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여행을 떠나다

[2012 태국] 그랜드 팰리스 '이보다 화려할 수는 없다'

딸기21 2012. 5. 17. 13:11
728x90

평소 싼티, B급, 삼류 취향이기는 했지만 저도 제가 이렇게 화려한 걸 좋아하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방콕 도착한 첫날 싸롱을 안 가져가 1차 시도에 실패하고 사흘째 날 마침내 들어갈 수 있었던 그랜드 팰리스!!! 그런데 싸롱을 챙겨넣은 요니 가방을 또 다시 안 들고 제 가방만 들고간 탓에, 비싼 뚝뚝 타고 궁전 앞까지 갔다가 2차 시도에마저 실패하고 다시 호텔로 터덜터덜 걸어가... 그러면서 더위에 지쳐;; 점심 때에야 다시 나와서 무려 3차 시도 끝에 들어갔습니다. 젠장.. 


입장료가 1인당 400바트, 요즘 환율로 계산하면 1만6000원 정도. 그런데 초등학생도 성인 요금 받더이다... 태국에서는 초등학생이냐 중학생이냐가 아니라 키가 120cm 넘느냐가 기준이더군요. 롤러코스터도 아니고...


공식 명칭은 쁘라 보롬 마하 랏차 왕(Phra Borom Maha Ratcha Wang)이고, 현대식 궁전과 박물관, 불교 사원들이 어우러진 컴플렉스입니다. 


먼저 맛뵈기로... 위키에서 퍼온 사진입니다. 저는 이렇게 멀리서 잘 찍은 게 없어서... ^^;;


짜오쁘라야 강에서 바라본 그랜드 팰리스의 전경 /위키피디아


그랜드 팰리스는 18세기 라마1세 때 지어졌고 1925년까지 왕실 일가가 거주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위키를 찾아보니, 1860년대에 위 사진과 같은 위치에서 바라다본 모습이 있네요. 비교해보세요.



들어가는 입구는 그저 그렇게 웅장한 서양식 건물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하지만 안쪽 사원으로 들어가면 화려한 정도를 넘어서서... 이 지경으로까지 만들 필요가 과연 있었을까 싶은 사원들이 나옵니다. 그만큼 풍요로웠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굳이 따지자면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뭐 그렇게까지 크게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요. 중국의 만리장성은 그렇게까지 길게 쌓을 필요가 있었을까요. 마추픽추는 그렇게 힘들여 쌓을 필요가... 뭐 그렇단 얘기입니다. 



이렇게 화려함으로 가득하다면 아름다울까요?


아름다웠습니다... 정말 아름답더군요. 우리는 보통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소박함이네 어쩌네 하는데, 제 생각엔 소박하고 정갈하고 단아하고 뭐 그런 것도 아름답지만, 실은 우리가 그만큼 자원이 없고 공예기술이 세계 최고는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소박하고 단아하다, 화려한 중국풍이나 기타등등 남의 것들은 별로다... 이런 식으로 어거지 주장을 펼치는 책이나 사람들을 보아와서 그런지... 


그냥 우리 것은 우리 것대로 아름답고,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에겐 또 저들의 아름다움이 있고... 우리가 공예기술이 대단히 발달했다고 주장하거나 우리 청자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주장하면 아름다움의 등급을 매겨야 하는데,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도자기의 아름다움으로 말하면 이미 고려보다 한참 이전에 나온 당삼채도 아름답고,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몇년 전 보았던 테라코타와 페르시아 도자기도 정말 무지무지 아름다웠습니다. 리움에서 본 조선 백자, 달항아리도 입이 딱 벌어질만큼 아름다웠고요.


그래서 저의 주장은... 방콕의 이 화려한 그랜드 팰리스를 보면서 눈이 휘둥그레졌고, 화려함 1만%를 바라보며 아름답다 못해 어질어질해질 지경이었다는 것, 특히나 금칠보다도 모자이크 타일(희한하게 꽃접시를 모양 내 깨뜨려 꽃모양으로 다시 붙인 듯한 것들도 많았습니다)을 보면서 '저거 만드느라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얼마나 고생했을까' 싶더라는 것... 



안타깝게도 날씨는 흐렸고, 요니가 들고다니던 똑딱이 카메라는 중간에 배터리가 나갔고, 제 아이폰은 렌즈에 수증기가 끼어서 사진을 찍다가 말아야만 했습니다... ㅠ.ㅠ 그래서 사진들이 요모양 요꼴들입니다... 



그런데 뭐랄까, 아유타야가 아닌 방콕의 사원들에서 느껴지는 모종의... 검은 아우라랄까... 그런 게 없지는 않았습니다. 참 설명하기 힘든 것입니다만, 캄보디아 시엠립의 유적들과 비교해보면 캄보디아 쪽은 무엇보다 방콕의 것들에 비해 오래됐지요. 방콕에도 오래된 불교유적들이 없는 것이 아니며, 사원들 중엔 꽤나 오래된, 수백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방콕의 볼거리들은 모두 '관광상품' 느낌을 강하게 풍깁니다. 


앙코르 와트가 세계적인 관광지라고는 하지만 그것들은 관광지로 꾸며진 느낌을 전혀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어쩜 이 상태로 이렇게 내버려둘 수가 있을까 관광객들이 스스로 걱정을 하게 만들지요(요즘 캄보디아 정부도 앙코르 지역을 보존하는 데에 관심을 쏟고는 있습니다만). 


반면 방콕은 관광객들에겐 천국같은 곳입니다. 저런 화려한 볼거리들이 곳곳에 넘쳐나고, 사람들은 친절하고, 음식은 맛있고, 치안도 대략 안전하고, 바가지도 대략 상식적인 수준이고, 이집트인들처럼 사기꾼들도 아니고, 그 어떤 것도 위압적으로 느껴지거나 이방인을 위축시키지 않습니다. 투어 프로그램이니 호텔이니 교통수단이니, 관광인프라는 세상 어느 곳보다도 잘 구축돼 있는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참 좋은 곳이지요. 유명한 볼거리들은 딱 '관광용'으로 가다듬고 꾸며놓은 느낌이랄까... 물가가 아주 싼 편도 아니고, 그러면서도 관광객의 지갑을 여는 유형무형의 기술이 엄청 발달해 있고, 유적들조차 유적이라기보다는 관광객들을 끌어당기게끔 매만져진 구성물 같은 느낌... 


그랜드 팰리스의 '지나친 화려함' 혹은 장식 일변도의 외양은 천박하지도 촌스럽지도 않으면서 적당히 살짝 무척 상당히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모여있는 모습은 '제국의 위용'을 드러내기 위한 전근대 왕조의 건축 같지도 않았고, 신의 위대함을 빌어 인간의 오만함을 뽐내는 여느 거대한 종교의 제전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참 애매~했습니다. 왕궁과 사원과 박물관의 중간 쯤, 정확히 말하면 '관광지'. 평가절하할 수는 없지만 참 옹기종기 잘도 모아놓은 건물들. 그래, 관광상품은 이 정도는 되어야지요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은 마음 절반, 샴 왕국 천년의 문화가 정말 이거 맞아, 싶은 의구심 절반. 방콕의 아름다운 사원들, 사실은 그렇게 많이 오래된 것들은 아니라는 점도 이런 의구심을 부추기는 요인입니다. 


뭐, 제 느낌은 그랬다는 겁니다.... 관광객에겐 천국 같은 방콕, 언제라도 다시 가고픈 그 방콕이 주는 '불편함'의 요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