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왜 인도주의는 전쟁으로 치닫는가- 인식을 호도하는 잘못된 제목

딸기21 2012. 3. 6. 11:29
왜 인도주의는 전쟁으로 치닫는가? : 그들이 세계를 돕는 이유
카너 폴리 저/노시내 역 | 마티 | 원서 : The Thin Blue Line: How Humanitarianism Went to War (2008)


책을 처음 접할 때부터 제목이 좀 지나치다 생각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책은 인도주의 구호기구 활동가로 일해온 저자가 오랜 경험을 통해 '인도적 지원' '인도주의 구호활동'의 실상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국제앰네스티와 유엔난민기구 등에서 일했다는 저자는 현장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구호활동가'로서 현장에서 느끼는 문제의식들을 생생히 전한다. 그 중에는 구호활동의 한계나 구호기구의 관료주의 문제, 구호기구의 예산 쓰임새, 구호기구에 대한 관리감독 문제, 기금을 끌어모으기 위한 구호기구들의 지나친 '언론플레이' 같은 것들이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내용이 체계적이지 못하고 좀 산만하다는 느낌은 들지만, 읽다보면 '아, 서방의 구호기구에서 본격 활동하는 사람들은 이런 문제들을 가지고 고민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감동적이기도 하고 좀 부럽기도 하고 피곤해 보이기도 하고... 뭐 그런저런 생각들이 든다.

구호기구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 중 상당수는, 극복하기가 쉽지 않은 것들이다. 왜 다르푸르에는 유엔 사무총장까지 찾아가서 그 난리를 치는데 쿠르드족은 나몰라라 하나? 왜 아프리카의 어떤 지역에는 구호기구들이 뻔질나게 찾아드는데 똑같이 가난한 뉴기니의 부족들은 내팽개쳐져있나?

결국은, 구호기금이 모이는 방식- 쉽게 말하면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구호기금을 내기 위해 지갑을 열게 만드는 데에 미디어 혹은 캠페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모든 일에서나 마찬가지로, 일종의 '시장'에서 결정된다. 어떤 참상은 크게 부각되고, 어떤 참상은 묻힌다. 미디어는 상업적인 본성 때문에, 모든 사안을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얘기가 될 만한 꺼리'를 중점적으로 전한다. 더군다나 미디어의 본성은 '하루살이'다. 그 '꺼리'라 한들, 아무리 감성적으로 사람들에게 '먹히는' 것이라 한들, 미디어의 관심은 기나긴 시간 동안 지속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부각되고 묻히게 만드는' 것이 다만 미디어의 상업성이나 꺼리 찾아 움직이는 하루살이 근성 같은 것에만 좌우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꺼리를 찾아 띄우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미디어의 활동 이면에 정부기구의 '정치적 입장'이 반영된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주로 미국의 관심사에 따라, 혹은 각기 그 나라의 특수한 정치적 입장에 따라 '도울 사람, 도울 꺼리'를 결정한다. '왜 세상 모든 곳에 고르게 구호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가'에 대해서는 이쯤 해두고 넘어가자.

저자의 문제의식에서 또 하나의 축을 이루는 것은 이른바 '인도적 개입'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인도적 개입' 혹은 '인도주의 구호활동'이라고 부르는 두 가지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인도적 개입에서의 '개입'은 주권국가의 주권을 어느 정도 침해하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 해당국가의 정부가 보장해주지 못하는 주민들의 인도적 요구에 외부(국제기구 혹은 다른 나라들)에서 대응하는 것을 가리킨다. 주로 그 나라 정부가 형편없이 무너져서 자국민들을 보호해줄 형편이 안될 때라든가, 그 나라 정부가 주민들을 인도적 위기로 몰아넣는 주범일 때 그런 일이 벌어진다.

세상 어떤 '주권'도 여러 사람들의 생명과 행복만큼 소중하지는 않다. 주권을 존중해줘야 하는 것은, 민족국가 체제가 형성된 이래 그 나라 사람들의 생명과 행복을 가장 잘 보장해주는 것은 그 나라 정부라는 전제에서다. 그런데 이미 숱한 사례에서 보아왔듯이, 주권국가가 오히려 주민들의 적인! 경우는 너무나 많다. 그래서 20세기 중반 이래로 국제사회에서는 많은 이들의 생명과 행복이 위기에 빠졌을 경우에 그 나라의 주권을 다소 제한하더라도 '인도적 차원에서 개입한다'는 것이 더 올바른 일로 받아들여졌고(리비아 공습 때 유엔에서 논의된 '보호책임(R2P)' 원칙이 바로 이것이다), 이런 생각이 널리 퍼지는 데에 국경없는의사회라든가 국제앰네스티나 옥스팜 같은 민간 구호기구들이 큰 몫을 했다.

