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밀턴 프리드먼, '자본주의와 자유'

딸기21 2007. 7. 15.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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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자유 Capitalism and Freedom

밀턴 프리드먼 (지은이) | 심준보 | 변동열 (옮긴이) | 청어람미디어 | 2007-04-02



늘 이름만 듣고 정작 한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밀턴 프리드먼의 책을 올여름 읽었다. 유명한 책이라고 한다. “<자본주의와 자유>를 읽지 않고서는 현대 경제학을 논할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100권의 책 중 하나”. 분량이 생각보다 많지 않고(320쪽 정도) 에세이풍이길래 한번 읽어봐야지 하고 도전해봤다.


책이 처음 나온 것은 1962년. 1982년에 한번 다시 냈고, 그 다음에 2002년 다시 펴냈다고 한다. 내가 본 책에는 이 세 버전의 저자 서문이 모두 붙어 있다. 저자가 2002년판 서문에서 밝혔듯, 1962년과 이후 20년, 또 그 뒤의 20년 동안 미국 뿐 아니라 세계 경제는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프리드먼이 이 책을 썼던 시기 미국은 ‘공산주의와의 싸움’에 골몰하고 있었고, 2차 대전 이후의 정부 주도형 경제가 유지되고 있었다. 1980년대 미국은 여전히 람보식 공산주의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긴 했지만 세계화가 시작되고 ‘민간경제’가 커지면서 경제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그리고 2002년은 신자유주의와 글로벌화가 한창 진행된 시점이었다. 


책 내용은 제목 그대로다. 자본주의는 인류에게 자유를 선사해준다. 자유는 자본주의 속에서만 가능하다. 모든 규제는 자본주의의 적이다. 따라서 자유의 적이다. 공산주의와 싸움에서조차 매커시즘 식의 규제, 헐리웃 블랙리스트 같은 멍청한 규제는 필요없다. 왜냐?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시장이지 규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을 믿으라. 자본주의와 자유를 믿으라. 정치적 자유도 시장이 가져다 준다. 


인간 본성에 대해 너무 많이 말하지 말라. 경제에서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통화량이지, 기업인이나 노동자의 탐욕이 아니다. 프리드먼의 별명처럼 돼버린 ‘통화주의’의 사상적 배경은, ‘돈의 양만 빼고는 아무것도 손대지 마라’라는 것에 있다. 정부도, 공산주의자도, 자유주의자도, 우익도, 모두모두 시장에서 손을 떼시오!


노벨경제학상까지 받았다는 경제학자가 쓴 글을 놓고, 경제 문외한인 내가 이렇게 비아냥거리려니 좀 그렇긴 하다. 하기사, 이 책이 재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저렇게 비아냥거리긴 했지만 속으로 뜨끔뜨끔한 구석이 많았다. 내가 뭘 잘못해서 뜨끔하고 찔렸다는 얘기가 아니라, 긴가민가 싶은데 프리드먼이 딱 잘라 말하니 어쩐지 솔깃해진 부분들이 있었다는 얘기다. 


프리드먼은 2002년판 서문에서, 인류는 수십년간 초유의 ‘실험’(공산주의와 계획경제)을 해보았으며 이젠 그 결과를 눈으로 확인했다고 말한다. “경제를 조직하는 두 가지의 택일적 방식, 즉 하향식 대 상향식, 중앙집중적 계획·통제 대 사적 시장, 더욱 쉽게 말하면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를 놓고 70여년에 걸쳐 벌인 실험에 극적인 종지부를 찍었다. 이 실험의 결과는 홍콩과 타이완 대 중국 본토, 서독 대 동독, 남한 대 북한이라는, 더욱 소규모로 이루어진 그와 유사한 여러 실험에 의하여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경제학은 그 특성상 과학자들의 실험과 같은 제한된 시공간 내에서의 인위적 실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힘든 학문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애당초 ‘실험’이 목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인류는 20세기 근 100년 동안 실험을 한 꼴이 됐고, 결론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프리드먼의 말은 틀린가? 별로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제3세계에서 계획경제, 사회주의적 경제체제를 골랐던 나라들 줄줄이 실패했다. 프리드먼 말대로, 차라리 시장경제 택한 나라에서 전반적으로 소득이 늘어나면서 빈부격차도 줄어들었다. 정확히 빈부격차가 줄어들었는지 아니면 절대빈곤이 줄어들면서 전반적으로 생활수준이 향상된 것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아프리카 빈곤국들보다 자본주의 해본 나라들이 잘 사는 것은 사실이다. 이 책에선 언급되지 않았지만 세계화 문제만 해도 그렇다. 고립된 나라들보다 개방되고 세계화된 나라들, 외국과 무역 많이 하는 나라들이 더 잘 산다.


빈부격차 없는 나라 없고 세계화 시대에 빈부격차 더 커진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래도 사실은 사실인 거다. 따지고 보면 빈부격차가 커지는게 뭐가 문제랴. 100원 가진 사람, 1000원 가진 사람 나뉘어있던 사회가 1000원 가진 사람과 1000만원 가진 사람 있는 사회로 바뀌면 빈부격자는 엄청 커진 꼴이지만, 제일 가난한 사람들 돈이 많아진 것 또한 사실이다. 프리드먼은 45년 전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자본주의의 메신저 역할을 했던 것이고, 사회주의와의 싸움에 너나없이 달려들었던 시기에 ‘자본주의 진영’에서는 그에게 노벨경제학상을 안겼던 것이다.


딱히 프리드먼의 말에 반박도, 동조도 할 수 없다. 다만 나는 궁금할 뿐이다. 지구가 다 세계화/자본주의화 되면 지금 1달러 미만으로 하루를 살아야 하는 사람들,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다 사라지고 모두 하루 100달러씩 쓰면서 살수 있게 되려나(그렇게 하루 100달러씩 쓰면서 살수 있는 세상이 되면 이 지구의 에너지 과소비와 환경문제는 또 어떻게 되려나). 자본주의가 꽤 성공적이었는데 왜 지구상 어떤 곳에서는 실패가 계속되고 있나. 


프리드먼은 아쉽게도, 구체적인 의문에는 대답해주지 않는다. 아니, 대답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해야 하려나. 좋은 의도가 있건 없건 결과적으로 좋으면 좋은 거야, 자본주의 하니까 자유도 생기고 빈곤도 없어지고 복지도 찾아오는 거야. 하지만 아직까지 자유도 돈도 복지도 인권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20세기 최고 경제학자였다는 프리드먼의 글은 속을 시원하게 해준다기보다는 속을 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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