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시 (상.하)
살만 루시디. 김진준 옮김. 문학세계사
소설의 배경은 인도와 영국과 아라비아의 어느 사막을 오간다. 공간적 배경만큼이나 주인공들의 성격과 문화적 배경도 다양하다. 천사 지브릴(영어로는 가브리엘)을 상징하는 인도의 영화스타 지브릴, 반대로 자의와 상관 없이 악의 화신으로 변해가는 성우 살라딘. 지브릴은 서구적인 것, 인도적이지 않은 것을 경멸하지만 정작 그의 애인은 ‘히말라야의 만년설처럼 흰 피부를 지닌’ 알렐루야라는 이름의 유대인 여성이다. 반면 런던에서 주로 활동하는 살라딘은 인도 출신임을 한탄하며 오로지 영국, 런던만을 숭상하고 옛 식민종주국의 시민이 되기 위해 애쓴다.
또 다른 주인공은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7세기 메카와 메디나의 사막에 살았던 ‘예언자 마훈드’다. 개에 비유되기도 하는 이 마훈드라는 인물은 누가 봐도 한 눈에 이슬람의 창시자인 대예언자 무함마드를 지칭한다. 어처구니없게도, 무함마드에게 예언을 내려준 것은 알라의 천사 지브릴이 아닌, 현대의 볼리웃 스타 지브릴이었다.
루시디는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했다. 1981년에 발표한 소설 <한밤의 아이들>로 이미 명성을 얻었지만 그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것은 네 번째 작품인 <악마의 시>였다. 영국에서 88년 발표된 이 소설은 그 해 부커상 최종후보에까지 올라갔다. 피터 카레이의 <오스카와 루신다>에 결국 영예를 빼앗겼지만 휘트브레드 상을 받아 설욕했다.
하지만 이 책이 유명해진 것은 문학적으로 너무나 탁월해서가 아니라, 1989년 이란의 호메이니가 루시디를 살해하라는 파트와(포고령)를 내렸기 때문이다.
호메이니는 루시디의 목에 미화 300만달러 규모의 현상금까지 내걸고 이슬람권 전역에 루시디 살해를 선동했다. 루시디는 공개된 장소에 나서지 못한 채 도피생활을 해야 했다. 일본과 이탈리아에서는 번역자들이 공격을 당했다. 터키에서는 책을 번역한 유명 작가 아지즈 네신을 노린 공격과 그 후폭풍으로 일어난 유혈사태로 37명이 숨졌다. 96년 이란 정부가 파트와를 철회했지만 지금까지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논란 과정이 지금 돌이켜보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지만, 논란이 벌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신성모독을 위한 책이니까. 작가는 지브릴과 살라딘을 통해 식민지적인 것, 식민제국을 추종하는 것, 근본주의에 매달리는 것, 현대적 서구적이라고 잘난척하는 모든 것들에 일격을 날린다.
알라딘 어느 분으로부터 2년 쯤 전에 선물 받았는데, 조금씩 야금야금 읽다가 이제야 끝냈다. 재미있었다. 소설 외적인 문제들 때문에 더 유명해진 책이지만, 책 자체도 재미있다. 나깁 마흐푸즈의 <게벨라위의 아이들>처럼 묵직한 울림을 주는 ‘대작’은 아니지만 마술적 사실주의 남미 소설들이 취향인 사람이라면 이 책도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 시간과 장소를 오가는 몽환적인 판타지. 작가의 수다는 끝이 없다. 유머 가득하고 뒤죽박죽에, 중구난방의 민담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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