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

페르가몬

딸기21 2004. 10. 25.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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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가몬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지명(地名)을 넘어, 듣는 사람이나 말하는 사람에게 고대 세계에 한 발을 디디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성서의 버가마, 고대 세계의 페르가몬, 오늘날의 페르가마는 터키 서부 해안, 에게해 연안에 위치한 곳이다. 페르가몬은 에페수스, 올림포스 등지와 함께 고대 그리스의 주요 도시 중의 하나였고, 그 유명한 아스클레피온이 있던 곳이었다. 순백색 대리석의 트라야누스 신전과 제우스신전, 레드 바실리카, 알렉산드리아(이집트)에 이어 고대세계 두번째 규모를 자랑했던 페르가몬 도서관, 그리고 의술의 요람 아스클레피온이 있었던 곳. '있었던'이라고 과거형으로 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저 유적들 중 제우스신전이 이 곳에 없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대로, 제우스신전은 그 모양 그대로 독일의 '페르가몬 박물관'에 옮겨가 있다. 하지만 이 신전이 없다고 해서, 역사유적지로서 페르가몬의 의미가 퇴색되지는 않는다.

페르가몬의 트라야누스 신전에 올라가는 길에 가장 먼저 만난 것은 고대의 신전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이었다. 에게해 지방의 햇빛은 너무나 눈이 부셨고, 내리쬐는 햇살을 고스란히 받으며 언덕길을 올라야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돌을 쌓아올린 성벽의 일부분처럼 보이지만, 실은 저 돌벽이야말로 이 지역의 역사를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주는 증거물이다. 당초 성벽은 그리스인들이 쌓은 것이었지만 로마인들의 손길이 보태어졌다. 좀 큰 돌들은 그리스인들이 쌓은 것이고, 왼쪽에 반듯하게 쌓은 것은 로마인들의 솜씨다. 중앙부분 윗쪽에는 비잔틴인들이 모자이크처럼 덧대어놓은 것이 보인다.



야트막한 산 중턱에는 원형극장이 있고, 산 정상에는 트라야누스 신전이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로마시대의 건축물이다. 당시(기원전 3-2세기)에는 도시들이 황제의 이름을 딴 신전들을 경쟁적으로 지어올렸는데, 목적은 황제의 재정보조금을 받기 이한 것이었다고 한다. 페르가몬 주민들은 처음에 아우구스투스에게 청원을 해 황제의 이름을 딴 신전을 지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으나 신전이 완성되기도 전에 아우구스투스가 죽어버렸다. 뒤를 이은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재청원, 건축작업은 계속됐다. 그러나 트라야누스 당대에도 신전은 완성되지 못했다. 그 다음은 하드리아누스 황제였다. 이 황제 대에 이르러 신전이 완성됐지만, 전임 트라야누스 시절에 지원을 많이 받았던지라 이 황제의 이름을 새 신전에 붙인 것이란다. 그 대신 하드리아누스에게도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석상을 하나 만들어 앉혔다.



안타깝게도 하드리아누스의 석상은 머리 부분이 유실되고 몸통만 남아 있었다. 실은 이 신전 자체가 아쉽게도 일부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대리석 기둥들과 기둥받침들, 산중턱으로 입구가 열린 지하의 가게터들이 있어 구경거리로는 충분했지만 에페스의 유적들에 비하면 보존 상태는 별로 안 좋았다. 



(트라야누스 신전으로 올라가는 길)

신전을 나와 아스클레피온으로 향했다. 이 곳은 유적 터가 잘 남아있어 볼거리가 많았다. 아스클레피온은 고대 최고의 의술을 자랑했던 의사 갈렌이 후학들을 가르쳤던 곳이다. 의술의 상징인 히포크라테스가 이 곳에서 수학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스클레피온'이라는 이름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치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서 나왔다. 이 신의 상징은 뱀이다. 고통이 극심한 환자가 죽으려고 뱀이 먹던 우유를 마셨는데, 독이 아니라 약효가 있어서 병이 나았다나. 가이드 세즈긴이 일러준 것인데, 내 영어가 짧아서 제대로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이윤기선생 책을 보면 잘 나와있을텐데. 어쨌든 저 일화를 통해 '독사'인 뱀은 치유의 신의 상징으로 승격됐다. 

