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주의에 갇힌 근대
문승숙 (지은이) | 이현정 (옮긴이) | 또하나의문화 | 2007-02-01
으으으... 이런 책은 별점을 마구마구 더줘야 하는데...
아주 속이 시원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모두 이 책을 한번씩 읽어봤음 좋겠다. 올 하반기 읽은 책들 중에 정말이지! 맘에 드는 책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만들어지고 군사독재, 다른 말로 ‘개발독재’가 시작된 이래 남성성과 여성성을 어떻게 차별해서 ‘나라만들기/국민만들기’에 동원했는지를 파헤친다.
저자는 1960년대부터 1987년 이전까지를 ‘군사화된 근대성과 성별적 대중동원’의 시기로 규정하고, 그 이후 2002년까지를 ‘군사화된 근대성의 쇠퇴와 성별화된 시민성의 대두’로 정리한다. 말하자면 이 책의 핵심 개념은 ‘군사화된 근대성’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더니, 근대성도 우리나라에선 군사화돼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렸다.
그 군사주의의 빛(이라고 생각하는 놈들이 분명 있다, 그것도 많이)과 그늘(알게모르게 군사주의를 강요하는 시스템이 어디 한둘인가)이 지긋지긋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꼼꼼하게 조목조목 짚어주니 구절구절마다 무릎을 치지 않을수 없었다. 좀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용어들이 없지 않았지만 정말 명쾌하고, 추리소설보다 더 재미있었다.
군사화된 근대성의 핵심 요소는 공산주의자 타자와 싸우는 반공주의의 자아로서 한국을 구성하는 것, 훈육과 물리력으로 반공 국가의 구성원을 만드는 것, 산업화 경제를 군 복무와 결합시키는 것이다....
한국은 ‘주적’ 북조선에 맞서는 반공국가로서 세워졌다. 나라를 이와 같이 이데올로기적으로 구성함으로써, 근대화를 추진하는 국가는 감시와 정상화라는 훈육 기술들을 사용할 수 있었다. 거기에다 제도화된 폭력까지 사용함으로써 개인과 사회 집단을 개조했다. 또 국가 정체성을 그와 같이 구성함으로써 다른 어떤 사회정치적 문제보다 군사적인 국가 안보가 중요한 것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강한 근대적 국가를 구축하는 것, 남성의 군 복무를 경제 조직에 통합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게 되었다. (46~47쪽)
사실 1960년대 한국인들에게는 대중 군사동원이 사회 정치적 세력화로 이어지는 역사적 경험이 전혀 없었다. 혁명 투쟁이나 독립 전쟁의 역사기록을 보면 그 시기 동안 평범한 남자들이 군인이 됨으로써 시민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와 같이 병역의 긍정적인 유산이 있으면 군 복무가 단지 피지배자에게 강요되는 부담이 아니라 시민의 의무라고 보는 시민 공화주의에 기초한 관점이 생길 수 있다.
...한국의 제대 군인들과 그 가족들은 6·25 전쟁 동안의 대중 군사동원에 대한 대가로서 전후에 후한 경제적 혜택을 받은 것이 전혀 없었다. 대중 군사동원이 사회 경제적 권리를 얻는 길이 되는 역사적 경험이 없다는 것은 군 복무를 단지 위험하고 강제적인 부담, 가능하면 피해야 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보는 대중적인 인식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77쪽)
근대화 국가가 여성의 국민 의무를 구성하는 데 생물학적 재생산자라는 여성의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국가는 산업화를 추진하면서는 여성을 임금 노동자로 통합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 몇 십 년간의 인구 억제정책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근대 국가의 여성 통합은 자식을 낳는 여성의 역할에 근거해서 이루어졌고 여성의 국민 의무는 자기 생식력의 애국적 통제로 요약되었다는 점이다. (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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