는 죽어라고 치킨 케밥을 먹어댔다. 외국음식 잘 못 먹어서 걱정이라던 때는 언제고 ^^;; 어찌나 열심히 먹어치웠는지. 
터키 음식, 대체로 참 맛있었다. 가장 감탄했던 것은 과일과 채소. 신선한 토마토는 붉고 단단하다. 오이도 굵고 신선하다. 우리나라에서처럼 하우스 재배해서 익지도 않은 것 따다가 형광등 불빛에 익히는 것이 아니라, 천혜의 햇볕(진정한 햇빛을 보고 싶다면 여름철 에게해에 가보시길)에서 잘 자라고 잘 익은 채소들이다. 온실채소, 농약채소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쿠샤다시의 호텔은 무쟈게 비싼 것에 비해 꽝이었지만 첫째 방에서 에게해가 바로 내려다보였고, 둘째 음식이 맛있었다. 아침-저녁 식사가 포함된 패키지였는데, 저녁 뷔페는 아주 훌륭했다. 그 엄청난 샐러드의 향연! 새콤매콤짭짜름한 올리브! 
터키와 아랍의 대표적인 음식은 케밥. 터키에는 두 종류의 케밥이 있다. 나는 안 먹었지만 아무튼 양고기를 중심으로 설명하면-- 되네르 케밥이라 부르는 것은, 양고기를 커다란 꼬치에 꿰어 세로로 세운다. 이 거대한 꼬치를 천천히 돌려가며 익힌다. 요리사가 겉(익은 쪽)에서부터 커다란 칼로 잘게 잘라내면, 잘린 고기들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진다. 바닥에는 양념이 들어있는 철판이 있다. 바닥에 떨어진 고기를 양념에 한번 휘둘러서 꺼낸다. 이렇게 잘게 썬 고기를 커다란 빵 사이에 토마토, 양파와 같이 끼워서 먹는 것이 되네르 케밥이다.
반면에 우리가 애용했던 시시 케밥은 말 그대로의 꼬치구이다. 고기를 꼬치에 꿰어 숯불에 구운 다음에, 꼬치에서 빼내 접시에 담아 준다. 빵이나 밥을 기본으로 끼워준다(당연히 되네르 케밥보다 비싸다). 얇은 걸레빵(이름은 지역마다 다름)이 기본으로 나오기도 하고, 식당에 따라 바게뜨가 나오기도 한다. 흰 쌀에 뭔지 모를 짭자름한 양념이 섞인 밥을 주기도 하고, 케찹처럼 붉은 소스에 볶은 밥을 주기도 한다. 빵이나 밥 뿐만 아니라, 터키 사람들이 김치처럼 즐겨먹는 토마토와 오이도 접시 위의 기본 메뉴. 양파와 허브(이름은 모르겠음)를 주기도 하는데, 우리는 고추장을 갖고 갔기 때문에 양파와 오이가 나오면 매우 즐거워했다.
카파도키아에서는 제법 그럴싸한 동굴식당에 갔었다. 여기서는 딱 우리의 갈비찜 혹은 사태찜 비슷한 메뉴가 나왔다. 항아리 모양의 질그릇에 고기와 양념을 넣고 흙으로 봉한다. 그릇째 아궁이에 넣고 익힌뒤, 손님들 앞에서 뚜껑을 깨는 '개봉식'을 하고 음식을 나누어주는데 특이하면서 맛도 좋았다.
터키의 생선구이가 맛있다고 들었는데, 비싸더군. -_- 우리는 닭에 웬수진 사람들처럼 그저 치킨 케밥만 먹었다.

 
닭에 원수진 사람들처럼 치킨 케밥만 먹었다..란 말에 뒤집어짐....ㅋㅋㅋ 
항아리 사태찜도 먹어보고 싶어요... 역시 여행에서는 그나라 음식을 먹어봐야..-_-b


걸레빵이라.. 음식이 우리와 비슷해서 음식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자연 그대로 재배한 채소라.. 역시 하우스는 따라갈 수 없죠. 저도 연휴기간 엄마가 해주는 거 많이 먹어서 몸이 좋아진 걸 느껴요

그래 정말. 요즘 여기서 케밥이 유행하는 것만 봐도, 터키 음식은 꽤 입맛에 맞을 것 같더라구. 으으.. 먹고싶다..

터키에서 '샐러드'의 일종으로 구분되는 '에즈메'라는 것이 있어. 
저 글에 적으려고 했는데, 그만 깜빡 잊고 말았네. 
고춧가루(진짜 태양초.. 엄청 매움)에 토마토, 채소를 잘게 썰어서 버무린 것.
모양을 딱 보면 완전히 울나라 다대기하고 똑같애. 
이거 엄청 맵다... 가이드였던 세즈긴한테, 인천공항서 사간 고추장 주면서 
"엄청 매운데 먹어보겠느냐"고 했더니 
쪼끔 먹어보고 나서 "뭐 별로 안 맵다, 에즈메 먹어볼래" 그러더라 
먹어보니깐... 흑흑 고추장은 장난이었어 ^^;; 
이스탄불 쪽 사람들은 매운 거 안 먹고, 남쪽 사람들은 매운 거 좋아한다더군. 
에즈메랑 같이 먹으면 느끼한 거 안 좋아하는 사람도 
웬만하면 터키음식 다 먹을 수 있을 듯. 
카파도키아에서는 케밥 집에서 작은 고추절임을 먹었어. 
노랑색에 가까운 연두색 작은고추(중국고추저럼 가늘고 작은 것)를 
식초에 절인 것인데, 이름은 모르겠고, 아무튼 내 평생 이렇게 매운 것은 처음.. ^^;;; 
이거 딱 한개만 있으면, 나처럼 매운거에 그닥 강하지 못한 사람은 
케밥 한 개 다 먹을 수 있음... 후아후아... 엄청 맵고 엄청 맛있었다.


노랑고추는 할라페뇨가 아니었을까요... 그래도 서양음식 먹다가 고추장 그리울 땐 아쉬운대로 괜찮은 것같아요. 태양빛을 가득받고 자란 채소, 나도 먹고싶다 냠냠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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