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상상 여행

26. 합스부르크가, 동유럽의 '새로운 태양'

딸기21 2013. 7. 26. 22:11

26. 16-17세기 합스부르크가의 부상


어릴 적 읽은 순정만화나 역사책에 많이 나오던 합스부르크.... 꽤나 오랜 기간 유럽을 지배했던 왕실이죠.


합스부르크가가 형성된 것은 11세기 무렵. 합스부르크가는 14-16세기 중·동부 유럽의 패권을 놓고 경쟁한 여러 왕가들 중에서는 시기적으로는 마지막으로 부상한 세력입니다. 원래 합스부르크가는 신성로마제국 시절 오늘날의 스위스 동부 일대에 봉토를 갖고 있던 독일계 귀족 가문 중 하나였는데, 영주들 중에서도 무명인 축에 속했다고 합니다. 


이 가문이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273년 루돌프 백작 Rudolf I 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1273-91년 재위)가 되면서부터습니다. 당시 독일의 선거후들은 루돌프가 특출난 인물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그를 황실의 후계자로 밀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루돌프의 재위 기간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지 중심부에 오스트리아 대공국이 세워졌습니다. (오늘날의 독일과 오스트리아 지역 대부분은 중-동부 유럽에 걸쳐져 있어서 역사를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에 좀 뜬금없이 갑자기 등장하는 감이 있네요;;)


합스부르크 가의 문장 /위키피디아


이 집안을 우습게 본 것은 큰 오산! 가문은 그 후로 계속 소유지를 늘리더니, 정략결혼을 잘 활용한 능란한 정치술로 독일의 왕위를 차지습니다. 16세기가 되자 합스부르크가는 유럽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강력하고 가장 부유한 가문이 됐습니다. 합스부르크가의 프리드리히3세는 1440년 독일의 왕이 되었으며, 1452년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 등극해 1493년까지 재위했습니다. 그는 아들인 막시밀리안(1493-1519년 재위)을 부르고뉴 공국의 공주와 결혼시켰습니다. 공주는 프랑스 왕실 소유였던 땅과 막대한 재산을 지참금으로 가져왔습니다. 


정략결혼으로 한 재산 장만한 막시밀리안은 아버지를 그대로 본떠, 이번엔 자신의 아들 필립(뒤에 '공정왕'이라는 별명을 얻지요)을 스페인 페르디난드 왕과 이사벨라 여왕(1474-1504년 재위)의 딸이자 상속녀인 호아나와 혼인시켰습니다. 이사벨라와 페르디난드... '레콩퀴스타(재정복)'로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콜롬부스의 신대륙 항해를 후원한 바로 그 인물들이죠. 이사벨라 여왕은 아메리카 식민지로부터 엄청난 부를 거둬들이고 있었습니다. 필립과 호아나는 그 덕에 엄청난 부를 누렸고, 부부의 두 아들 카를과 페르디난트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적 유산과 재력을 물려받았습니다. 


신성로마제국과 스페인의 하늘 아래에, 합스부르크가의 뜻을 거스를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유럽의 어떤 왕가도 이 가문처럼 모든 권력을 완전히 손에 넣지는 못했습니다.



이 왕실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이 왕실이 보유했던 타이틀들입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Holy Roman Emperor)

로마 국왕(King of the Romans -신성로마제국 황제 타이틀 얻어내기 전에 독일 국왕 자격으로 쓰던 호칭입니다)

독일 국왕(King of Germany)

스페인 국왕(King of Spain)

아라곤 국왕(King of Aragon -나중에 스페인으로 합쳐졌지요)

시칠리아 국왕(King of Sicily)

나폴리 국왕(King of Naples)

카스틸랴 국왕(King of Castile -역시 나중에 스페인으로)

헝가리 국왕(King of Hungary)

보헤미아 국왕(King of Bohemia -오늘날의 체코가 되겠고요)

크로아티아 국왕(King of Croatia)

포르투갈 국왕(King of Portugal)

달마티아 국왕(King of Dalmatia -101마리 개들 때문에 더 유명한 달마티아... 오늘날의 크로아티아 지역입니다)

갈리치아·로도메리아 국왕(King of Galicia and Lodomeria -오늘날의 헝가리 지역)

잉글랜드 국왕(King of England)

트란실바니아 대공(Grand Prince of Transylvania -오늘날의 루마니아 지역)

오스트리아 대공(Archduke of Austria)

부르고뉴 공(Duke of Burgundy -오늘날의 프랑스)

파르마 공(Duke of Parma -오늘날의 이탈리아)

합스부르크 백작(Count of Habsburg)


대단하죠? 자료는 위키피디아에서 찾았습니다.



합스부르크가의 가계도



하지만 땅이 넓으면 할 일도 많고 고민도 많은 법. 필립과 호아나가 남긴 두 아들 중 형인 카를5세(1519-56년 재위)는 멀리 떨어진 영토까지 통치력이 효과적으로 미치게 하기 위해 수년 동안 노력을 기울였지만 실패했습니다. 또 신교도, 영국, 프랑스, 오스만제국과 끊임없이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카를5세의 초상화(1547년) /위키피디아


결국 황제는 모든 자산을 한 가문의 수장이 관리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는 독일 황제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고 스페인 왕좌도 내놓은 뒤 세습 재산을 분할했습니다. 그리고는 동생 페르디난트1세(1556-64년 재위)에게 독일 황제 자리를, 아들 필립2세 Philip II (1556-98년 재위)에게는 스페인 왕좌를 내주었습니다. 동생에게 간 동쪽의 영토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핵심으로서 황제라는 타이틀을 유지하면서 동유럽에서 합스부르크 제국의 영예를 이어갔습니다. 이를 계기로 합스부르크가는 '스페인 합스부르크'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로 나뉘게 됩니다.


