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여행을 떠나다

지난 가을, 카루이자와

딸기21 2012. 3. 19.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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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일본과 서울을 오가며 소소하게 여행도 다니고 했건만, 집안 꼴이 말이 아니었던지라... 예전 집에선 사진을 다 뽑아 액자에 걸어두고 앨범에 정리하는 일이 재미 중 하나였는데, 지난해에 어수선하게 지내느라 통 사진도 정리하지 못했다. 사진이라 해봤자, 아이폰 생긴 뒤로는 내 손에 디카를 들고다니는 일도 없고 해서 별로 찍지도 않았고. 그나마 아지님이 얻어온 삼성 디카에 몇장 담겨 있는 것을, 어제야 랩톱에 연결해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건진, 카루이자와(軽井沢) 풍경 몇 장. 제법 추웠다. 지난해 10월쯤 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다이어리조차 어디에 틀어박혀있는지 모르는 형편이라 확인 불가능 -_-;;) 카루이자와가 유난히 추웠다. 나가노(長野) 현 키타사쿠(北佐久) 군에 있으니 도쿄보다 북쪽이기도 하거니와, 워낙 고지대다. 자료를 찾아보니 카루이자와에서 가장 낮은 곳이라 해야 해발 798m다. 가장 높은 곳은? 1971년 일본 적군파가 한 산장의 관리인을 붙잡고 인질극을 벌였던 이른바 '아사마 산장' 사건의 배경인 아사마 산(浅間山)이다.

(언젠가, 아주 오래 전에 딸기마을에서 얘기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대학 시절 다미야 다카마로의 <우리 사상의 혁명>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은 적 있다. 요도호 납치사건을 일으킨 일본 적군파의 수기 같은 것이었는데, 달리 감동을 받았다거나 모종의 감화가 있었다는 얘기는 아니고... '일주일 동안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고민했다'라는 그 한 구절 때문이었다. 훗날의 이야기이지만, 다미야 다카마로는 북한에 머물다가 1995년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쨌든 나는 그 책 이후로 일본의 적군파라는 집단에 대해 모종의 감상을 느끼곤 한다. 나가노 혹은 아사마 산 근처에 갈 때마다 아지님도 아사마 산장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아마도 일본을 찾는 한국인 부부가 나가노에 가면서 적군파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으로 사료됨...)



저 위에 보이는 허연 민둥산이 아사마 산이다. 1982년부터 가장 최근으로는 2009년까지, 다섯 차례나 분출했을 정도로(대폭발은 아니었지만) 화산활동이 계속되고 있는 산이다. 그래서 주변에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다. 저 사진은 내가 찍은 것은 아니고... 이너넷에서 퍼온 것임.


생긴 모양이 희한해서 아사마 산을 보면 재미가 있는데, 해발고도가 2568m다. 사실 일본에 와서 산의 높이를 듣거나 보아도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 멍청한 소리 같지만 '높은 산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야, 가보지도 못한 백두산이 2744m라 하고 역시 올라가보지 않은 한라산이 1950m라고 하니까 그냥 그런가보다 할뿐. 일본에선 나가노나 군마 현으로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도 2000m 훌쩍 뛰어넘는 산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으니. (하지만 아직까지 일본의 대표적인 산지라고 하는 알프스 일대엔 가보지도 못했군여.)


굳이 왜 이런 지도까지 붙여야 하는지는 알수 없지만, 일단 직업병이라 해두고...
왼쪽이 일본에서 나가노 현의 위치, 오른쪽은 카루이자와.


 
카루이자와는 일본의 대표적인 별장지대 중 한 곳이라고 한다. 어릴 적 보았던 소설 중에는 한국 청소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시대상황(1970년대)과 전혀 맞지 않게 '파로호의 친구집 별장에 가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들이 있었다. 한국에 있지도 않은 별장 문화, 그것도 다 일본에서 끌어다 왔겠지. 암튼 일본에는 교외 지역, 특히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카루이자와 같은 곳에 별장들이 늘어서 있다. 개인 별장도 있고, 기업들 별장도 있다. 



