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콜리어 저/류현 역 | 살림출판사 | 원서 : The Bottom Billion
아프리카 기획기사를 준비하면서 교보문고에 가 책 구경도 하고, 인터넷서점들도 뒤져보고, 이전에 읽었던 아프리카에 대한 책 목록도 되새겨보았다. 그러다가 만난 것이 이 책이다. 책의 원제는 <THE BOTTOM BILLION> 즉 ‘밑바닥의 10억 명’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 책은 아프리카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개발의 그늘에서 밀려난 지구촌 밑바닥 가장 가난한 10억명이 왜 그런 절대빈곤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지에 대한 책이다. 즉 ‘개발의 경제학’이 그동안 놓쳐온 것과 국제원조의 성공/실패 사례들을 분석하고 ‘좀더 효율적으로 밑바닥 10억 명을 생존선으로 끌어올리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 것이 이 책이다.
그런데 그 10억 명의 상당수가 아프리카에 살고 있다보니 자연스레 아프리카에 대한 책이 될 수밖에 없다.
사실 68억 인구 중에 생존을 위협받는 수준의 빈곤층이 10억 명이라면 ‘밑바닥’이 꽤나 넓은 셈이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에서 ‘빈곤선 이하’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인구의 절반~9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는 수치다. 즉 지구상엔 목숨 부지하기도 힘들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콜리어는 옥스퍼드대학의 개발경제학자로서, 유엔이나 여러 원조기구들을 통해 아프리카 경제를 연구하고 현장경험을 쌓은 사람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이론의 틀이 잘 잡혀있으면서도 실질적인 경험들과 생생한 통계들이 많아 읽기 쉽고 재미도 있다.
저자는 제프리 삭스의 <빈곤의 종말> 이후 개발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돌았던 논의 내용들을 살짝살짝 정리해주면서, 원조라는 것이 원조를 받는 국가의 상황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가 전하는 사례들의 대부분은 (아프리카의 현실에서 보이듯) 실패한 케이스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좌절스럽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주로 서방/국제기구)가 밑바닥 10억 명의 삶을 개선시키는 데에 실패한 이유를 분석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자고 말할 뿐이다.
저자는 먼저 아프리카의 최빈국들, 즉 ‘실패한 국가들’이 어떤 이유로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지를 살핀다. 여기서 말하는 ‘실패한 국가들’은 미국이 주장하는 북한/아프가니스탄/소말리아 같은 나라들과는 의미가 다르며, ‘도저히 못 살 정도로 가난한 나라’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콜리어는 이런 나라들이 분쟁의 덫/천연자원의 덫/나쁜 이웃을 둔 내륙국의 덫/작은 국가의 나쁜 통치라는 네 가지 덫에 걸려 있다고 지적한다. 아프리카 대부분 나라들은 이 네 가지 덫 중 최소한 한두 가지, 많게는 모두에 걸려 있다. 이 덫들은 결코 빠져나오지 못하는 미로는 아니지만, 빠져나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
요즘 들어 진보적이라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성장’의 의미를 평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 분배를 생각하지 않는 성장지상주의가 문제이지, 성장은 반드시 필요하다. 당장 먹을 것 입을 것이 없는 사람들 앞에서 ‘성장지상주의 신화를 깨뜨려라’라고 말하는 것은 난센스다. 저자는 밑바닥 국가들의 문제가 ‘성장에 실패한 데에 있다’고 말한다.
"좌파는 서구의 자책감, 즉 과거 식민주의에 대한 반성 그리고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이상주의적인 관념에서 이제 탈피할 필요가 있다. 빈곤은 낭만적이지 않다. 밑바닥 국가들에게는 사회주의 실험을 해볼 객관적 여건이 성숙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이미 역사상 시장 경제를 구축한 선례를 따라 선진국들로부터 경제 발전을 위한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제프리 삭스 식으로 말하면 ‘개발의 마중물을 부어’ 그들을 일단 성장/개발의 궤도에 올려, 지구상 다른 국가들을 쫓아갈 힘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한국전쟁 뒤에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다. 우리(혹은 아시아 국가들)는 궤도에 올라섰다. 그런데 왜 아프리카 국가들은 그러지 못하는가? 왜 그들은 많은 원조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밑바닥인가? 우리도 덫에 걸렸지만 빠져나왔는데, 왜 그들은 덫에서 그토록 빠져나오지 못하는가?
아프리카라는 화두가 어렵고 무거운 것은 그 때문이다. 서방 식민 통치국들의 잘못? 분명히 있다. 이 책은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부인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흔히들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인적, 물적 자원을 수탈당해서’라는 것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쩌면 서방 식민통치국가들의 가장 큰 잘못은 아프리카가 가진 것들을 많이 빼앗고 박해했다는 것보다도, ‘국경선을 잘못 그었다’는 점인지도 모르겠다. 물적 기반을 갖고 자연적으로 형성된 민족공동체(국가로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이 되는 집단)가 없는 곳을 국가로 ‘독립’시킨 탓에 부르키나파소,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차드, 우간다처럼 항구가 하나도 없는 사방 꽉꽉 막힌 내륙국들이 탄생했다. 잔혹한 내전 끝에 용케도 ‘개발독재자’를 만나 정치적 안정을 얻은 우간다는 그나마 나은 사례다. ‘나쁜 이웃을 둔 내륙국의 덫’은 아프리카 여러 국가들을 옥죄는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다. 서방국들은 하나의 나라로 합쳐져야 할 지역/종족들을 분리해 구조적으로 자생불가능한 나라들을 만들었다. 또 다른 경우에는 서로 동질성이 없는 종족들을 하나로 묶어 분쟁의 불씨를 심었다. ‘분쟁의 덫’과 ‘내륙국의 덫’은 이렇게 식민지 역사와 이어져 있다.