아스클레피온의 치료 과정은 지금 들어도 놀랍다. 우리는 세즈긴을 따라, 당시 환자들의 치유 경로를 밟아봤다. 환자는 먼저 길다란 입구를 맨발로 걸어들어간다. 반드시 맨발로 돌 바닥을 밟게 되어있었다고 하는데, 마음을 치유함으로써 몸을 치유하는 것이 아스클레피온의 치료 개념이었음을 계속 확인할 수 있었다. 환자(당시의 귀족층이 대부분이었겠지만)가 입구를 걸어 들어가면 샘물이 있는 광장이 나온다. 이 샘물의 물은 물론 치유의 성수(聖水)다. 곧이어 환자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게 된다.

터널을 지나는 동안, 의사는 환자에게 치료과정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해주지 않는다. 의사의 설명을 듣는 대신 환자는 자기 자신의 말을 듣는다. 병이 나을 것이다, 나는 건강해질 것이다 하는 일종의 자기암시를 하게 되는데, 이 암시는 환자에게 마치 '신의 말'처럼 들리는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암시의 과정을 거친 환자는 본격적인 치료를 받기 위해 테라피실(therapy room)에 들어간다.

테라피룸에서는 약물요법과 아로마요법 등 다양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아스클레피온에는 원형극장까지 딸려 있어서, 연극과 음악을 이용한 심리치료도 했었다고. 의학도서관도 딸려있어 명실상부한 의학아카데미로 기능했다는 설명이다.



테라피룸들이 있는 건물은 원래 대리석으로 덮여 있었다지만 후대 사람들이 모두 가져가버려서 지금은 헐벗은 상태다. 그나마 골조를 이루는 화강석들도 구멍이 뚫려있다. 이는 '효험을 보기 위해' 환자들이 돌조각을 떼내어갔기 때문이라고. 
이 건물이 흰 대리석으로 온통 덮여있었다면, 굉장히 화려하고 장엄해 보였을 것이다. 이곳은 에페수스 앞바다에서 조난당한 로마의 카라칼라황제가 잠시 머물게 되면서 이름을 얻었고, 덕택에 로마제국의 아낌없는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대리석의 아주 작은 흔적들만 남아있지만 말이다.

아스클레피온의 치료과정과 함께 눈길을 끌었던 것은 고대인들의 건축기술이었다. 트라야누스 신전의 높은 기둥들은 물론 단일석재는 아니고, 여러개의 석재를 이어 만든 것들이다. 기둥의 단면 이음부분을 구멍을 뚫어 돌조각을 끼워넣는 방식으로 제작돼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었다고. 이 커다란 석재를 이동해 올 때에는 양 옆에 구멍을 뚫어 바퀴축으로 삼고, 양 옆에 나무 바퀴를 달아 밀고 왔다고 한다(세즈긴의 설명). 
아스클레피온의 건물들은 철심으로 화강석들을 연결한 뒤 화강석 벽면에 홈을 뚫어 대리석 마감재를 끼워넣는 방식이었다. 2000년 전의 철골구조가 지금도 남아 있어, 철심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 도시들의 용수공급방법도 놀라웠다. 에페수스 곳곳에는 황제의 이름을 딴 '누구누구의 샘물'이라는 이름의 유적들이 남아 있는데, 사실은 샘물이라기보다는 저수지의 물을 길어올리는 우물이다. 그리스 도시들은 곳곳에 저수지를 만들고 용수를 저장해 사용했다는데, 햇살 뜨겁고 건조한 여름을 보내야 하는 도시들에서 물 문제는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이었을 것이다. 고대인들은 보통 도시보다 높은 곳에 물 저장고를 만들어 수압차를 이용하거나, 펌프를 이용해 주택가까지 용수를 끌어올렸다. 아스클레피온에는 지금도 상하수도관이 남아있다.



이것은 보너스 사진. 바닷가 마을 쿠샤다시에서 바라본 에게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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