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4-6세기 이민족의 이주
로마 제국이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지면서 오늘날 동유럽과 서유럽을 가르는 '문화적 단층선'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지난번에 했는데요. 문화·역사적으로 본 ‘유럽’은 그레코-로마 전통, 기독교, 그리고 이른바 ‘야만인’이라 불렸던 ‘새로운 민족들’이라는 세 가지 요소의 결합을 통해 형성됐습니다.
그 중 앞의 두 가지 요소들은 4세기가 시작될 무렵 이미 지중해의 로마 세계에 있었던 것들이고, 맨 마지막 요소는 4-9세기에 걸쳐 로마 제국의 영토 안으로 비(非) 로마계 민족들이 이주해 들어오면서 덧붙여졌습니다. 이 세 가지 문화적인(이럴 때엔 '사회적인' 혹은 '민족적인' 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요?) 요소가 없었다면 유럽의 동과 서를 가르는 선은 그저 지리적 구분선 정도로만 남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즉, 로마가 갈라지면서 1차로 단층선이 생겼고 그 뒤에 이민족들이 들어오면서 단층선이 굳어졌다는 얘기죠.
초창기 이주민들의 대부분은 게르만족에 뿌리를 둔 부족들입니다. 이들은 4-6세기 그레코-로마 세계(라틴어권 세계)의 변방을 파고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5세기에는 투르크계인 훈족이 탁월한 지도자 아틸라를 따라 로마로 들어왔습니다. 아틸라는 영어로는 보통 'Attila the Hun(훈족의 아틸라)'라고 쓰는데요.
위에 올려놓은 것은 19세기 헝가리 화가 모르 탄(Mór Than)이 그린 <아틸라의 잔치(The Feast of Attila)>라는 그림입니다. 지금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다는데, 5세기 훈 제국의 향연이라고 보기엔 르네상스 느낌이 강하게 납니다. 작가가 이탈리아에서 교육받은 사람이라 그런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틸라를 소재로 만든 동전에 나타난 모습은 저보다는 덜 정교하고 덜 세련돼 보입니다.
아무튼 당시 훈 제국의 위세는 대단했습니다. 대략 서기 370–469년 정도에 존재했던 훈 제국은 영토 면적으로 보아선 유라시아의 대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지도를 볼까요.
하지만 로마인들을 공포에 떨게 한 훈족은 잠시 등장했다가 곧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습니다. 지금 훈족의 이름은 헝가리(Hungary)라는 나라 이름으로만 간신히 살아남았죠.
훈족은 떠났지만, 그와 달리 게르만족은 그 자리에 남았습니다. 원래 게르만 부족들은 몽골의 스텝(초원) 지대까지 이어지는 유라시아 대평원의 서쪽 끝부분에 살던 부족이었습니다. 연원으로만 따지면 오늘날의 서유럽이라기보다는, 오늘날의 아시아 서쪽 긑부분에서 등장한 사람들이라고 봐야겠네요. 그런데 멀리 동쪽에서 4-5세기 중국이 대혼란을 겪자 그 여파가 도미노처럼 서쪽으로 퍼지면서 부족들의 연쇄 이주가 일어났습니다. 훈족이 유라시아 평원으로 말 달려 오자, 그 끄트머리에 살던 게르만족에게는 국경 너머 남쪽의 로마로 옮겨가는 것 외에는 갈 곳이 없었던 겁니다.
게르만족들은 처음에는 로마 제국의 동부를 침범하는 데에 그쳤지만 나중에는 서부 지역에까지 넘쳐 들어와 눌러앉았습니다. 게르만족이 들어오면서 로마 제국의 인구분포도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게르만족이 들어오면서 로마 제국의 서부는 동부에 비해 경제, 군사, 행정적으로 취약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취약성은 거의 만성화됐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이런 혼란에 대한 대응으로 제국을 둘로 가른 뒤 스스로는 동로마의 황제를 택했다고 했지요. 하지만 제국을 가르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는 흐름이 아니었고... 유라시아의 스텝을 달려 서진해온 훈족에 밀린 게르만계 서고트족은 376년 동로마 제국의 다뉴브 강 경계 안에서 피난처를 찾아 아예 눌러앉았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이주민 물결을 맞은 동로마의 발렌스 황제(Flavius Ivlius Valens Augustus·364-378년 재위)는 서고트족을 제국에 평화적으로 통합시키는 데에 실패했습니다. 그 결과 전쟁이 일어나 로마의 보병부대가 고트족에 대패했고 아드리아노플 전투(378년)에서 발렌스 황제마저 전사했습니다.
★아드리아노플 전투(378년)
아드리아노플, 혹은 하드리아노폴리스는 현재의 터키에 있는 에디르네입니다. 저는 2004년 터키를 여행하면서 이 곳에 가본 적이 있지요. 거의 반토막 밖에 없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조각상이 기억나는데요. 하드리아노폴리스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도시'라는 뜻이거든요.
서고트족은 이 전투에서 발렌스 황제가 이끄는 로마군을 이겼습니다. 발렌스 자신을 비롯해 로마 군인 4만 명이 몰살당했다고 합니다. 이민족 기병들이 최초로 로마의 보병 대부대를 이긴 전투였습니다. 이 전투를 계기로 게르만족의 로마 침략이 본격화됐습니다. 발렌스의 후계자인 테오도시우스 1세는 382년 고트족과 화해하고 그들에게 식량을 내주는 대신 변경의 방어를 맡기기로 했습니다. 굴욕이라면 굴욕, 타협이라면 타협인데... 이후 게르만 부족들은 모두 이런 전철을 밟아 로마로 침입해 들어왔습니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동로마의 후임 황제들은 서고트족 지도자들을 돈으로 회유하거나 로마인들과 결혼시키는 등 금전적, 행정적 수단들을 총동원해 융화시키는 쪽으로 정책을 바꿨습니다.
