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타야에서는 이 사원, 저 사원을 돌아다니며 유적 구경을 했습니다. 그 중에는 폐허가 되어 간신히 형태만 남은 것도 있고, 지금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화려한 부처님 집도 있었습니다.
먼저, 화려한 쪽부터. 물론 아유타야에서 화려하다 해봤자 방콕의 그랜드 팰리스를 비롯한 금칠 쳐바른(부처님 죄송;;) 사원들처럼 번쩍거리지야 않지요. 하지만 왓 야이 짜이몽콘(Wat Yai Chaimongkon)은 아유타야의 세계문화유산 사원들 중에서 눈에 띄게 화려하고 큰 축에 속한답니다.
부처님들에게 노란 옷을 입혀놨어요. 동남아 소승불교 스님들이 흔히들 입고 다니는 옷 색깔이죠. 사프란 색이라 하나요. (여담이지만, 이태원 할랄 가게 아저씨한테 들은 바로는 사프란이 세상에서 제일 비싼 향신료라고 해요)
저기에 가기 전에 들렀던 곳은, 왓 마하땃(Wat Mahathat)입니다.
아유타야 사진 중에 가장 많이 나오는 곳, 아유타야의 몰락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은 바로 이 곳의 이 부처님이 아닐까 합니다.
(이날 요니가 카메라를 들고 다녔는데, 이 구도에 꽂혔나봅니다.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비스듬하게 찍은 게 많네요 ^^)
문제의 부처님은 이 분... 머리만 남아 있습니다.
분명히 이 앞에서 요니 사진을 찍었는데... 찾아보니 없네요... 에효... 그래서 이 사진은 위키피디아에서 퍼왔습니다.
왜 부처님 머리가 저 지경;;이 됐냐고요? 앙코르 와트의 왓쁘롬 같은 사원들은 훗날 나무 뿌리들이 건물을 뒤덮는 바람에 무너질 지경이 됐다지만, 아유타야의 이 부처님은 '인간의 손' 때문에 저렇게 된 거랍니다. 힌두교 세력이 잠시 이 일대를 장악하면서 불교 탄압에 들어갔고, 그로 인해 이 일대 사원에서 부처님 머리가 일제히 잘려나갔습니다. 왓 마하땃의 불상들은 그래서 거의 머리가 없습니다. 큰 부처님 하나를 제외하면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걸 찾아보기 힘들더군요.
그렇게 해서 잘려나간 머리 중의 하나가 완전히 파괴되지 않은 채 풀숲에 굴러다니다가 나무가 자라나는 통에 저렇게 된 것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답니다. 탄압의 상징이던 이 부처님 머리는 지금은 관광상품이 되어 흘러간 역사를 증언하고 있는 셈이죠...
2004년 이집트의 룩소르와 카르나크를 여행했습니다. 까마득한 옛날, 기원전 14세기에 이집트를 지배했던 18왕조의 10대 왕 아문호테프4세는 아문 신을 중심으로 한 다신교를 숭배하던 이집트에서 홀로 아톤 신을 주창하며 유일신앙을 설파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이름도 이크나톤(이큰+아톤)으로 바꾸고, 아내인 네페르티티(그 유명한 아름다운 두상의 주인공)와 함께 아문 신앙을 억압했습니다. 아문을 비롯한 다신교의 우상들을 지워내려 했던 겁니다.
하지만 재위기간이 극도로 짧았던 두어 명의 파라오, 그리고 뒤를 이은 힘없는 소년 파라오 투탕카문(이크나톤의 아들이라는 얘기도 있고 사위라는 얘기도 있고...)의 시대를 보내며 아톤신은 다시 내팽개쳐지고 아문 신앙이 부활합니다. 그래서 투탕카문은 이름이 한때 투탕카톤(투트+앙크+아톤)이었다가 투탕카문으로 바뀌었다능... 이어진 19왕조, 그 유명한 람세스1세, 세티1세, 람세스2세, 세티2세 등등의 치세가 되어 아문이 이집트의 중심 신앙으로 굳어졌고, 이번엔 역으로 아톤 지우기 작업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룩소르와 카르나크 유적 곳곳에는 끌 같은 도구로 벽화를 긁어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19왕조 때 아톤 신과 관련된 내용을 지우느라 생긴 자국들입니다. 수천년전 고대에 일어난 종교 전쟁과 도상(아이콘) 지우기의 흔적을 보니 기분이 좀 묘하더군요.
갑자기 이집트 얘기로 흘러갔는데, 아유타야의 마하땃을 보면서 문득 그 생각이 떠올랐더랍니다... 종교와 도상은 떨어질 수 없는 것인데, 이곳엔 참 희한한 형태의 부처님이 남아 있게 되었구나... 하면서 말이죠. :)
이제는 폐허가 된 왓 짜이와따나람(Wat Chaiwatthanaram)의 모습입니다. 저는 폐허 혹은 폐허같은 곳을 좋아합니다. 마음이 침잠하는 느낌이랄까, 뭔가 많이 무상하달까. 아마 다들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사원에서 찍은 사진 중 하나입니다. 부처님들 형편이 말이 아니죠. 오른쪽 뒤편의 불상들은 의도적으로 머리 부분을 잘라낸 것이 확실... 부처님들이 큰 수난을 겪었네요...
왓 쁘라 시 산뻿(Wat Phra Si Sanphet)이라는 큰 사원 터인데, 여기서도 거대한 탑들과 함께 잘려나간 불상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한때는 붓다를 기리는 권력자들과 인간들의 세상이었겠지만... 지금은 이렇게 개들 세상이 되어 있더군요.
아유타야를 관람한 전반적인 느낌은... 캄보디아 시엠립에서 앙코르왓을 비롯한 거대 유적들을 본 사람이라면, 딱히 대단히 감동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캄보디아에서는 시엠립 구경이라는 '압도적인 한 건'이 관광의 대부분인 반면, 태국에서는 곳곳에서 분위기와 여행의 디테일들 자체를 한껏 즐길 수 있다는 것...
이렇게 사원 구경을 하고 난 뒤, 아유타야를 떠나 방파인(Bang Pain)으로 갔습니다. 태국 왕실의 별궁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중국식, 서양식 건축을 섞어놓은 정원... 그저 깔끔하고 잘 꾸며진 정원이어서 별 감흥은 없었습니만, 요니는 좋아했습니다.
왜냐? 사실 아무리 요니가 유적 구경을 꺼려하지 않는 어린이라 하더라도, 하루종일 더위 속에서 터덜터덜 걸으며 구경하기가 휩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방파인에서는 영국인 아주머니와 짝을 이뤄서 골프장 수레 같은 작은 자동차를 몰면서(요니는 아니고 아주머니가 운전했지만) 구경을 했습니다. 그게 제일 재미있었대요.
그리고 우리는 방콕으로 돌아와 다시 수영장으로... 다이어리를 보니, '저녁은 어제 거기'라고 적혀 있습니다. 메뉴는 치킨 1조각과 닭고기 볶음밥. 람부뜨리 골목의 노천식당이 아주 싸고 맛있고 좋았거든요! 거기서 아침, 점심, 저녁 여러 끼니를 해결했습니다. 이렇게 태국 여행의 둘째 날은 지나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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