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

보스포러스

딸기21 2004. 9. 23.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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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같은 도시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세상 모든 곳이 나름대로 '특별함'을 갖고 있겠지만, 이스탄불이야말로 특별하다. 도시가 갖고 있는 역사로 보자면, 사실 역사가 수천년씩 된, 이스탄불보다 훨씬 오래된 도시들도 많다. 제국의 수도였던 도시들도 많고, 아름다운 도시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탄불에 대해 '특별하다'는 말을 붙일 수 있는 것은, 바로 보스포러스가 있기 때문이다. 이스탄불을 찾은 여행객이라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게 되는,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곳', 바로 보스포러스다.



지도를 첨부하면 좋겠지만 귀찮아서... 걍 내가 그렸다. 아주아주 무식하게 그린 것으로, 실제 이스탄불 주변의 모습은 저것과 굉장히 다르다는 점을 우선 말씀드리며... (그럼 대체 왜 그렸단 말인가요)
이스탄불은 마르마라해의 저 안쪽, 그러니까 동쪽에 위치해 있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끼고 아시안 사이드와 유러피안 사이드로 나뉘는데, 유럽쪽은 다시 작은 해협을 끼고 둘(1과 2)로 나뉜다. 이스탄불을 1, 2, 3 지역으로 나누고 있는 저 세가닥의 물줄기를 가리켜 황금의 뿔, 즉 '골든 혼'이라고 부른다.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곳. 그곳이 이스탄불이다. 고대세계에서는 에게해와 만나는 오늘날 터키의 서부 해안 쪽은 사실상 그리스 문명권이었고, 그 유명한 트로이가 바로 마르마라의 서쪽, 다르다넬스 해협 부근에 위치해 있다. 
무언가가 '만나는 곳'이라는 것은, 지정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곳이라는 의미이고, 아주 복잡한 역사, 특히나 온갖 제국세력이 명멸해간 곳이라는 뜻이다. 이스탄불이야말로 그런 곳이다. (이제와서 뒤늦게 이스탄불에 대해 설명하고 있음) 고대에는 그리스와 페르시아가, 그 뒤에는 로마가, 기독교 성립 이후에는 동로마제국이, 그 뒤에는 오스만 제국이 스쳐간 곳.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이스탄불로 이어지는 이 도시의 이름들은, 하나같이 멋지다. 권위롭다.

우리 여행의 시작도 이스탄불이었지만, 마지막도 역시 이스탄불이었다. 왜냐? 비행기를 도쿄-이스탄불 왕복으로 끊었기 때문에... 굉장히 단순한 이유같지만, 어쨌든 우리 여행의 마지막은 보스포러스 투어였다. 통통배같은 유람선을 타고, 1에 위치한 시르케지 부두를 출발해 1시간 정도 보스포러스 해협을 따라 둥실둥실~ 흑해쪽으로 향해 올라가는 것이었다. (물론 흑해랑은 전혀 상관없음)

이스탄불은 한때의 권위와 영원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고, 곳곳에서 과거의 권위와 현재의 다채로움이 빛을 발한다. 보스포러스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오스만 제국이 남긴 화려한 유적들을 만나게 된다. 배가 떠나온 시르케지 부두를 바라보면 술탄 아흐메트(블루 모스크)와 톱카프 궁전, 멀리 언덕 위의 술레마니예 모스크의 미나레트(첨탑)들이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있다. 시르케지가 있는 1 지역과 즉 현대적인 신시가지가 있는 2 지역은 갈라타 대교로 연결돼 있다. 2지역의 해안에서 대표적인 유적은 오스만 말기에 세워진 돌마바흐체 궁전이다.



