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야만 Progress and Barbarism: the World in the 20th Century (1998)
클라이브 폰팅 (지은이) | 김현구 (옮긴이) | 돌베개 | 2007-03-13
벌써 한 10년은 된 것 같은데,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세계사’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COLLAPSE)’ 같은 책들보다 훨씬 선구자적으로 역사를 환경적 관점에서 설명한 저술로 기억하고 있다. 폰팅의 새 책이 나왔다고 해서, 그것도 무려 ‘진보와 야만- 20세기의 역사’라는 거창한 제목의 책이라고 해서 잔뜩 기대를 했다.
각설하고, 기대에 부응해주는 책이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밑줄을 쳐가며 읽고, 기억에 남는 구절이나 기록해둬야겠다 싶은 부분이 있으면 책장 귀퉁이를 접어 표시를 해놨다가 뒤에 독서카드를 정리하면서 옮겨 적고 인터넷 홈페이지나 알라딘 서재에도 타이프해 놓는다. 이 책에는 670쪽에 이르는 이 책에는 그런데 책장 귀퉁이가 접혀진 곳이 하나도 없다. 인상 깊은 구절이 하나도 없어서가 아니라, 책의 내용과 분위기,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 전반을 기억에 새길 일이지 어느 한 구절을 딱히 꼽아낼 만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세계체제론에 근거해 세계를 ▲중심부 국가들과 ▲주변부 국가들 ▲그리고 그 사이 반(半) 주변부 국가들(20세기 상당기간 반주변부에 해당되는 것은 라틴아메리카와 남유럽, 동유럽 국가들이었다)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20세기라는 기간의 세계를 설명하는데에 유효한 틀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중심부와 반주변부, 주변부 국가들은 서로 다른, 그러나 서로 연결돼있는 시간의 흐름을 겪어왔다.
저자가 세계를 설명하기 위한 기술적인 틀이 중심부-반주변부-주변부라는 시스템이라면, 20세기라는 시대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진보와 야만 사이의 투쟁’이다.
20세기는 분명 진보의 시대였고, 특히 중심부 국가들에겐 설명이 필요 없는 역사적 발전의 시대였다. 동시에 20세기는 공산주의(스탈린 체제)나 나치즘, 식민주의 같은 야만을 창조해냈다. 중심부의 진보와 주변부의 야만, 중심부의 진보와 중심부의 야만, 주변부의 진보와 주변부의 야만. 진보와 야만은 20세기 내내 DNA 나선기둥의 두 축처럼 엮여 있었다. 진보와 야만 그리고 그 둘 사이의 투쟁은 20세기 세계 체제의 본질이자 동력이자 결과였던 셈이다.
저자는 중심부 뿐 아니라 주변부와 반주변부의 역사도 소홀히 다루지 않으려 애쓰고, 진보의 낙관론과 야만의 비관론을 어느 한쪽 배제하지 않고 동시에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사료의 한계와 ‘정치적 중요성’이라는 간과할 수 없는 요인 때문에 중심부에 더 많은 분량이 할애된 것은 사실이지만, 저자의 노력은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서론을 제외하면, 전체를 경제사와 사회사/국제사/국내사로 나눈 뒤 다시 환경, 지구화, 제국, 탈식민지, 민족, 전쟁, 파시즘, 독재, 혁명, 억압, 차별, 제노사이드 같은 식으로 테마를 잡아서 설명하는데 짜임새도 있고 재미도 있었다.
세계체제론의 틀에 충실하다보니 테마에 따라 중심부-반주변부-주변부의 스토리가 반복되는 듯한 느낌이 강하고, 2차 사료들 중심이다 보니 여기저기 역사책들에서 주워들은 내용이 겹쳐진다는 단점도 없진 않았다.
시기적으로 지난 100년 안팎을 다루고 있지만 워낙 광범위한 세계(전세계!)를 다루는지라 항목에 따라서는 주마간산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20세기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느낌이 들어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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