'인도적 개입'과 '전쟁'이라는 상반된 두 사건이 연결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해당 국가의 주권을 제한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정부기구가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해당정부의 협력 하에 국제구호기구들이 떠맡을 때도 있다. 그 나라 정부가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해당국가의 출입국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틈을 이용해 구호기구 활동가들이 들어가서 구호활동을 벌이는 사례도 있다. 1990년대 아프가니스탄에 '멋대로 들어가' 비난과 찬사를 함께 받았던 국경없는의사회의 경우가 이런 사례다.

그런가 하면, 2011년 리비아 공습 때나 1990년대 이라크 사담 후세인 체제를 압박할 때처럼, 그 나라 정부를 무력으로 윽박질러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기도 한다. 그걸로도 그치지 않고 두 나라에 대해 국제사회가 '무력 개입'을 해서, 결국은 해당국 정부를 무너뜨렸다. 이른바 '인도적 차원의 군사개입'은 '해당국 정부가 오히려 그 나라 주민들을 인도적 위기로 몰아넣는 주범일 때' 벌어진다.

문제는 '인도적 개입'이라는 말이 심하게 오염됐다는 데에 있다. 조지 W 부시라는 자는 인도주의라는 말을 마구마구 왜곡하면서 이라크를 침공했다. 부시가 처음에 내세웠던 명분은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의혹'이라는 것이었지만 이게 국제 무대에서 영 먹히지 않자 그 다음엔 '쿠르드 족 등 자국민들을 학대하는 후세인 체제에 대한 징벌 & 체제교체(레짐 체인지)'라는 다소 황당한 명분을 내세워 이라크를 공격했고, 그 뒤에 벌어진 이라크의 참상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다.

이런 짓을 하면서 부시 행정부는 민주주의니 인도주의니 하는 말을 참 우습게도 갖다붙였다. 유엔과 국제사회를 엿먹이고 국제규범은 바닥에 팽개쳐 짓밟았다. 물론 세상은 속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적 개입이라는 용어에는 더러운 물이 들어버렸다.

부시 시절은 지나갔다. 뒤를 이은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정부는 인도적이든 뭣이 됐든 군사개입을 확대하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 온 세상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던 부시 시절이 지나간지 겨우 3년여 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시절 아수라장이 된 이라크니 아프가니스탄이니 하는 곳들은 여전히 엉망진창이 된 채로 남아있는데, 그런데도 어쩐지 너무 오래 전 지나가버린 일 같다. 그저 세상 굴러가는 이른바 '세계체제'에서 부시라는 미치광이 하나가 온통 물을 흐려놨다가 슬그머니 이제는 사라져버린 듯한 느낌이다. 적어도 리비아 군사개입 때 미국과 나토가 선택한 제한적 공습은 옳았고, 부시 때와는 아무래도 달랐다.

하지만 부시가 가고 오바마 시대가 된 뒤에도 달라진 것은 없다. 부시가 망가뜨린 것을 오바마가 다 복구하지 못했네, 하는 종류의 이야기가 아니다. 부시 시절에 엉망으로 망가져서 20점으로 떨어졌을 뿐이지, 세상의 인도주의 수준은 부시 이전에도 100점과는 거리가 멀었다. 인도주의의 '오용'을 논하기엔 아직도 인도주의의 수준이 너무 낮다는 얘기다.

특히 한국에서 '인도주의'라는 것은 아직도 전혀 일반인들의 가치판단 기준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책은 그냥 술술 읽고 넘어갔지만, 제목에 대해서는 무쟈게 씹어주고픈 것이 이 때문이다. 인도주의가 전쟁으로 치닫는다고? 아니다! 인도주의를 악용해 전쟁의 빌미로 삼은 자들이 있었다는 것이지, 인도주의를 무시하는 자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대량학살을 저지른다는 것이지, 인도주의를 겉으로는 내세우면서도 실제론 정치적 계산에 따라 무시하는 자들이 문제인 것이지, 인도주의가 나쁜 게 아니다.

지난해 중동-북아프리카 시민혁명 때 참여연대 강좌에 갔다가 국제연대 회의 같은 곳에서 나름 진보적인 분들이 모여 토론한 결과'리비아 군사개입은 옳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리비아에 대한 제한적 군사개입이 성공했다고 평가한 내 기사에 대해서 어느 분이 '북한을 공격해도 되느냐'면서 서방 식민주의자의 시각이라고 욕 메일을 보내오기도 했다. 또 내가 존경하는 생태주의자 선생님께서도 리비아 군사개입에 대한 반대 의견을 담은 코멘트를 전해오시기도 했다.

우리 안에서는 인도주의라는 것을 놓고 혼란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인도주의 개념도 제대로 머리 속에 박혀있지 않은데 어설픈 친미반미 진영논리가 끼어들면서 오히려 '반 인도주의' 같은 생각이 엿보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빡세게 고민을 하면서 무슨 방법으로든 남을 돕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