이런 낙엽 깔린 길들이 별장지 사이로 가로세로 쭉 이어져 있다.




낙엽 잔뜩, 차가운 가을 공기가 꽉 차 있는, 하지만 가을의 공기답게 무겁지 않은. 어디를 봐도 좀 어둑어둑하고, 가을로 꽉 차 있는 것 같고, 낙엽과 길과 나무들 때문에 기분이 좋고... 그런데 자전거로 달리는 것은 좋으나... 솔직히 넘 추웠다.




여기도 별장




저기도 별장...

사진을 찾아보니 어째 좀 허접해보이는 것들 뿐인데, 실제로는 으리으리하거나 이쁜 별장도 많았다.

낙엽길 따라 자전거 빌려 타고 돌아다니면서 보니 땅값은 무지 쌌음.
하지만 내가 비록 그 정도 돈은 있으나 결코 이 지역에 별장을 사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_- 일본 어디에서나 느껴지는 이 쇠락의 분위기를 워찌 한단 말이냐. 카루이자와라는 곳은 일본에서도 한적한 편인지라, 사실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도 아니고... 나가노 동계올림픽 때 겨우 컬링 경기 한 토막 열렸을 뿐인 곳이라고 한다(전혀 상관없는 얘기이지만... 각종 스포츠경기 중계를 빠처럼 섭렵해온 딸기는 나가노 동계올림픽에 대한 기억도 몹시 생생하군요. 여자 피겨에서 미셸 콴이 떨어지고 타라 리핀스키가 어이없이 금메달을 거머쥐었던... ).

어찌 되었든 지난해 가봤던 일본의 모든 곳에서 그랬듯, 카루이자와에서도 분위기는 썰렁... 
  




우리가 묵었던 호텔의 뒤뜰. 어째 이쁘게 꾸며놨다 했더니, 웨딩 상품으로 특화된 호텔이었다.
호텔이 이쁘고, 방은 더욱 크고 알흠다웠다. 하지만 방값이... 방값이... ㅠ.ㅠ

근처에 자전거 빌리는 곳이 있어서 특히 좋았다. 하지만 일본에 오는 한국인 관광객이, 우리처럼 여기에 장기간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야, 굳이 카루이자와에 놀러가서 1만원도 넘는 돈을 내가며 자전거를 빌려 타고 다닐 이유는 없겠지요...



카루이자와의 한 카페에서 추워죽겠는데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까불고 있는 꼼양.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다가 넘 추워서 이 카페에 무려 2번이나 갔다 -_-; 




그러거나 말거나... 맑고 이뻤던 하늘.  


근처에 제법 큰 못(이라고밖에는... 호수라고 하기엔 작고 연못이라기엔 크다)이 있어서 그 둘레로 산책도 했는데 사진은 없구려. 

카루이자와에서 차 타고 좀더 위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시라이토노 타키(白糸の滝)라고 해서, 제법 특이하고 아기자기한 폭포가 있다. 역시나 잘 나온 사진은 없어서 자료사진으로 대체함.


 (
http://www.slow-style.com )

높이 3m의 절벽에 이끼가 잔뜩 끼어있는데, 그 이끼들 사이로 물이 새어나온다. 멀리 아사마 산을 비롯한 산악지대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단층처럼 산이 잘라져나간 이 절벽에 이르러 뿜어져 나오는 것이어서 흔히 생각하는 폭포의 이미지하고는 다르다. 화산 쪽에서 내려온 물이라 그리 차지 않았다. 



왜 꼼양의 사진만 있냐고요? 엄마아빠 사진 찍어달라고 하면 꼼양이 꼭 이상하게 나오게 찍어줍니다 -_-

아사마 산 부근까지 간 김에, 차를 타고 근처까지 올라가봤다. 목욕탕이 있더라만 목욕은 하지 않고, 라면 한 그릇씩 먹고 내려왔다. 목욕탕 옆길로 산에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는데 '화산 폭발시 책임지지 않습니다' 하는 경고문과 함께, 혹시나 모를 재난에 대비해 등산객의 신원을 적어두고 올라가게 해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걸로 우리의 1박2일 '나가노 카루이자와 여행'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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