페르디난트1세는 황제로 선출되자마자 합스부르크의 영토를 오스트리아 땅 너머로 확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아내 안나는 보헤미아와 헝가리 왕인 야기에워 왕조 루이2세의 누이였습니다. 


루이2세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술레이만 대제에 맞서다 1526년 모하치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루이2세를 계승할 남성 친족은 매제인 페르디난트1세 뿐이었습니다. 그 덕에 페르디난트1세는 보헤미아-헝가리의 왕위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헤미아(오늘날의 체코) 귀족들, 한 포스 한다고 이미 설명했었지요. 보헤미아 귀족들은 굴러들어온 왕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보헤미아 귀족들과 합스부르크가 사이의 갈등은 계속 깊어졌으며, 1618년 결국 보헤미아에서 30년 전쟁이 발발합다. 


보헤미아인들은 1620년 빌라 호라(Bílá Hora. ‘흰 산맥’) 전투에서 대패했고 보헤미아는 1627년 독립국 지위를 잃었습니다. 이후 슬라브 문화권이던 보헤미아에서는 특히 귀족 사회와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독일화가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보헤미아는 명목상 자치를 인정받았지만 합스부르크 왕가의 직속 세습재산으로 병합습니다.


빌라 호라 전투를 그린 Pieter Snayers의 1620년 작품. /위키피디아



헝가리에서도 페르디난트1세의 왕위 계승은 저항에 직면습니다. 트란실바니아의 주류집단인 마자르 귀족들이 오스만 투르크의 지원 하에 야노스 자폴랴를 왕으로 밀었던 것이죠. 투르크 제국에 이어 이번엔 트란실바니아와 전쟁에 나선 합스부르크는 헝가리를 남북으로 잇는 가느다란 회랑지대를 확보했습니다. 로열 헝가리(합스부르크령 헝가리)라 불리는 지역입니다. 


합스부르크가는 중부 헝가리, 트란실바니아를 놓고 투르크와 산발적으로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러는 동안 트란실바니아의 마자르 귀족들은 오스만의 속령으로 있으면서 자치권을 이용해 국가체제를 정비했으며, 강력한 군대를 키워 16-17세기 종교전쟁 때 합스부르크 왕가에 맞섰습니다. 특히 16세기 전반 바토리 가문 밑에서 트란실바니아는 유럽의 주요 세력으로 부상했습니다.


17세기 오스만 제국의 영향력이 후퇴하자 합스부르크가는 헝가리 중부와 트란실바니아에 대한 통치권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레오폴트1세 Leopold I (1658-1705년 재위) 황제는 과거 합스부르크와 투르크 사이에 벌어진 분쟁을 일단 잠시 놓아두고 유럽 쪽 문제를 푸는 데에 먼저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유럽 쪽 현안들이 마무리되자 다시 투르크와의 관계로 관심을 돌렸습니다. 



Peles castle in Transylvania. 동화 속의 궁전 같네요.



1683년 오스만 군대의 비엔나 봉쇄를 막아낸 합스부르크 군대는 전력을 쏟아 부어 오스만 세력을 헝가리에서 몰아냈습니다. 트란실바니아는 레오폴트의 수중에 떨어졌습니다. 1687년 레오폴트는 투르크의 위협에서 구해준 것을 고맙게 여기는 로열 헝가리의 귀족들을 을러서 합스부르크가가 헝가리의 세습 지배자임을 선언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트란실바니아는 헝가리에 병합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1691년 레오폴트는 별도의 칙령을 통해 트란실바니아를 일종의 독립된 공국처럼 만든 뒤 합스부르크가의 지배자에게 직접 통치를 받게 했습니다. 


1699년의 스렘스키 카를로프치 조약으로 합스부르크가의 헝가리 재정복은 완료됐고, 투르크는 다뉴브 남쪽으로 거의 완전히 밀려 내려갔습니다.


★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 Habsburg 라는 이름은 슈바벤에 세워진 하비히츠부르크 Habichtsburg 성(‘매의 성’)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이 가문은 오늘날의 독일 남부지방에서 출발해 독일 황제, 신성로마제국 황제, 헝가리·트란실바니아 왕, 스페인 왕까지 모두 배출하는 유럽 최강·최대의 왕실이 됐습니다. 


이것이 합스부르크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매의 성'



하지만 1700년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가 끊겼고 1740년에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마저 남성 후계자가 없는 상황을 맞았습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마지막 계승자인 마리아 테레지아 Maria Theresia 는 로트링겐 공 프란츠 슈테판 Franz Stefan von Lothringen 과 결혼해 혈통이 끊어지는 것을 막았습니다. 왕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20세기 초까지 이어져오다 1차 대전 뒤인 1918년 해체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