돌마바흐체는 안타깝게도 배 위에서 구경만 하고 지나갔을 뿐, 안에 들어가보지는 못했다. 1인당 40유로나 하는 값비싼 투어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쁜 놈들... 씩씩... 
돌마바흐체가 있는 쪽에는 터키의 명문 축구클럽인 갈라타 사라이의 근거지(??)가 있다. 물론 구경은 못 했지만... 갈라타사라이는 터키의 3대 명문 클럽 중에서도 첫손 꼽히는데, 명문 고등학교의 스포츠 클럽에서 시작됐었고, 주로 '있는 넘들'이 좋아하는 클럽이란다. 이 패키지 여행에서 우리를 안내했던 가이드는 베쉭타스(일한 만시즈가 뛰었던 클럽) 팬이어서인지 설명하는 틈틈이 갈라타사라이 흉을 보더라마는...



다시 보스포러스 얘기로 돌아가면-- 2 지역에는 돌마바흐체가 있고, 유럽에서 가장 비싸다는 호텔(과거 왕궁이었으며 지금도 객실 집기가 왕궁에서 쓰였던 물건들이라고 함)과, 루멜리 히사르 같은 성채가 있다. 위 사진에 보이는 성채가 바로 그것인데, 맞은편 아시안 사이드에는 아나돌루 히사르라는, 규모가 좀 작은 성채가 있다. 오스만 제국 말기에 정신 나간 술탄들이 경쟁적으로 지어댔던 통에 이렇게 뭔가가 많이 생겼다는데, 결국 저러다가 망한 꼴이다.

오늘날은 어떤가. 아시안 사이드에는 바닷가를 따라서 별장촌이 형성돼 있었다. 유럽의 유명한 영화배우라든가 축구선수, 감독 같은 사람들이 이 곳에 별장을 갖고 있다는데, 바닷가에 바로 접해 있어서 집집마다 작은 요트 선착장이 붙어있고, 풀장 한개씩을 갖추고 있다. 대체 저런 별장들은 얼마나 할까?



보스포러스에는 유럽쪽과 아시아쪽을 이어주는 두 개의 다리가 있다. 보스포러스 1 다리, 2 다리로 불리는 두 개의 대교는 현수교 형식으로 돼 있고, 밑으로는 흑해에서 오는 거대한 유조선들과 유람선들이 지나다닌다. 큰 배들이 다닐 수 있도록, 다리를 아주 높이 지어놨다. 다리가 높으면 떨어지는 놈들도 있게 마련. 자살하겠다고 설쳐대는 인간들이 많아서, 지금은 차량 통행만 가능하게 해놨다고.

보스포러스에서 위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흑해가 나온다. 터키 입장에선 뼈아픈 일이겠지만 흑해에서 대서양 쪽으로 나아가는 길목인 보스포러스의 운하는 '국제운하'로 지정돼 있다. 이집트의 나세르 정권이 전쟁을 불사하면서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 한 것을 생각하면 터키의 정권들은 간이 작았다고 봐야 할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수에즈에 걸려 있던 영국과 프랑스의 이해관계에 비해, 보스포러스에 걸린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압도적으로 크다는 데에 원인이 있겠지. 예나 지금이나 항구를 확보하는데에 필사적이었던 러시아야말로 전쟁을 불사하며 터키를 압박했고(옛날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터키가 외국과 맺은 첫번째 근대적 조약이 바로 러시아와 맺은 것이었다), 보스포러스는 지금도 국제운하로 남아있다. 터키의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터키 국적이 아닌 선박들은 터키 법의 적용을 안 받는다는 뜻이다. 십자군이 동방으로 가기 위해 콘스탄티노플을 넘봤듯이, 오스만이 유럽으로 칼날을 세우며 비잔티움을 넘봤듯이, 지금도 이스탄불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임을 새삼 실감케 한다.

베이레르베이

보스포러스 크루즈를 마친 다음에는 아시안 사이드에 있는 술탄의 여름궁전, '베이레르베이'를 구경했다. 톱카프와는 또다른 화려함, 촌스러울 정도의 화려함에 혀를 내둘렀다. 바로 이런 걸 짓다가 오스만이 망했구나... 라는 걸 절로 깨닫게 해주는 화려함의 극치. 중국제 도자기에 영국제 크리스탈 샹들리에, 이탈리아제 거울, 이런 식으로 내부가 도배질되어 있다. 밖은 마르마라해에 닿아 있고, 대리석으로 발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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