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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슬라브계와 투르크계의 침공

딸기21 2012. 8. 29.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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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6-8세기 슬라브계와 투르크계의 침공


두달만에... 다시 동유럽 역사로 돌아와서... ;;


오늘날 동유럽의 틀을 만든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는 서방 정책이 헛수고로 끝날 것임을 알지 못한 채 565년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룩한 대제국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징후들은 이미 황제가 숨지기 전부터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아바르족과 슬라브족 부대들이 동로마 제국의 발칸 영토로 침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후 150년에 걸쳐 물밀 듯 밀려올 이민족 이주의 전초전이었습니다.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던 투르크계 아바르족은 550년 무렵 유럽에 들어오기 시작해, 프랑크족과 충돌할 때까지 서쪽으로 계속 이동했습니다. 이들은 다뉴브 분지의 저지대에 자리를 잡고 프랑크족의 땅과 동로마(비잔틴) 제국의 발칸 영토를 공략하기 위한 진지를 구축했습니다. 


550년 무렵 시작된 아바르족의 동로마 공격은 잔혹했습니다. 그들의 무자비한 공격을 피한 곳은 거의 없었습니다. 수많은 아바르족 분파들이 다뉴브 강 이남으로 쳐들어와 눌러앉자 비잔틴 제국은 군사적·행정적 혼돈에 빠졌습니다. 제국에서 두 번째로 큰 상업항이었던 테살로니키는 수시로 봉쇄됐고, 콘스탄티노플 주변의 평야도 주기적으로 침략자들에게 짓밟혔다고 합니다. 



발칸 서부에서는 사실상 제국의 통제력이 마비됐습니다. 헤라클리우스 황제(Flavius Heraclius Augustus·610-641년 재위) 시절인 629년 아바르족은 페르시아인들과 연합해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했습니다. 하지만 이 공격에서 아바르족은 대패해,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러자 아바르 군대 밑에 있었던 비 아바르 부족들이 잇달아 반란을 일으켜 뛰쳐나갔습니다.


678년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해온 아랍인들마저 패퇴하자 아바르족 잔존 세력은 동로마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속국이 되기를 자청했습니다. 서로마 제국의 황제 샤를마뉴 대제는 795-796년 군대를 일으켜 다뉴브 분지에 있었던 아바르족의 나라를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아바르족이 발칸에 들어설 때부터 콘스탄티노플을 목전에 두고 무너질 때까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가장 충실한 원군이 되어준 것은 여러 슬라브계 부족들이었습니다. 


슬라브계는 유라시아 스텝의 끝자락에 있는 프리페트 강 유역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민족들이 밀려들어와 인구 압력이 커지자 슬라브계는 여러 부족으로 분화돼 서쪽, 남쪽, 동쪽으로 퍼져갔습니다. 그 중 남쪽으로 이주해 간 슬라브계는 강제에 의해서든 자의에 의해서든, 기병 중심이던 아바르족 부대 밑에 복속돼 보병부대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아바르족은 발칸 반도 북부에서 다뉴브 분지에 이르는 지역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슬라브 부족들은 아바르족과 합세해 발칸 반도의 비잔틴 영토를 공격했습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패배한 아바르족이 비잔틴 제국의 변경지대로 흩어지자, 새로운 삶의 터전이 필요해진 슬라브계도 발칸 곳곳에 자리를 잡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발칸 동부와 중부의 인구지정학에도 큰 변화가 왔습니다. 이민족에 밀린 원주민들은 해안가로 옮겨가 비잔틴 제국의 우산 아래로 들어가거나 몇몇 도시로 몰렸습니다. 농촌지역으로 내몰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결국 사방을 에워싼 슬라브계에 동화돼 민족정체성을 잃고 말았습니다.


헤라클리우스 황제는 제국의 보살핌을 찾아 내려온 난민들을 보호하고 발칸 내륙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고자 애썼으나, 그의 제국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이미 큰 타격을 입은 뒤였습니다. 황제는 옛 그리스 영토에 해당되는 지역들을 간신히 수복한 뒤 슬라브계인 크로아티아, 세르비아계를 끌어들여 북서부 변방의 방어를 맡겼습니다. 그 대신 황제는 그들의 정착을 허용해주었습니다. 이들 부족들은 제국 통치권의 공백을 틈타 발칸 반도 서부를 차지했습니다. 이후 비잔틴 제국은 발칸 서부, 중부, 북부에 대한 직접적인 통치권을 한번도 되찾지 못했습니다.