천연자원을 가진 나라가 나쁜 통치자들을 만났을 때, 빈곤과 부패와 저개발과 정실주의와 국부 유출이 합쳐져 상황은 최악이 된다. ‘천연자원의 덫’은 나이지리아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콜리어는 나이지리아 라고스국립대학에서 카요데 소레메쿤 교수와 만났을 때, 소레메쿤 교수가 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부패는 어디서나 문제이지만 나이지리아에서는 ‘특별’하다. 이 나라의 부패는 특별하고, 부패가 미칠 파괴적인 영향력도 특별하다. 자원이 많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 많기 때문에 부패의 이익이 크고, 국가에 미치는 해악도 그만큼 큰 것이다.”
당장 수출대금을 손에 쥘 수 있는 자원이 있으면 그 나라는 제조업 발전을 게을리 하기 쉽다. 일을 해 물건을 만들어 팔지 않아도 돈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입된 자금은 (지금 딱 나이지리아에서 그렇듯이) 물가를 턱없이 끌어올리고, 빈부격차(이런 나라에서는 권력의 격차가 곧 빈부의 격차다)를 만들고, 자원의 처분권한을 특정 집단이 독점하게 만드는 정실주의를 낳는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민주주의를 두 갈래로 구분한 것이었다. 콜리어는 동료 개발경제학자 앙케 회플러와 함께 민주주의를 ‘선거경쟁(자유선거)’과 ‘견제와 균형’의 두 측면으로 나눠 아프리카 국가들을 분석했다. 콜리어가 이 책에서 ‘성공사례’로 꼽고 있는 남아프리카의 보츠와나는 1966년 독립 뒤 세렛세 카마를 비롯해 3명의 대통령이 재선, 삼선으로 집권했고 2008년 카마의 아들인 전직 장성 이안 카마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 나라는 ‘선거경쟁’ 측면은 약하다고 볼 수 있지만 똑똑한 지도자를 만났고, 관료제도가 제대로 기능을 했다. 정치권 내에서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는 까닭에 자원을 효율적으로 국가개발에 배분했고, 아프리카에선 드물게 저소득 국가에서 중소득 국가로 이행하고 있다. 반면 나이지리아에서는 정치인들이 권력을 잡으면 공직을 자기 집안, 자기 부족 출신들로 채우는 전형적인 정실주의 국가다. 권력층은 자원 이익을 빼돌려 유권자들의 표를 사고, 집권하면 다시 이득을 챙긴다.
소레메쿤 교수와의 대화에서도 이 책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콜리어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했다. 민주주의에도 종류가 있어서 선진국용 민주주의가 따로 있고 개도국용, 저개발국용 민주주의가 따로 있다고 한다면 반발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특히 선진국의 깨어있는 지식인들이 그런 발상에 반감을 느끼기 쉽겠지만, 선거민주주의 자체를 목표이자 지상과제로 삼는 민주화라는 것은 정치적/경제적으로 실패하기 십상이다.
콜리어는 비판을 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천연자원이 많은 저개발국의 경우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가 이뤄지면 오히려 개발과 성장이 후퇴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그가 분석한 통계자료들이 이를 뒷받침한다는데, 역시나 나이지리아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자칫 개발독재라는 이름의 제3세계 독재를 옹호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저자의 의도는 명확하다. 독재를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라 ‘개발/성장과 정치체제’에는 그만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목적은 빈곤/개발/원조의 실질적인 면들을 분석, 대안을 모색해보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지구상에는 ‘그들을 왜 우리가 도와야 하는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그들을 도와봤자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구상 10억 명이나 되는 이들을 그렇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도덕적으로는 물론이고, ‘실리적으로도’ 그렇다. 지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느껴야 할 책임의식이라는 게 있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쉽게 미국을 욕하고 한미 FTA에 반대한다고 말하지만, 미국은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여러 최빈국들에 면세혜택을 주어, 미국 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OECD 국가라고 자랑만 하지 말고, ‘원조 수혜국에서 시혜국으로 바뀐 최초의 나라’라고 떠들어대지만 말고, 가난한 나라들에 베풀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종류의 성숙과는 거리가 멀다. 가난한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책무보다는 ‘국익’이라는 우스꽝스러운 개념이 판을 치는 나라에서 “시에라리온이나 라이베리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생산되는 것들을 면세로 받아주자”라고 말했다가는 몰매를 맞을지도 모르겠다. 굶어죽는 아이들을 돕자는 얘기에도 ‘왜 상관도 없는 아프리카 애들을 돕냐’는 사람들이 있는 마당에.
여러 종류의 케이스들을 담고 있어 딱딱하지 않으면서 아주 재미있다. ‘가난한 국가들을 돕는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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