401년 서고트족의 왕 알라리크(Alaric I·395-410년 재위)가 동로마 제국의 군 총사령관이 됐습니다. 한때의 이방인 적에게 군대를 내맡긴 셈이로군요. 지휘봉을 잡은 알라리크는 어떻게 했을까요? 로마의 변경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을까요?
알라리크는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로 진격했습니다. 당시 서로마 제국 군의 총사령관은 역시나 로마 출신이 아닌 반달족 출신 플라비우스 스틸리코(Flavius Stilicho)였습니다. 이방인들이 로마 제국 동편과 서편의 군대를 지휘하고 있었던 것이죠.
알라리크와 플라비우스 스틸리코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이제 로마 제국은 게르만 세력 간의 각축장이 되어버렸습니다. 부루군드족, 반달족, 동고트족 등 여러 게르만 부족들이 국경을 넘어 제국으로 들어와 스틸리코 편에 붙었습니다.
하지만 승자는 알라리크였습니다. 그의 세력은 410년 군사력이 사실상 무너져내린 서로마의 부를 마음껏 약탈했습니다.
서기 395년, 아테네에 입성하는 알라리크. 1920년대의 삽화인데 작자 미상이라고 합니다.
위키에서 퍼왔습니다.
알라리크의 뒤를 이은 서고트족 지도자들은 이탈리아 반도를 나와 갈리아와 스페인으로 진격해 419년 서고트 왕국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스페인에는 이 무렵 이미 반달족이 정착해 있었습니다. 반달족의 왕 게이셀릭(Geiselick)은 북아프리카로 넘어가 439년에는 카르타고까지 점령했습니다. 반달 왕국이 세워지면서 북아프리카는 로마와 지중해 서부 세계에 식량을 대주는 후방기지가 됐습니다. 하지만 455년 반달족은 다시 로마로 쳐들어와 조직적인 약탈을 자행했습니다. 로마는 이 시기가 되면 게르만 왕국들의 밥으로 전락했다고 봐야겠네요...
동고트족은 450년대에 로마의 군사적 동맹자로 제국에 입성했습니다. 그들은 먼저 판노니아 평원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동고트의 왕 테오도릭 대제(Theodoric I·471-526년)는 알라리크의 전철을 밟아 동로마 제국을 약탈했습니다. 그러자 로마는 그를 달래기 위해서 군 총사령관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알라리크에 당하고서도 다시 그 길을 가는 허약한 제국이라니...
489년 테오도릭 대제는 이탈리아를 침략한 헤룰리족을 내쫓으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헤룰리족 족장 오도아케르(Odoacer)는 476년 서로마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를 몰아내고 이탈리아를 차지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도아케르를 물리친 테오도릭은 순순히 로마의 명령을 따르는 게 아니라, 헤룰리족을 몰아낸 자리에 동고트 왕국을 세웠습니다. 동고트 왕국은 입으로는 동로마에 충성을 맹세했지만 실제로는 독립된 나라였습니다. 동고트 왕국이 잘 나가던 시절에는 현재의 이탈리아 반도와 그 북부, 발칸반도를 모두 차지했을 정도였습니다.
이탈리아 라벤나에 있는 테오도릭 대제의 영묘. /위키피디아
프랑크족도 다른 게르만 침입자들처럼 4세기 무렵 군사동맹을 빌미로 제국 안에 들어왔습니다. 이들은 갈리아 북부 라인 강 남쪽에 터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게르만족과 달리 이들은 로마에 들어올 무렵 이미 부족이 아닌 국가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프랑크족 부대는 451년 샬롱 전투에서 훈족을 몰아내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이후에도 서고트족과 색슨족에 맞서 로마의 동맹이 되어주었습니다.
클로비스 왕(Clovis I. 481-511년 재위) 치하에서 프랑크족은 로마가톨릭으로 개종했고, 갈리아에 있는 프랑크족의 나라는 더욱 강고해졌습니다. 게르만 민족 중 전통신앙을 버리고 로마가톨릭으로 개종한 것은 프랑크족뿐이었습니다. 동로마 제국의 아나스타시우스1세(Anastasius I·491-518년 재위)는 클로비스를 로마의 명예 총독으로 임명함으로써 프랑크 왕국을 기술적으로 로마 제국에 병합했지만, 갈리아 서부는 허울뿐인 동로마령이었습니다.
이렇게 숨가쁘게 이리 치고 저리 들이받으며 로마 제국의 틀 안으로 들어온 이민족들...
그래도 로마는 로마... 로마에 들어온 게르만계 민족들은 각각 로마를 본떠 자기들의 나라를 세웠지만, 문화에서는 라틴 헬레니즘의 아류에 그쳤습니다. 로마가톨릭 교회는 이민족 침입과 혼란 속에서도 살아남아 제국을 이어주는 접착제 역할을 했습니다.
수많은 새로운 나라들, 특히 동고트 왕국은 형식적으로나마 동로마 황제에 충성을 바쳤습니다. 그들 모두 니케아 공의회에서 합의된 대로 기독교의 정치적 힘을 인정했고, 교회와 국가의 제휴를 받아들였습니다. 힘 빠지고 노쇠하긴 했지만 동로마 제국의 황제는 여전히 '지상에서 가장 높은 신의 대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늙은 제국은 그 후로도 1000년을 더 지탱합니다. 먼 훗날 오스만 투르크라는 동쪽 세력에게 콘스탄티노플을 빼앗길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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