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에서 JR 케이힌토호쿠(京行東北)선을 타고 한 정거장만 가면 가와사키이고, 조금 더 가면 요코하마가 나온다(한마디로 도쿄의 '변두리').
한참 더 가면 가마쿠라가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책읽은지 얼마나 됐다고... -_-) 옛날옛날 막부시대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작자가 있었단다. 당시 힘이 제일 쎈 놈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작자였는데, 치고 올라오는 놈들은 외지로 내쳐야지. 그래서 도쿠가와라는 놈을, 에도라는 촌구석으로 쫓아보낸다.
그런데 쫓아보내면서 도요토미의 고민거리가 뭐였냐면-- 에도에서 가까운 곳에 가마쿠라가 있다는 거였다. 이 땅은 천혜의 요새라서, 자칫 도쿠가와라는 놈이 가마쿠라를 차지하게 되면 쳐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고.
꾀많은 도요토미는 조건을 내건다. 에도에 집을 짓고 행복하게 잘 살아라, 허나(but) 가마쿠라는 넘보지 않기로 약조를 하라는 것이었다. 가마쿠라와 상관없이 도요토미는 도쿠가와한테 잡아먹혔지만, 아무튼 그렇게 중요한 곳이었단 얘기다. '가마쿠라 막부'라는 것도 있었고.
가마쿠라에서 마쯔리가 있다고 해서, 지난주 일요일에 세 식구가 전철을 타고 다녀왔다. 이 곳의 마쯔리는 전통이 느껴진다기보다는, 꼭 새마을 행사 같았다고나 할까. 처음에 경찰악대가 지나가는데- 일본은 공식적으로 군대가 없다보니, 이런 거 할때 군악대가 아니라 경찰악대가 나오는 모양이지.
브라스밴드는 언제나 눈길을 끈다. 거리에 늘어선 사람들 뒤로 깨꼼발을 하고 넘겨다보니, 우습게도 밴드 뒤에 늘어선 사람들이 '교통안전' '마약 방지' 등등의 구호가 적혀있는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그리고 나서는 미군 군악대의 행진.
가마쿠라에 있는 모임이란 모임, 단체란 단체는 죄다 나온 것 같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브라스밴드, 대학생 에어로빅단(대체 왜 나왔는지), 치어리더들, 기모노를 입은 할머니급 아줌마들, 그리고 마쯔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수레를 멘 사람들의 행렬. 아주아주 길었다.
행렬 구경을 한 뒤에, 일본 와서 처음으로 한국음식점에 갔다. 얼큰한 육개장의 그 맛! 그리고 나서 '츠루오카하치만구'라고 하는 커다란 신사에 갔다. 마쯔리를 맞이하야 기념공연으로 뭔가(아래 사진)가 있었는데, 뭔지는 잘 모르겠다. 에도시대의 어떤 여자에 대한 거라고 하는데... 남자 여섯명인가가 앉아서 전통악기를 연주하고, 회칠한 여자가 나와서 춤을 췄다.
위에서 내려다본 공연장(?).
하치만구를 나와서, 산책 삼아 동네를 한바퀴 돌았다. 꼼양은 궁이라고 부르는 어떤 곳에서 혼자 기도를 하고 돌아왔다.
마쯔리 구경도 재밌었지만, 사실 더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이 동네의 풍경이었다. 어쩜 그렇게 정갈하고 이쁜지. 부잣집들이어서가 아니라, 사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더라는 얘기다.
마쯔리도 대표적인 것이 될 수 있겠지만, 일본에는 여전히 사시사철의 의례가 남아 있다. 계절이 살아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자연을 기억이나마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의례가 있다는 것, 전통이 남아 있다는 것은 누구 식으로 말하면 '신화가 살아있다'는 얘기도 될 것이다.
어쩌면 긴 이야기일 수 있지만 아직 한달여밖에 안 살아봐서 ^^ 잘 모르기도 하고, 내 느낌을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본이 부럽다고 한다면 바로 이런 점이다. 시내에 공원이 많이 있는 것도 물론 부럽지만, 공원들이 모두 이쁘게 잘 꾸며져 있다는 점. 그 꾸밈새가, 결코 한 순간에 이뤄질 수 없는, 오랜 시간의 흔적이 속속 스며져 있는 그런 것들이더라는 말이다.
가마쿠라의 주택가도, 겉보기에는 평범했지만 뭐랄까, 이들의 안정성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그것이 부러웠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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