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화창하다. 집안에서 내다보기에는.
어제도 그랬다. 하지만 보기와는 다르게, 실제 기온은 쌀쌀하다. 서울보다야 도쿄가 따뜻하다지만, 바람이 많이 분다. 어제는 하루 종일 꼼양과 집안에만 있었다. 둘이 자전거 타고 나들이하는 것 외에는, 둘 다 집안에 콕 박혀서 지내는 지금의 생활에 아주 만족하고 있다. 늘 가던 카페에도 책 읽으러 가지 않았고, 그 대신 '해품달'과 '하이킥 역습'을 인터넷으로 보면서 놀았다.
먹을거리는 계속 걱정이다. 며칠 동안 '물채소'라는 것을 많이 사다먹었다. 한자로 水菜라 써있는데 우리말 이름은 모르겠다. 한국에선 본 적이 없는, 아무런 맛도 향기도 없어 오히려 아무 음식에나 넣어 먹기 편한 채소다. 그리고 늘 그렇듯 두부, 오뎅, 꼼양이 '유두부'라고 부르는 살짝 튀긴 두부를 사다가 먹었다. 그런데 저놈의 물채소가, 알고보니 방사능 오염가능성 높은 이바라키 산이었다.
늘 가는 집 근처 수퍼마켓 '서미트'에서 유심히 채소 원산지를 살펴보니 거의 이바라키 산이다. 아지님과 신오쿠보의 한국 마켓에 갔는데, 거기 있는 채소들도 거의 도치기, 이바라키, 치바 산이다. 모두 방사능 오염 높은 곳이다.
쌀은 한국에서 가져간 현미와 찹쌀, 그리고 일본쌀 약간을 섞어서 먹고 있는데 현미 떨어지고 나면 어떻게 할지 고민이다. 채소는... 답이 없다. 이바라키와 치바가 수도권의 채소 공급지인 모양인데, 어떻게 피해갈 수 있으려나? 당초엔 조금씩 김치를 담가먹으려고 했는데, 배추에 파에 무까지 모두 이들 지역에서 나온 것이고 보니 그것도 여의치 않을 것 같다. 생김치가 떨어져서 우선은 신오쿠보에서 종갓집 김치를 한봉지 사들고 왔다.
(여러분~ 먹을 것 가지고 현해탄을 건너 딸기네 집으로 오시오~ 마구마구 환영해드리겠소~)
꼼양은 공부 열심히 잘 하고 있고... 엊그제 '신석기 구석기'에 대해 알게된 뒤로는 아주 애용하고 있다. 우리는 타제석기, 마제석기라 배웠는데 꼼양네는 뗀석기, 간석기라 배운다. 그런데 '간석기'라고 하니 그것도 이해가 쉽지 않다. 뗀돌 간돌 차라리 그랬으면 모를까. 아무튼 돌을 떼어 만든 것, 돌을 갈아 다듬은 것이라 했더니 하루종일 '뗀~', '간~'를 써먹었다.
아이폰으로 찍었더니 잘 안 나왔네... 울 앞집 목련.
이 화창한 날씨... 하지만 실은 그 사이에, 군마 현의 쿠사츠 스키장에 한번 다녀오기도 했다. 지난 토욜에 꼼양의 숙원을 풀어주기 위하야 스키장에 갔고, 당일치기로 아지님이 무리를 하긴 했지만 역쉬나 재밌게 놀았고... 돌아오기 전 잠시 동안 노천탕(증말 노천탕 '밖에' 없었다! 다른 어떤 편의시설도, 샤워시설도, 수도 시설도 없는 노천탕 ^^)에 몸을 담그기도 했고.
그거는 그렇고...
그동안 내 머릿속 인풋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일본에 있는 동안에는 하루에 책 한권을 읽는다는 임파서블한 미션을 세웠다가 아주 쉽게 포기하고, 그 대신 이틀에 한권이라도 읽어볼까 하고 있다. 일단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되어가고 있다. 오늘 한 권을 끝내기만 한다면!
오랫동안 쥐고 있던 '워킹 푸어'를 끝냈고, 역시나 오랫동안 잡고 있던(이노무 독서습관은 왜 이따위인지;;) 일란 파페의 '팔레스타인 현대사'도 끝냈다!
'왜 인도주의는 전쟁으로 치닫는가'도 다 읽은 뒤 정리해뒀다. 조돈문 교수의 '브라질에서 진보의 길을 묻다'는 재미있게 다 읽은 뒤 아직 정리를 못 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후마니타스의 책들이 많다. 몇달전 후마니타스 책장터에서 우르르 사들인 것들도 아직 그대로 남아있는데.
읽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손에 잡히기에 린 헌트의 '인권의 발명'을 읽었고, '미친 사유화를 멈춰라'를 몇달 만에 다시 꺼내어 절반 남은 분량을 마저 읽었다. 모두 정리해둬야 하는데... 흙흙, 서울에 펜스캐너를 두고 온 탓이라고 일단 해두자.
오늘은 날이 정말 화창하다. 어제는 간간이 구름이 끼었지만 오늘은 청명 그 자체다. 따뜻하진 않다. 아침에 피아노를 배달받는데 성공했고(집 앞에 계단이 있다는 이유로 다른 이삿짐보다 며칠 늦게 받았다) 어제 널었던 빨래도 깔끔하니 다 말랐다! 심지어는 세탁기를 연 이틀째 돌리고 있다. 오후엔 까페에 가서 반드시 책을 읽고 오리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증거- 너무나도 오랫동안 책꽂이에 꽂아만 두고 있던 스티븐 와인버그의 '최초의 3분'을 드디어 읽기 시작했다! 거의 끝나간다. 울랄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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