다뉴브 분지의 서쪽과 북쪽으로 이동해간 슬라브계 부족들은 대부분 아바르족의 지배 하로 들어가, 게르만족이 서쪽으로 이주하면서 비워두고 간 땅에 터를 잡았습니다. 아바르족이 힘을 잃자 체코계, 모라비아계, 슬로바키아계 등 여러 슬라브 부족들은 다뉴브 분지의 북서쪽에 정착했습니다. 


7세기 중반이 되자 이들은 프랑크계 상인으로 추정되는 사모(Samo)와 느슨한 연합세력을 형성하게 됐습니다(역사학자들, 그리고 대부분의 슬로바키아 민족주의자들은 사모의 나라를 정치적 연합체로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나라가 사모의 전반적인 지배를 받았던, 상업적이라기보다는 군사적 연합체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모의 세력권은 그리 넓은 지역은 아니었고, 오늘날의 체코 수도인 프라하,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Zagreb),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Bratislava) 등 동유럽 중심지가 모여있는 곳으로 추정됩니다. 사모의 세력은 이 지역에서 아바르족을 쫓아내고 다고베르트 왕(Dagobert·628-638년 재위)이 이끄는 프랑크족의 공격을 물리쳤습니다. 하지만 658년 사모가 죽자 부족들의 연대는 깨졌습니다.



오늘날의 브라티슬라바... 사진은 위키피디아에서.

 


679년이 되자 또 다른 투르크계 스텝 부족이 다뉴브 어귀로 이주해와 남쪽 강변에 기지를 세웠습니다. 아스파루흐(Asparukh·680-701년 재위 추정) 왕이 이끄는 불가르족은 681년 비잔틴 국경수비대를 무찌른 뒤 다뉴브 남쪽 옛 비잔틴 국경 안에 불가르족의 나라를 세우는 것을 허용한다는 조약을 이끌어냈습니다. 다뉴브 강 북쪽의 평야도 비잔틴령에서 불가르족의 땅으로 바뀌었습니다. 동로마가 ‘야만인들의 국가’를 공식 허용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불가르 국가는 오래지 않아 발칸 반도에서 비잔틴의 주요 경쟁자로 떠올랐습니다.


불가리아에 있는 아스프루흐 왕의 동상



투르크계 불가르족은 비잔틴과의 조약을 이용해 옛 비잔틴 땅에 자리 잡고 살고 있던 슬라브계 부족들에 대한 군사·행정적 통제권을 쉽게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아바르족과 달리 불가르족은 내부 결속을 굳게 유지했습니다. 또 비 아바르계 슬라브 부족들을 자신들 바로 아래 계급으로 만들어 휘하에 통합시켰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불가르족은 결국에는 다수 민족이던 슬라브족과 합쳐졌습니다.



★소피아


옛 불가르 왕국 시절부터의 중심도시이자 오늘날 불가리아의 수도인 소피아...

소피아는 기원전 8세기 트라키아인들의 거주지에서 시작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고도(古都)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 중 하나랍니다. 비잔틴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지방 수도를 거쳐 1908년 독립 불가리아 왕국의 수도가 됐습니다. 고대 트라키아 유적들과 비잔틴 정교회 성당·수도원, 오스만 제국 때 만들어진 모스크 등 여러 문명의 흔적들이 남아있습니다. 오스만 제국 최고의 건축가였던 시난(Sinan) 이 16세기에 지은 바나바시 모스크는 손꼽히는 이슬람 건축 중의 하나라고 하네요. 20세기 들어와서는 옛 소련의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 건축물들이 많이 지어졌습니다.


이민족의 이주, 치열한 전투를 다룬 본문과 전~혀 상관없는... 소피아의 공원 풍경. ㅎㅎ 사진은 역시 위키에서 가져왔는데, 저런 곳에서 꼭! 가을을 맞아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